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蘭西(불란서) 가톨릭의 「앙팡·떼리블」 불뤀벨거 神父(신부)와 映畵(영화)·著述(저술)
「갈멜修女(수녀)들의 對話(대화)」 映畵製作(영화제작)
다음의 꿈은 마리아·막다레나 傳記(전기) 映畵化(영화화)
「그리스도의 生涯(생애)」 著述(저술)…瑞西僻村(서서벽촌)서 3年間(년간)
第(제2)次(차) 大戰(대전)때는 「레지스땅스」 總指導神父(총지도신부) 앙리밀러·까뮤·마리땡·벨라노스와 親熟(친숙) 學校(학교)보다 映畵求景(영화구경)에 沒頭(몰두)했었던 少年時節(소년시절) 美國(미국)으로 謹愼旅行(근신여행)을 해야했던 修士神父(수사신부)
『나는 이 책을 내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그 구원의 증거를 지켜본 군인들 중의 마지막 한 사람이 된것같은 느낌으로 썼다. 나는 또한 의식 무의식중 현실의 세계를 넘어 정결과 화해의 원천을 찾고 있는 사람들, 정확히 말해서 현대문명이 결국 증명한 바와같이 이 세상의 것일수는 없는 그 원천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이 책이란 R·L·부뤀벨거(도밍고회회원) 신부가 쓴 「예수·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얼마전 띠세랑 추기경의 서문이 붙어 출판된 것이다. 이 책 출판과 더불어 불란서 교회안에서 때로는 「앙팡·떼리블」(이러도 저러도 못할 맹랑한 친구)라고까지 불리운 부뤀벨거(愛稱으로 「부뤀」) 신부는 그의 9년간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가 제작하고 또 그 때문에 「부뤀」 신부로 하여금 논평의 중심인물이 되게도한 영화 「갈멜수녀들의 대화」와 같이 이 책역시 불란서에서는 예술과 종교를 결부시킨 것이라는 평론을 받고 있다. 그 스스로 『나의 필생의 저술이다』고한 이 책을 쓰는 동안 그는 3년간이나 서서(瑞西) 「발레」의 한산옥(山屋)에 은거해 있었다. 건장한 몸이긴 하지만 그는 이동안 하루 18시간씩 일했다한다.
부뤀벨거 신부는 지금으로부터 58년전 불란서 「오벨그냐」에서 불란서인을 어머니로 오지리인을 아버지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여기다 언제나 덧붙여 『또 새끼염소 뿔을 지니고 났다』고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이건 새끼 염소처럼 아무데나 부딪치기를 좋아하는 자기 성격을 스스로 인정해서 한 말이다.)
과연 지금도 헝클어진 흰머리에다 혈색좋은 얼굴, 회색진 푸른 눈은 보이지않는 그 무엇을 줄곧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을 한대 칠것같은 인상이다.
그책을 쓰면서 부뤀벨거 신부는 성경 특히 성루가복음을 자국자국 따르고 있다. 그가 보는데는 루가는 예수님의 생애의 극적인 진전에 대하여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루가는 또한 그 이야기안에 나타나는 여성들에게 뛰어난 자리를 주는 시적감각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
부뤀벨거 신부는 말하기를 『루가복음을 읽으면 상을 받고 않으신 예수님, 배와 당나귀를 타고가시는 예수님, 영적을 영하는 예수님을 현실의 눈앞에서 직접보는것 같다』고 하였다.
부뤀벨거를 위해서는 성루가는 복음의 앙리·룻소이다.
굉장이 영화를 즐긴 소년 「부뤀」은 이미 「몽뻴리에」에 살때 학교보다 영화구경을 더 좋아했다. 돈이 없을 때는 뒷구멍으로 슬적 들어갈줄도 알았다. 철학같은 것엔 영취미가 없어서 졸업시험에 세번이나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뤀」은 18세적에 출생교구의 「생·푸룰」 신학교에 들어갔다.
당시의 교장 살리에즈 신부(현 「룰루스」의 추기경대주교)는 「부뤀」을 위해서는 재속신부보다 수도신부가 더 맞을 것이라고 보고 그를 「생·막심」의 도밍고회 수련원으로 보냈다. 부뤀벨거가 사제품을 받은 것은 1936년이었는데 그 같은날 오지리 재상(宰相) 돌푸스가 「비엔나」에서 암살되었다. 이 사건은 어떤 의미로 젊은 사제 부뤀벨거가 뛰어들어야할 시대는 험난할 것임을 고하는 전조(前兆)와도 같은 것이었다.
잠시동안 아프리카 「사하라」에서 외인부대 종군신부로 있은후 제2차대전이 터지고 불란서가 강복하자 그는 「레지스땅스」들을 돌보는 신부들의 장(長)이 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신자, 불신자할것 없이 여러 인간형과 사귀게 되었다. 아직 전쟁이 계속되는 중에 그는 지라두 로벨트·브렛손과 더불어 영화 「타락한 천사들」을 공동 감독하에 말들어냈다.
이 영화가 나왔을때 「볼도」의 펠땡 대주교(현 「빠리」 추기경)는 편지로써 그에게 『드디어 영화에 관심을 가진 신부가 나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전쟁후 그는 계속하여 「레지스땅스」 때의 그의 친구들과 만났다. 그들은 앙리·밀러, 까뮤, 상드랄, 꼭 또 같은 저술가, 예술가들이다. 수도자이기 때문에 다소 주저도 하는것 같았으나 이들과는 허물없는 교우관계를 지속했고 「빠리」 명사(名士)들 간에 그는 아주 친근한 존재였다.
그의 견해로는 이같은 사회사도직이 다른 사도직에 못지않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수도회장상들의 판단은 좀 달랐다.
그들은 「부뤀」 신부의 이름이 너무나 자주 세속적인 활동과 관련되어 「빠리」신문들에 오르내리는 것을 못 마땅해했다.
그래서 도밍고회 총장 수아레즈 신부는 청년시절의 「부뤀」을 잘아는 현 「눌루스」 대주교 살리에즈 추기경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살리에즈 추기경은 즉석에서 『「부뤀」은 착한 크리스챤입니다』고 말함으로 수아레즈 총장을 오히려 대단히 놀라게 하였다. 가톨릭으로서 이 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부뤀」에 대한 장상들의 생각을 변경시키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1950년 「부뤀」은 미국으로 파견되었다. 말하자면 불란서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는 자신위에 덪인 어떤 암운을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저술생활에 몰두하여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막달레나」 「갈라진 천국」 「미국의 모습」등 상당히 호평받은 책들을 연이어 내었다.
수년후 「부뤀」은 쟉크·마리아땡은 통하여 죠지·벨나노스를 알게 되었고 그들은 이미 친해졌다. 『벨나노스는 우리 아버지야』라고 「부뤀」은 자주 말했다. 벨나노스에 대한 일화중 「부뤀」이 즐겨하는 것은 벨나노스가 아직 7·8세의 소년시절 유다스의 배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자기 저금통을 털어 본당 신부께가서 『한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구해 주십사오』라고 자주 청했다는 것이다.
벨나노스 스스로는 긍정치 않지만 「부뤀」은 그 「불쌍한 영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세기(今世紀) 초협 불란서 북쪽 한 시골에서는 한 소년에 의해 유다스를 위한 미사가 자주 바쳐졌답니다』라고 「부뤀」은 그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부뤀벨거 신부가 「꼼삐엥느」의 16명의 갈멜수녀 이야기의 영화제작을 착상했을때 그 각색을 벨나노스에게 의뢰했다.
벨나노스는 영화엔 백지나 같고 그래서 그가 쓴 「텍스트」는 영화를 위해선 형편없이 긴 것이었다. 「부뤀」은 그 10분지 9를 깎아버렸다. 그러나 이같은 난폭한 간섭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1959년 「갈멜수녀들의 대화」라는 제목하에 나온 이 영화는 총 5백만여의 관람객들을 도취시켰다.
이 영화를 낸 다음 부뤀벨거 신부의 유일한 소원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현대적 연구를 바탕으로하여 서술적으로 써보는 것이었다. 그는 이일에 그 특유한 정력으로 착수했고 그 스스로의 표현대는 『술중독이 들어있는데도 술을 끊을 수 없는 사람처럼』 성경말씀에 취하여 써내려갔다.
그 책 내용에 대하여 「부뤀」은 말하기를 『이 책은 본질적으로 천주님 친히 연출하신 희망의 「메시지」를 쓴 것이다.
그 구성요소에는 「테로」도 번개도 천둥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主題)는 「희망」이다. 모든 사건은 놀랍고 「드라마틱」한 「클라이막스」로 집중돼간다. 드디어 그 절정에 이르러 이 비극의 창조자 천주이시요 동시에 운명이신자는 하늘과 땅사이에 서있는 산 중턱에서 죽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제작가로서 그의 탁월한 수법을 인정하게 된다. 부룩벨거 신부는 모든 죄악중에 죄악인이 비극을 주의깊게 또한 극적으로 연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악몽(惡夢)과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돌연히 부활로써 변모된다. 이 대목은 실로 이 책에 있어 가장 극적이요 영성적(靈性的) 밀도가 짙은 부분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그들을 중심하여 「드라마」의 줄거리가 혹은 정치적 음모 혹은 희망으로 굴곡변화해가는 것을 저자는 세심히 동시에 감동적으로 그려간다. 처음 나오는 인물은 세자(洗者) 요안이다.
그는 유대아전통을 대표하는 경탄의 「타잎」이다. 다음은 유다스, 『그는 말하자면… 레닌형(型)의 인간, 정치적이고, 비꼬인 사랑으로 예수를 사랑하면서도 무능하고 실의(失意)에 차있으며 영영 결실치 못하는 존재이다』
그다음은 부녀(婦女)들이다. 「부뤀」의 그들의 대한 표현은 아주 부드럽다. 복음저자들과 같이 「부뤀」 역시 이들에게 영예스러운 자리를 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여인들의 마음은 남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예수님의 인격에 사로잡히지 않았던가?』고 스스로 반문한다.
「부뤀」은 종도들을 가리켜 『그들은 지능적으로 부족한 인물들이야. 말하자면 「이디어트」-그게 무슨뜻인지 잘모르면 사전(辭典)을 찾아보렴! 이건 내 견해가 아니고 복음에 나타나는 사실이야, 그러나 부인들에 대해선 그런 투의 언급이 없어』라고 하였다.
부인들 중에는 두 여성이 특히 출중한데 「부뤀」은 이 둘의 모습을 큰 「스케일」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 여성은 물론 동정 마리아이다.
「부뤀」은 그녀에 대하여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의 생활에 개입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복중(腹中)에 천주의 씨를 배태하였고 천주님을 임신했다. 그리고 이 천주를 세상에 낳았다』고 말한다. 복음사가들과 같이 「부뤀」역시 숨김없이 선대에 있어 『근친상간(近親相姦) 음모와 결탁된 매음(賣淫), 살인자와 결부된 간음행위 등』으로 결코 깨끗하다고는 할수 없는 가계(家系) 줄기에 정결의 찬란한 꽃, 동정 마리아가 접붙여졌고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어 『회개한 세리(稅吏) 마테오는 그자신이 쓴 복음의 첫 「페이지」에서 조용히 또 분명하게 저술자로서의 태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고 기술한다』하였다.
둘째의 여성은 말구가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부인이 행한 것을 또한 전하여 말하리라』고 한 마리아·막달레나이다. 「부뤀」은 그녀를 그리면서 좀짓궂게 『십자군과 「프랑코」기사(騎士)들의 「페트론」』이라고 하고 그것은 『그녀가 그리스도의 무덤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에, 또한 아마도 그 이전에 품위있는 사랑을 간직하였기 때문에』라고 표현하였다.
「부뤀」은 복음을 통해 그녀의 자취를 자국자국 따라간다. 향액(香液)을 가득히 손에 담고 가벼운 걸음으로 가는 그녀, 또한 어떤 왕자적(王者的) 아름다움의 광채와 더불어 잔치자리에서 정원으로 옮겨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그 옛날 「바리세이」들과, 종도들 중에서는 유다스를 화나게한 그녀는 오늘날에는 「퓨리탄」, 지성인, 성경해석가들을 노엽게 만든다』고 하였다.
부뤀벨거 신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저술을 마치고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의 영화제작을 생각하고 있다. 그의 견해로는 그것은 사랑의 왕국 전체에 있어 가장 매혹적인 사랑의 「스토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니카·빗티양이 『악마조차도 똑바로 봄으로써 그 눈을 아래로 떨구게 한』이 여인의 역(役)을 맞으면 한다.
아뭏든지 부뤀벨거 신부가 보기에는 그리스도와 죄녀 마리아·막달레나와의 거리는 아주 가깝다. 그는 이둘 사이(죄와 구원사이)에는 어떤 밀접한 묵계(黙契)가 성립돼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부뤀」에 대하여 불란서 가톨릭신자들이 각자의 견해에 따라 혹은 기뻐하고 혹은 실망하는 것은 그의 바로 이같은 「드라마틱」한 표현과 시상(詩想)의 결부 때문이다.(주빌리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