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말은 학술적 용어도 철학적 개념도 아니다. 따라서 모호한 개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생명이 있는 말이며 함축성 있고 내용이 풍부한 개념이다.
「마음」이란 말은 긴간의 제일 핵심적인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마음」은 이간의 온갖 정서(情緖)와 원의의 원천이며 행동의 원리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안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 특히 서양 사람들은 - 「마음」을 육체의 한 기관(器官)인 심장으로써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심정(心情)이 제일로 심장에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
「마음」이란 낱말의 뜻을 살펴 본 다음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보려면 어떤 사적(私的)인 계시(啓示) 보다도 먼저 우리는 교회의 정신을 따라 「신약성경」 특히 「복음성서」를 묵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안에는 천주의 말씀으로서 사람이 되사 우리들 인간 사이에 생활하시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言行)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주님의 섭리(攝理)는 성자의 강생(降生)을 위하여 순결한 동정녀를 간택하셨다.
그 동정녀의 영혼은 ㅊ너주님의 특별한 은혜로 한번도 악으로 기울어진 출이 없었다.
이에 모든 성화(聖化)의 근원이신 성신게서는 이 동정녀의 동의를 얻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준비하셨다. 천주의 어머니가 된 동정녀의 마음은 더욱 더 천주께 대한 사랑으로 치열해 갔을 것이다. 순전히 자연적인 법칙만 따라 본다 할지라도 이 간절한 사랑이 태중의 아기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기 예수는 어머니의 순결한 사랑 속에 자라났다. 「누가 성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지혜와 연기가 점점 자라시며 천주와 및 사람에게 총애를 받으시러라.』(누가 2장 52절) 악의 그림자도 없는 인자하신 어머니의 사랑의 눈길! 그리고 영원하신 천주의 상지를 반영하는 아기의 눈동자! 이 어머니와 이 아기의 심정은 날로 성삼안의 사랑에로 깊어갔을 것이다.
이천년전에 「나자렛」에서 영위되었던 성가정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추측할만한 것은 그네들의 하치않은 일상사(日常事)까지도 초자연적 빛으로 투명(透明)했을 것이며 무언중에도 간단없는 사랑의 대화가 메아리 쳤을 것이다.
예수님의 소년시기에 대하여 우리는 아는바 없다. 다만 「누가성사」가 전해준 열두살때 「예루살렘」 순례시에 이루어진 한토막이 일화를 알고 있을 뿐이다.
공적생활에 있어 우리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심정은 한마디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이 당신 천상성부께 대해서는 절대적인 순명으로 나타났고 우리들 인간에 대해서는 무한한 자비와 인자로 나타났다.
①순명하는 마음, 당신 성부께 대한 순명심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보내신 이의 의향을 준행함과 그 일을 온전히 행함이 나의 음식이니라』(요왕 4장 34절) 또 바오로 종도께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상에 죽기까지 순명하셨다』(비리버 2장 8절)고 하신다. 사실상 당신 성부께 대한 순명심은 제일로 「올리브」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나타았다. 그것은 진정 순수한 사랑에서 울어난 순명이었다.
②무한한 자비, 우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며』(누가 19장 10절) (마테오 18장 11절) 『생명을 해하려오지 않고 오직 구하려 오셨으며』(누가 9장 55절) 『심판하러 함이 아니라 오직 수하려 오셨으며』(요왕 12장 47절)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또한 더 풍성히 얻기를 위하여』 (요왕 10장 10절) 오셨다고 하신다.
그다음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가는 목자의 비유와 탕아(蕩兒)의 비유에서 (누가 15장) 또한 일곱번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마테오 8장 22절) 교훈에서 당신의 인자하심을 보여주신다.
당신의 인자하심을 보여주신다. 당신 천상성부를 소개함에 있어서도 - 때로는 악인을 벌하시는 분으로서 소개도 하셨지만- 무엇보다도 인자하시고 사랑하올 아버지로 소개하신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항상 따뜻한 사랑으로 대하셨다. 죄악의 구렁에서 헤매던 막달레나를 그렇게 대하셨고 세리(稅吏)들이 두목이었던 자케오를 그렇게 대해주셨고 하루밤에 세번이나 당신을 배반한 베드루를 그렇게 대하셨다.
당신 성부께 대한 극진한 「순명」을 보여주신 십자아 위에서는 또한 우리 인간에게도 조건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요왕 종도께서 『천주는 사랑이시니라』하셨을 때 그는 자기가 직접으로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증거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진정 「착한」분이시다. 절대적 사랑, 영원한 사랑, 조건없는 사랑,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저 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 볼 것이다. 그 마음의 용서(容恕)와 사랑에서 제의될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있다면 다만 자기자신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어리석은 절망자나 끝까지 제 양심에 거역하는 「성신을 거스리는 자」 뿐일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또한 양순하고 겸손한 마음이라는 것을 잊어서 안될 것이다. (마테오 11장 29절)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데 오만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자기 어버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진 자가 어떻게 어버이에 대하여 교태를 부릴 수 있을 것이며 자기 형제나 친척이나 이웃이나 친구에 대하여 진실된 사랑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들에게 대하여 교만할 수 있을 것인가?
◇ 성심의 공경
예수 그리스도 지체들인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즉 천주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르고저 하는 마음 - 이것은 절대적으로 선을 선택하고 악을 거부하는 굳은 결의이다 - 모든 사람에 대한 참된 사랑과 동정심, 그리고 양순하고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도력할 것이다. 간단하게 우리 마음 안에서 한번도 천주게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배신이나 미움으로 변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 같이 아니 매순간 이것을 우리 마음 안에 다짐해야 한다. 특히 신약의 성사인 미사성제에 참여할 때 이것을 예수님께 맹세해야 한다.
언제인가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 세상에 불을 놓으려 왓으니 불붙는 것 외에 나 원할 것이 무엇이리요!』(누가 12장 49절) 즉 성삼안에 저 영원한 사랑이 불을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 놓으려 오셨으며 그 사랑의 불이 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예수성심을 공경하는 것이며 위로해 드리는 것이다.
崔昌成(哲學博士 · 聖베네딕도회원 경북 漆谷본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