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7) 蘭草(난초)와 채송화 ⑧
발행일1965-08-01 [제481호, 4면]
그후, 「미스터」배는 가끔 결혼 얘기를 꺼냈다. 은근히 말이 나왔다면 나는 끌려갔을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란 부닥친 조건에 따라 변하기 쉬운 것을 나는 내 자신의 경험에서 잘알고 있다.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이백만원이란 돈은 가난한 나에게는 확실히 큰 자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고자세에 저항을 느끼면서도 퇴근하면 그가 가자는 대로 다방이고, 음식점이고 같이 따라갔다.
진호를 생각하고 탁차버리지 못하는 약점이 나에게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결혼담에 솔깃하고 엎어지기는 싫었다.
아직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며 대답을 흐리게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자신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스스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보름이 지나자 「미스터」배는 잡지를 내보겠다고 하며, 낮선 사람들이 번질나게 찾아왔다.
잡지는 대중잡지인데 제호는 「사랑의 향기」라고 정했다고 한다.
『제호가 시시하군요』 나는 느낀대로 말했다.
『대중 상대의 잡지니깐 달콤한 제호를 일부러 붙인겁니다』
「미스터」배한테서 편집장이라고 소개를 받은 머리가 텁수룩하고 며칠이나 면도를 안해 코밑과 턱, 부근이 꽤죄죄한 R이란 사람이 말한다.
퇴근 무렵의 회사사무실에서였다.
나는 「타이프」 앞을 정리하면서, 달콤하기커녕 어쩐지 보기도 전에 그 잡지가 유치하고 구질구질해 보였다.
이때 「미스터」꼬마가 편지 한통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미스」양한테 편지 왔소. 아까 온걸 바빠서 미쳐 전하지를 못했어요…』
그는 보라는듯이 편지봉투를 「미스터」배 앞에서 쳐들며 내 놓았다.
받아보니 군우로 온 진호의 편지였다.
나는 읽지않고 그대로 「백」속에 집어넣었다.
『김진호가 누구지요』
「미스터」꼬마는 큰 소리로 묻는다.
『남의 편지에 대해서 일일이 알려고하실 필요야 없지 않아요?』
나는 그의 말을 물리치듯이 말했다.
『편지가 퍽 자주오는군요? 성이 다르니 사촌 오빠나 육촌오빠는 아닐꺼고…』
「미스터」꼬마는 눈시울에 웃음줄을 잡고 말한다.
『외가 쪽은 성이 다른것을 모르세요?』
『그럼, 외사촌 오빠?』
『외사촌인건 외팔촌이건, 왜 그렇게 알고파 하시죠? 심심하시거든 신문이나 보시죠-』
하며 저편 「테불」의 석간신문을 집어 그에게 안겨주었다.
『땡큐!』
하면서 「미스터」꼬마는 신문을 폈다. 하단에는 어느 대중잡지의 광고가 크게 났다.
「미스터」배는 신문 광고를 들여다보더니 이 잡지의 발행부수가 굉장히 많다는데 무엇이 사람의 눈을 끌고 있을까?
우리들의 연애사건이 많이났군! 우리도 잡지를 펴면 그런 기사를 먼저 읽거든. 「미스터」배 잡지하거든 그런 연애사건을 많이 실어요!』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할려고 하는 중이야!』
「미스터」배가 말했다.
『사무실은 정했나요?』
꼬마가 아첨하는 얼굴로 물었다.
『지금 보러 갈 참이야! 「미스」양도 같이 가지!』
『내가 보면 뭘알아요!』
『내가 잡지 시작하면 「미스」양도 데리고 갈텐데?』
『……』
그는 일방적으로 그렇게 정하고 있었다.
『월급은 여기 보다 배는 낼테야! 그럼, 불만 없지?』
미리 조금도 생각지 않던 일이라 나는 좀 당혹한 기분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자넨 업무일을 맡고, 「미스」양은 회계를 맡는거야!』
「미스터」배는 꼬마와 나를 번갈아보며 명령적인 어조로 말한다.
사무실을 나와 셋이서 다방으로 가는도중 나는 무럭 무럭 반발심이 생겼다.
그러나 배액의 월급을 차버리기는 좀 아까와서 가만히 있었다.
다방에서 차를 마신뒤에 「미스터」배는 R과 꼬마를 빌릴 사무소앞에 미리가 있으라고 이르고 나와 단둘이 앉았다.
『진호한테서 왜 자꾸 편지가 오지?』
그는 좀 불쾌한듯이 묻는다.
『편지할만하니까 하는 거야요』
그에게 굴복하기 싫은 자세로 나는 말했다.
『뭐야, 사랑한다는 거야?』
『………』
그의 물음이 너무 토박스럽기에 나는 묵살하고 대답을 안했다.
『편지 한번 볼 수 없어!』
『싫어요!』
나는 그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월급 배액의 자리도 취소가 될것을 각오하고 한말인데, 그는 조금도 그런 기색을 나타내지를 않았다.
『진호라는 친구 부잣집 아들인가?』
『그와는 반대에요』
『「미스」양은 가난이 좋은가?』
『가난 좋은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럼 빨리 잡지사의 사장부인으로 들어앉는것이 어때?』
『요 사장 말이야요?』
나는 농담죠로 그의 몽툭한 코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암…』
『지금 생각는 중이야요… 어는 정도 희망적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야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쑥 빠져나왔다. 진호의 편지에 샘을 안내고 담담한 태도를 갖는 품이 어딘지 선이 굵직해 보이며 이순간 내 기분을 팍 잡아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그릇된 관찰이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는 과거에 한 여성과 결혼 직전까지 다가선 일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하루는 대학동창생인 어느 남성과 몸을 가까이대고 걸어갔다하여 파혼해 버렸었다. 말하자면 남달리 샘과 의심이 많은 것이 「미스터」배였다. 그가 나한테만은 그런 샘을 내지 않는 까닭은 그의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는지라 어떻게 하든지 놓치지 않으려는 심산에서였다.
즉, 그는 그의 아버지의 재산에만 목표를 두고 있었다.
이때, 그러한 그의 내면을 모르는 나는, 뜻밖에도 그의 만성적인 일면을 발견한 듯이 느끼고 맘이 어느 때보다 끌리기 시작 했었다.
다방을 나오자 과외시간이 촉박했건만 그와 함께 사무실을 보러 갔었다.
사무실은 을지로의 어느 「빌딩」의 이층인데 꽤 넓었다.
『이만하면 좁지않겠지?』
「미스터」배는 R보고 물었다.
『충분합니다!』
『그럼 곧 계약하지』
이렇게 단안을 내리는 그의 태도도 어쩐지 의젓하게 보였다.
이틀후 가보니 텅 비었던 방에는 새 「테불」들이 들어앉고 「베니어」판으로 칸을 쳐서 사장실을 따로 만들고 손님용 「셋트」도 갖다 놓았었다.
『모래 월급 받거든 사직원을 내고 일루와요. 여기오면 회계과장겸 부사장이라는걸 알아야해』
「미스터」배는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부사장 월급도 따로 주실테요?』
『잡지가 잘되면 모두 부사장의 것이될텐데 뭐그래…』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사직원을 썼다. 앞길이 크게 트인것 같으면서도 무언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