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6) 蘭草(난초)와 채송화 ⑦
발행일1965-07-25 [제480호, 4면]
그 후, 사오일 지난 저녁, 배사장한테서 R「호텔」식당으로 와서 저녁식사나 같이하자는 전화가 왔다.
「미스터」배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그는 마침 없었다. 요즘 회사일이 바빠 그는 퇴근시간이 넘도록 창고에 물품이 들고 나는 것을 계산해야 했다.
그간 「미스터」배는 「다방」에서 기다려 달라고 늘 말했으나 과외공부핑계를 대고 한번도 나는 그의 청을 듣지 않았다.
재산과 지위, 넒은 정원있는 큰 저택에 매력을 느꼈던 내 마음은 그 내막을 알고부터는 관심이 흐려졌다.
「미스터」배라는 남성에게서 그의 아버지의 집과 재산과 사장이란 지위를 빼놓는다면 남는것은 보잘것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진호는 착실하게 자기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남성이었다. 이 두사람을 과일에 비유한다면 「미스터」배는 병든 수박이고, 진호는 조그맣지만, 싱싱한 살구라고 할수 있었다.
한알의 살구가 배를 부르게하지는 못할것이지만 그러나 수박이 크기로 상해서 냄새가 나니 먹을 도리가 없었다.
지나가다가 크고 좋은 집을 보더라도 나는 전과같이 대번에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겉보기에는 번드르 해보이지만, 막상 잘라보면 상한 수박인지도 몰랐다.
적어도 저 좋은집들의 절반은 아니 그 이상이 「미스터」배네 모양상한 수박이 아닌가? 이런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배네 부자간의 끈덕진 불화는 나에게 짐짓 섭섭한 느낌은 주지 않았고, 내 자신의 행복을 나도 가질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R「호텔」로 가는 나의 마음은 그들 부자간의 불화가 풀리고 안풀리고는 아무래도 좋았다. 맛있는 양요리나 대접 받으면 그만이었다.
식탁에 마주 않았을적에 배사장은 육류와 고급 「사라다」가 담긴 요리 접시에는 흥미가 없는 낮이었다.
나에게는 고깃맛도 꿀맛이고 「사라다」의 반숙달걀이며 「마유네스」 「소스」의 감친맛이 혀바닥에 녹아 내렸다.
『이 식탁에서 행복한 것은 배사장 보다 나다!』
나는 은근히 이렇게 생각했다.
일류 식당에서 일류 음식을 앞에놓고는 그맛을 모르는 배사장을 나는 가엾게 생각했다.
『그후 우리집에 갔더랬어?』
배사장은 음식에는 손을 안대고 맥주만 꿀꺽 꿀꺽 물같이 마시더니 묻는다.
『아니요.』
배사장은 잠시 말이없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미스」양은 나를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몰라!』
『…………』
『…그날 나는 자식 녀석과도 화해를 하고 남과같이 살아볼 생각으로 집으로 돌어 갔었는데… 막상 집안에 발을 들여 놓으니까 그러한 내 기분은 팍 죽어버리더란 말야! 어째서 그런가 내 자신도 모르겠단 말이야…』
배사장은 흥분한 얼굴로 다시맥주잔을 입에다 갖다 대고 술에만 굶주린것 같이 마신다.
『저는 그날 화해가 되실줄 알았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으나 속으로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은근히 지금은 그의 고민에 부체질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퍼 하건만 가질 길이 없는 많은 돈을 차지하였으니 그 댓가로 그만한 괴로움은 짊어져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세상은 공평한 것이었다.
『나도 요 며칠 곰곰히 생각했는데, …그놈이 눈물로 뉘우친 이상 용서 해야겠어. 그게 옳겠지?』
배사장은 나의 동의를 구하는듯이 바라본다.
『그러시는게 좋으시겠죠?』
속으로는 배씨네 집안이 화목해지는 것이 별로 반갑지도 않았다. 전에는 혹시 그집 며느리 자리에 앉을지 모르는지라, 그랬지만 이제는 그들이 성한 수박으로 변하는 것이 솔직히 말하자면 좀옆구리가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미스」양은 지금의 내심경이 어떻다는 건만은 들어두어. 그날 나는 한친구의 집을 잠시들렀는데 겨우 지내는 월급쟁이야. 그의 생일에 누가 갖다주었다는 화분을 부부가 같이 행주로 잎을 닦아주고 있더군.
그때는 무심히 보았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이상하게도 다소곳한 그들 부부의 모습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어.
「미스」양 보다시피 우리집 온실에는 각가지 화초가 다있건만, 우리식구들은 그 화초에 대해서 모두 무관심했어! 문전에 들어설때까지도 나는 금방 내가 돌아서서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 그런데 온실을 보니 내가 애써 하나 하나 사모았던 화분과 꽃들이 삼분의 일은 간곳이 없더군, 그리고 잎이 셋이나 꺾어진 난초를 보았을때, 나는 내 갈빗대가 부러진것 같았어!』
『돈 많으신데, 또 사시면 되지않아요?』
『물건에는 정이 들어있는거야, 금방사면 그런 정이 드나? 또 돈이 많기로 또 사다니? 아까운 일이지, 이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자식의 눈을 보니 갑자기 소름이 끼쳤어!』
『왜요?』
『그 눈속에는 아직도 내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저주가 들어있는건만 같애! 그래서 이내 나는 발길을 돌린거야!』
배사장은 잠시 촛점없는 시선을 「테불」위에 던지고 있다.
『아저씨가 재산을 모두 고아원에 기부하기로하신 심정이해하겠어요. 잘하셨에요』
『…그 녀석한테 한푼도 물려주지 않을려고 했는데 이번에 생각을 좀 달리했어. 우선 얼마간 돈을 주어서 무엇이고 독립해서 해보라고 할테야!』
『얼마나 주실려구?』
『한 2·3백만원 줄려고해! 그놈이 귀여워서가 아니야 「미스」양을 생각해서 주는거야, 그리고 그놈도 그만한 돈을 주면 입이 벌어지고 좋아할것이 빤하단 말야, 나한테 대해서 좀더 고분고분한 인간이 될것도 같애서…』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배사장은 같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썩은 수박이 아니라 싱싱한 수박이 나를 다시 유혹한다.
그러나 이날 나는 진호에게 분명한 사랑의 약속을 다짐하는 편지를 썼었다.
그 편지를 썼을때의 나의 마음을, 큰 단 수박이라도 간단히 끌어다니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내일 시험이라서 오늘은 과외공부를 쉴수가 없어요』
이렇게 핑계를 대고 동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출근하자 은근히 어제밤 일이 궁금해서 「미스터」배가 들어서자 살짝 불러서 물었다.
『어제 아버지가 댁에 가셨지요?』
『음, 「미스」양하고 저녁식사 같이 하셨다문서, 날보고 무엇인가 해보라고 3백만원 예금 통장을 만들어 내주시더군』
「미스터」배는 어느 나라의 왕자나 된것 같이 으시덕거렸다.
『우선 결혼부터 해야겠어, 나하고 오늘 궁합사주 보러가지』
「미스터」배의 태도는 자아, 나에게 이만한 돈이 있으니 따라오라 하는 고자세였다. 나는 그 고자세가 아니꼬아 아무말도 않고 내 책상으로 돌아가서 「타이프」를 두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