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節約(절약)코 사랑으로 이웃 돕는 원선시오會(회)
「宗敎(종교)의 죽음」 思潮(사조)에 맞서 133年前(년전) 佛蘭西(불란서)서 시작
法學(법학) · 史學(사학) · 文學者(문학자)인 오자남이 創設(창설)
역사는 약 133년을 거스려 올라가 1833년 불란서의 각 대학에는 합리주의와 「생 시모니즘」이 범람하여 많은 학생들이 종교를 들어 이미 죽은 것이라고 조소하게끔 되었다. 여기에 분개한 프로데릭 오자남은 친구(청년)들을 모아 가톨릭의 정신과 애덕의 실천을 토대로 하는 회를 창립하게 되어으니 이것이 여기서 「말하려는 성 원선시오 아 바오로회」(SOCIETE DE SAINT VINCENT DE PAUL)이다.
1813년 4월 23일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부모를 따라 고향인 「리옹」으로 돌아왓다. 1830년 견급변호사로서 법률실무를 공부하면서부터 그는 당시의 사회적인 제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에 유행하던 「생 시몽니즘」에 반대하는 소책자를 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1832년에는 LA __BUNNE CATHOLIQUE의 창간자인 메리와 「역사연구회」를 열어 각종 의견을 모으고 가톨릭 청년들에게 종교문제를 설명하는 _관으로 삼았다.
교회를 비방하던 러트톤과 쥬프루아와 같은 合理主義的 理想論을 부르짖은 4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결행하여 나갔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모아 慈善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본회를 세운 것이다.
1834년 법학사호 그 다음해에 문학사호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법학박사학위를 얻은 그는 1837년 「리옹」에서 상법교수가 되었으며 1839년에는 문학박사가 되었다. 1844년 「빠리」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교수하는 정교수가 되었다.
이렇듯이 다재다능한 그는 우선 열심한 신자였으며 신앙과 애덕의 혼이었으며 작가로서, 가사로서, 그리고 웅변가로서, 학자로서 19세기 초의 문명을 비치는 빛이었다. 그리고 또한 자선사업으로 사회를 구출하자는데 일념하여 큰 열매를 맺었다. 이제 전 세계에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남선년들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는 1853년 8월 31일에 이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에 뉴질랜드로부터 본회에 대한 부탁이 있어서 동년 12월경에 노 대주교님을 명예회장으로 하여 조 안드레아씨를 비롯한 수명의 청년들이 회합을 가지는 동시에 그들의 노고는 자못 큰바 있어 7월 19일에 무염시태협의회의 탄생을 보게 되었으며 그후 식구가 늘어남에 따라서 1963년 12월 14일에 예수성심협의회가 살림을 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해서 1965년 3월 3일 「빠리」본부로부터 정식 인준이 있어 지구이사회가 협성되었다.
우리의 할 일은 태산 같고 울의 사명은 중대하다. 애덕에 불타는 젊은이들은 발을 벗고 나섰다 이제는 준비중에 있는 협의회가 마련되었으며 그 회원은 약 15명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지난 4월 25일부로 중앙이사회로 인준되었다.
매월 한번씩 월례미사를 드리는 「빈센시안」(회원)들의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차 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각자의 주머니 돈을 털어가며 또 시간을 내가며 기구와 희생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빈센시안」들은 『바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숨어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필을 들게된 것도 만부득이한 사정에서 이다. 아직가지 본회에 대한 소개가 없었다는 것은 『들어나지 않게 큰 일을 하자』는 우리의 정신의 소이라고 하겠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농부가 적다. 이것이 현 우리 사회의 실정이다.
이제는 우리와 운명을 달리한 고 장면 박사께서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많은 위로와 격려를 아까지 않으셨다. 매년 4회씩 개최되는 총회때마다 참석해 주시던 장 박사님의 평신도 사도직의 정신은 각 「빈센시안」들에게 일층 박차를 가하여 주었다.
『너희는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를 주라』 교회의 본래의 사명인 이 지상 명령은 비단 성직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평신도 사도직! 바야흐로 사도직을 이행할 때가 왔다.
너만의 일도 아니고 나만의 일도 아닌 이 사명을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적극 이행해야 하겠다.
끝으로 작년 12월까지 본회의 영신지도에 힘써온 김옥균 신부와 각 협의회의 지도신부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본회의 발전을 도와준 협조회원들에게 지면을 통하여 감사드린다. (지도신부)
【編輯者 註 원선시오회는 청주교구내 거의 각 본당에 이미 설립되어 있는데 63년 10월에 창립되었다. 지난 5월 내한한 뉴지랜드의 이사장 가스코드씨는 전국교구장을 순방, 원선시오회 설립을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金蒙恩(지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