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08) 蘭草(난초)와 채송화 ⑨
발행일1965-08-08 [제482호, 4면]
사직원이 들은 봉투는 왼편에 놓여 있고, 진호한테서 온 편지는, 바른 편에 놓여 있었다.
책상위의 이 두개의 봉투는 서로 조화할 수 없는 이질의 성질을 띠우고 있었다. 진호의 진실에찬 글귀를 생각하니 「미스터」배 옆으로 간다는 것이 꺼름칙했다.
『그까짓, 월급이 배면 제일이야?』
무럭 돈에 대한 반발심이 치밀어 사직원을 봉투에 든채, 구겨서, 네쪽으로 찢어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진호의 편지를 다시 펴서 읽었다.
-그간 회사에 잘다니겠거니와 몸도 건강한지요, 주의 은총이 언제나 「미스」양을 지켜주기만을 바라고 있읍니다.
「미스」양을 행복하게 해 줄만한 물질적인 힘이 나에게 부족한 것이 늘 한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스」양과 나 사이에는 주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주의 빛깔은 모든 것보다 높고, 성스러운 것입니다. 주는 나로 하여금 「미스」양을 찾게 하고, 「미스」양은 나와 더불어 주의 빛을 찾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신것 같읍니다. 물질에 현혹되기 쉬운 「미스」양의 마음을 보호해 주시도록 나는 오늘도 주께 기구했읍니다. 주는 내일의 양식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오늘 작으나마 우리에게 주어진 먹을 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읍니다. 사랑이 있는 곳의 나물반찬은 사랑이 없는 곳의 고기반찬보다 낫다고 한 말을 「미스」양에게 보내며, 이만 끝입니다.-
두번째 읽은 진호의 편지는 좀 다른 인상을 나에게 준다. 처음에는 그의 다소곳하고 겸손한 생활태도가 한가닥 맑은 샘물같이 내 가슴 깊이 젖어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고기반찬을 탐내지 말고, 나물반찬에 만족하라는 것은 인종(忍從)을 강요하는것 같이 들린다. 나는 진호의 인종(忍從)의 미덕(美德)에 저항을 느끼었다.
서랍에서 편지지를 꺼내어, 사직원을 다시써서 봉투에 넣고, 잤다.
이튿날 아침, 출근을 하자, 총무과장에게 사직원을 냈다.
사장실에 들어가서 역시 인사를 했다.
사장은 왜 그만둘라고 하느냐고 걱정스러이 물었으나, 나는 적당히 얼버무려댔다.
『결혼이라도 하는가보지, 그러면 반가운 일이야!』
나는 굳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날 오후부터 「미스터」배의 잡지사로 출근을 했다.
「미스터」배는 퍽 반가와 했다.
「호마이카」 새 책상 앞에 앉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새로 시작한 잡지라서 들어오는 돈은 전혀없고, 예금해 두었던 돈을 찾아다가는 전표를 받고서 내주는 것이 회계의 일이었다.
사원은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불어서 일주일 후에는 십여명으로 늘었다. 그 절반은 편집장 R이 넣은 사람이고 나머지 절반은 「미스터」배와 「미스터」꼬마가 자기 아는 사람, 혹은 부탁을 받아넣은 사람들이었다.
넓어 보이던 사무실안은 15, 6명이 오락가락하니, 수선스러웠다.
20일 후에는 책을 낼 예정이었으나, 한달이 넘어서야 겨우 책 견본이 나왔다.
표지의 여배우 사진은 다른 잡지에 비해서 틱틱했다.
내용도 체계가 서지 못하고 이것저것 잡탕이었다.
몇만원 돈을 들여 일류신문에 광고도 크게 냈으나 각 서점에 배부한 책은 거의 안나가고 그대로 있는 모양이었다.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가까와 와도 지방서점에서는 책값을 부쳐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다음호 준비에 물쓰듯 돈은 나갔다.
만부를 찍었는데 육천부가 안팔리고 되돌아왔다. 휴지밖에 안되는 반품은 사무실 한모퉁이에 산더미로 재놓았다.
편집장 R과 업무의 「미스터」꼬마를 불러 「미스터」배는 잘 팔리도록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를 매일 의논했다.
나보고도 참석하라고 하여 갔으나 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간행물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내가 받을 월금만 받으면 그만이란 생각을 했다.
이백만원이란 돈은 다른 사람같으면 일생을 두고도 한번 만저보지도 못하는 금액을 부잣집 아들이란 조건때문에 무쪽같이 얻어서 쓰는 「미스터」배에게 대해서 별로 안타까움을 같이 할 생각이 안났다.
그러나 그의 월급을 먹는 이상 내가 느낀대로 의견을 말했다.
표지의 인쇄를 좀더 산듯하게 할수 없느냐고 한 내말은 모두 공감을 표시했다. 잉크가 나쁘고, 인쇄소의 설비가 나쁘고, 그밖에 이유가 많았다.
다음 호의 표지 사진은 창간호보다 좀 낫다고 할수 있었으나 다른 잡지에 비하면 역시 떨어졌다.
「미스터」배는 책을 동댕이치며 화를 내고 R을 나무랐다.
『인쇄소는 사장님이 정하시지 않았읍니까 인쇄비가 많더라도 큰인쇄소로 옮겨야 합니다.』
이때 「미스터」옹기씨가 잡지사에 나타났다. 몇마디 물어보더니 예민하게 눈치를 차린 모양이었다.
『못생긴 놈! 이러니 돈을 주어 뭘 시킬수도 없거든!』
옹기씨는 혼자 입속에서 중얼거리며
『돈은 얼마나 남았누?』하고 나에게 살짝 묻는다. 3호째의 경비가 거의 나가고, 그간 팔린 책값의 회수가 잘안되어 잔고는 백만원이 채 못되었다.
『아직도 백오십만원은 남았어요!』
나는 일부러 이렇게 대답했다.
옹기씨에게 실망을 덜어주려는 심산에서 말했다.
『내가보니 사원이 너무 많아, 그리고 책상도 너무 고급이다! 고물상에서 헌 책상을 사다해도 좋지않아, 그리고 인쇄비 같은건 쓸데없이 아끼느라고 시시한데 인쇄를 시켜, 책을 망쳐놓았단 말야, 사업머리쓰는 꼴이 틀렸어!』
『아니야요, 책이 점점 인기가 있어요. 무슨 책이든지 처음부터 팔리지는 않는데요!』
『몇달 더 두고보면 밑장이 들어날거야…』
옹기씨는 이내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미스터」배는 그날 저녁 나와 저녁식사를 같이하면서 내가 자기 아버지한테 그와같이 두둔해서 대답한 것을 기뻐했다.
『아버지가 앞으로도 묻거던 잘 되어나간다고 말해 응…』
다섯달째 들어서니 거의 자금은 밑바닥을 긁게 되었다.
그제서야, 사원을 줄인다, 월급을 내린다 하고 「미스터」배는 서둘렀다.
『사업이란 아무나 돈버는게 아니군』
나는 혼자 맘속에서 이런것을 느끼면 월급자리가 떨어질 형편만이 걱정이었다. 『내 월급도 깍아야겠군요?』
내가 말했다.
『아냐 「미스」양의 월급은 절대 깍지않아 그대신 아버지한테 얘기좀 해줘…』
그의 부탁은 그의 아버지한테서 백만원만 더 주도록 사정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는 사의 돈으로 「미스터」옹기를 그가 잘가는 R「호텔」식당으로 모셨다.
그의 목에 맥주 몇잔이 들어간 뒤에 나는, 돈 얘기를 꺼냈다.
받은 돈은 3백만원가량되며, 한달 고비만 넘기면 잘될덴데, 당장백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돼, 없어.』
그의 아버지는 상을 찡그리며 거절했다.
「미스터」배는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중에 이 보고를 받자 심각한 표정을 했다.
그는 한시간 동안 거의 말이없이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밤일을 하고있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뭐? 아버지가 졸도했다구?』
그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자 이네 졸도했다고 잡지사로 연락이 왔다고 R이 전했다.
「미스터」배의 얼굴에는 놀라움 보다 오히려 한가닥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