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첫 인상이 생생하고 특이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피상적인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속지말아야 할 것이다. 오직 지속되는 친밀한 관계와 서서히 전체와 통합으로 인도해주는 첩촉만이 궁극에 있어 생활하고 현실적인 제반관계(諸般關係)의 다양성(多樣性)에 대한 참되고 충실한 모습을 매개(媒介)하여 줄 것이다.
또 첫인상은 극히 외면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지를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서 어떤 의미의 가치가 없는바아니며 또한 훗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또 한가지 미리 말해두고 싶은것은 여행자로서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인상을 받으며 그의 체험과 인품에 따라 그대로의 견해를 가진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같이 한방문자로서의 내 개인적인 인상을 아니 가진바아니다.
그러나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한국에 온것이 아니고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아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나는 교회도 이 나라도 한 과객(過客)의 눈으로가 아니고 「약속의 땅」에 발을디딘 부르심을 받은자의 감사와 희망에찬 눈으로 보아왔다.
내가 1964년 2월 한국에 왔을때 나는 이미 잡지 등을 통하여 한국교회성장에 대한 아주 인상깊은 통계숫자를 보았다. 그러나 메마른 통계 숫자만으로는 한국교회의 생생하고 희망에찬 발전상 자체를 알수는 없다. 내가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아마 이점일 것이다.
현시점(現時點)의 역사적 혹은 사회경제적 상태도 어떠한 형식으로 신자수 증가에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교회성장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한국교회는 근본적으로 천주께서 이 시간에 한국교회에 부여한 성총을 통하여 안에서부터 성장해가고 있다. 환언하면 교회는 그내적 생활한 힘에 의해 성장해가고 있고 신앙의 내적충만과 생활함에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하여 이같은 발전은 당연히 한국교회로 하여금 장래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게 한다. 얼마나 자주 나는 일반신자, 대학생, 중고등학생, 교사(敎師) 노동자, 기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혹은 부인들이 그들의 친지(親知), 벗, 가족들을 교회로 혹은 교리연구에 인도하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또한 확신과 더불어 구도자를 얻기 위해 신앙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사도적(使徒的)인 파견의식, 전교열은 신자들 가운데 극히 자연스럽게 놀라울 정도로 각성돼 있고 또한 언제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같은 사도적정신이 개개인 신자들만을 고무하고 있을 뿐아니라 많은 신자들의 그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소수의 무관심하고 냉담한 신자들이 없는바아이나 이들이 나의 이굳은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뿐만아니라 적은 자극만으로써도 급속히 발전해가는 여러가지 가톨릭운동(JOC, 학생회, 레지오 마리에, 소년(녀)단, 가족운동, 부인회 등등)은 교회생명활동이 발전하고 향상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며 동시에 신앙이 요청하는것에 대해 마음문이 열려있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의 협조정신이 있다는 표시이다.
내가 가까이서 견문(見聞)하게된 본당들(서울 명동 및 혜화동)은 그리스도교생활의 참된 중심이다.
여기서는 예컨대 모든 가톨릭운동, 미사봉헌, 아이들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의 교리반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는 것 등에서 평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현저히 드러나고 있다. 또 여기서는 종교생활이 구라파에서 흔히 볼수 있는 바와 같은 내적 신앙동의 없이 전통의 테두리안에서만 되는 단순한 사회적 요청의 충족이 아니요 오히려 생활과 사상을 형성해가는 정신적 힘이다.
교리교수는 나의 전문연구요 또한 후일의 나의 활동분야이다. 그래서 나는 장래에 있어 더욱 풍성한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바로 이분야에 관심을 가진 이가 많고 또한 협력자의 수가 많다는 것을 특별한 기쁨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외부적 조건이 제한돼있다는 것도 사도적정신의 추진력을 저지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반대로 그 정신의 참됨과 깊이를 보다 더 뚜렷이 드러내 주었다.
또한가지 다른 전체에 대한 인상을 말한다면 한국교회는 비록 그 자립(自立)과 또한 한국안에 있어서의 직접적인 책임을 의식하고 있으나 동시에 전체 가톨릭교회와의 일치를 의식하고 있고 또한 전체 가톨릭교회에 대한 충성과 사랑 및 보편적 정신을 의식하고 있다.
이같은 의미에서 공의회는 먼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뿐아니라 오히려 공의회 결의는 눈에 띄게 결실을 가져왔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례에 있어서다.
그 같은 가톨릭정신은 외국출신의 협력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한국교회를 위해 힘을 다할 수 있게끔 마련해 주는데 있어서도 잘 드러난다.
여기서는 외국사람들로 하여금 언어의 곤란을 느끼게하는 일도 없으며 외국인의 착오(錯誤)와 몰이해를 용서해주고 형제적정신과 교회의 성장 및 복지를 함께 근심함으로써 때때로 있을 수 있는 상호간의 긴장과 어려움까지도 극복해 간다.
한국교회는 모든 좋은것과 대하고 만나는데 있어 또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 특별한 소질은 보이고 있으며 이로써 또한 장래발전을 위해 진(盡)하지않는 보화를 가졌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주께서 나에게 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같은 신자들의 공동체안에 앞날의 더큰 건설에 기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옵기를 하는 것이다.
엘리사뱃·켈컬링(국제가톨릭 여자협조회원·독일인·韓國名 吉靜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