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27) 중국사람의 상술
중국음식점 세계 도처에 어디서나 번창하고
비결은 信用度(신용도) 固守(고수)
민족의식 꼭같이 守護(수호)
발행일1966-06-26 [제524호, 7면]
외교관 황호을씨의 초대를 받고 중국음식점엘 갔다. 「즈네브」에서 제일 크다는 「금룡주점」이다. 현관문짝서부터 중국냄새가 펄펄풍기는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실내의 색채며 장식이며가 모두 중국식인 인상을 강렬하게 주고있다.
세계 어느나라엘 가도 중국사람은 자릴 잡고 있고, 음식점을 벌리고 있고 제나라 고유한 글씨를 간판으로 써붙이고 있고, 자기네들 끼리는 제나라말들을 아이 어른할 것 없이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민족의식이 강렬한 백성이다.
황씨는 부인과 어린애를 데리고 있었다. 낮같으면 탁아소에 애를 맡기기가 수월했겠는데 밤이되어 그러기도 안됐고 해서 그냥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였다. 식모도 없는 객지에 애들을 거느리고 외교관 생활한다는 것은 무척 힘드는 일이다. 「파티」가 있을때마다 애를 어디다 맡기고 가느냐가 큰 고통거리라 했다. 식당에서 어른들끼리 이야기 하면서도 항상 어린이들의 거동에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아이좀 가만히 좀 있어라』 한창 장난이 심한때의 어린이에게 사교적인 신사도를 지키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그런데 재빨리 나타난 사람이 주인 아주머니다. 게정을 쓰는 이 어린이를 달래면서 사탕을 안겨주더니
『내가 봐 드릴까요?』하면서 얼리며 데리고 나간다. 우리일행은 어른들끼리의 조용한 환담을 나눌 수가 있었다.
나는 가만히 이 중국인들의 상업기술을 생각해봤다. 중국인들의 장사는 여간해서 실패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1백만원 있으면 50만원 정도의 투자로 장사를 시작한댄다. 실패한 뒤에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빚을 얻어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으면 빚장이가 라디오나 전화기까지 집어가는 위인들이 아니라고 한다. 또 빚을 대주어가면서 사업을 다시 일어나게 해서 빚돈을 값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나라에서도 중국음식점은 번성한다. 물론 중국요리의 매력도 크게 작용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손님께 대한 「서비스」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은 처음 개업했을때는 손님들에게 참 잘해주지만 나중엔 점차 손님 접대를 허술히 하는 험이 없지않아 있다. 몇10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서비스」는 역시 중국인들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애들이 뭐라고 하든지, 깡패들이 늙은 중국종업원 보고 『야 이것바, 빨리 물 한그릇만 가져오란 말야』해도 『네 네』할줄 아는 그들이다.
중국아주머니는 우리가 식사를 끝낼 때까지 유치원 보모 다루듯 애를 돌보고 있었다. 이런것들도 중국상인들의 번성해나가는 비결의 하나인 것만 같다.
그 이튿날 아침 황씨는 「레망」호반을 감싸고 곱게 살쪄있는 「로잔느」란 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즈네브」에서 65「킬로」 동북쪽으로 거술러 올라가면 한가롭게 펼쳐진 포도밭이며 한가로운 푸른벌판이 보인다. 「로잔느」시는 호수의 수면서부터 약150「미터」 위에 발달된 높은 구릉의 도시라 했다. 가는 길에서 종내 아름다운 여러 폭의 그림을 보며 가는 느낌이다.
1년내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질 사이가 없다는 곳이다. 「레망」호수를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 호숫가를 자동차로 돌면 곱고 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중의 하나가 이 「로잔느」인 것이다.
파란 하늘이 담겨져 있고 멀리 「몽브랑」의 눈을 안고있는 봉우리가 잠겨있는 호반의 수면에는 무슨 함정으로 착각할만한 거창한 유람선이 오가고 있다.
이 화려하게 보이는 유람선으로 「즈네브」까지 갈 수 있다. 시골길을 가도 파란 잔디와 아름다운 꽃들과 예술적 향기를 내뿜는 조각들이 한결 나그네의 마음을 황홀케 해준다.
바이론의 시비(詩碑)가 있는 곳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자기만 찍힌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가는 관광객이 돼보지 않으면 모른다.
반드시 그 고장의 특색과 인상을 수록하기 위해서 그 고장 사람을 「엑스트라」로 배경시키고 싶어진다. 그래 그 고장 아가씨한테 『우리 관광객들과 사진 한장 같이 찍혀줄 수 없느냐』고 부탁해 본다. 어떤때는 일을 하거나 장사를 하고 있는 뚱뚱한 아주머니한테 「카메라」를 들여대는 무례도 범하게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이들의 기쁜 마음으로 응하면서 「포즈」까지 취해준다.
남을 즐겁게 해줄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때 한국의 수집은 아가씨들처럼 얼굴을 소능로 가리거나 불쾌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달아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안했다. 서양사람들이 우리에게 「카메라」를 갖다대면 무조건 불코해지는 우리들의 생리가 있다.
『아니 우릴 무슨 동물원의 동물로 아는 모양이냐?』 우리들도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이같은 우월감은 열등의식하고도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도무지 그같은 심리적인 부담을 느기지 않고 황색인의 요청을 곧잘 받아준다.
우리는 호숫가에 인접해 있는 어떤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어구에 가설된 조그마한 무대위에서 남미풍의 음악을 연주하는 경음악단들이 감미로운 「멜로디」로 유인을 하고 있었다.
음식보다 손님의 마음을 끄는 그 분위기가 마음을 끄는 것만 같았다. 관광의 나라에서 나는 나대로 손님을 끄는 비법같은 것을 혼자 분석해 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