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復節辭(광복절사)] 그리스도는敎(교)는 肯定(긍정)의 宗敎(종교)
聖母蒙召(성모몽소) 昇天(승천) 不滅(불멸)의 未來的(미래적) 「비젼」
福祉社會(복지사회) 設計(설계)는 올바른 人間像(인간상) 위에…
민족광복 제2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는 누구나 과거 일제 식민지정치하에서 겪은 민족적 치욕과 비통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동시에 어쩌면 덧없이 흘러간것도 같은 지난 20년간의 가지가지 곡절을 회고 혹은 반성도 하게 된다. 그러므로해서 이 시간에 우리가 아니 가질 수 없는 민족장래를 위한 기원도 더욱 절실하다.
다시는 그같은 민족의 치욕도 없어야 하겠거니와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새로이 다짐해보는 굳은 결위는 분단된 국토의 통일과 6.25동란 같은 비극, 4.19, 5.16혁명도 재발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 기타 모든 생활면에 안정된 민족장래를 건설하는 것일 것이다.
한마디로 「복지국가」를 이루고 남들과 같이 우리도 『잘살아보자!』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누구인들 내일의 행복을 빌지않으랴! 행복을 바람은 우리 각자의 혹은 민족의 기원만이 아니고 전 인류세계의 기원이기도하다.
존슨 미국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건설을 제창하였고, 비록 출발점이 다르고 기만 「테로」 무력혁명 등 비인도적 수단방법을 취하고는 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궁극목표 역시-액면대로라면-지상(地上) 「파라다이스」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과 인류사회는 진리를 바탕으로했건 허위를 바탕으로했건 위대하고 행복된 미래를 추구하는데는 일치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이같은 미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미래를 믿고 미래를 약속하는 종교이다. 「영광된 미래」-그것은 실로 그리스도자(者)를 비참과 박해중에도 전진케하는 힘이요, 「죽음의 행진」에서도 그에게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용기를 복돋아주는 「비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는 어디까지나 광명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전진(前進)의 종교이다. 인간과 사회를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또한 그의 본질사명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어느때보다도 이시대에 이같은 그의 사명을 절감한 나머지 보다 더 잘 인류의 오늘과 내일의 진로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우리의 민족적 소망인 「복지국가」, 죤슨의 「위대한 사회」, 나아가 「맑스」주의자들이 구가하는 지상 「파라다이스」와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교회는 결코 현실의 인간과 사회문제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를 심각히 문제시하고 오늘날 교회는 빈곤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가지 난문제 해결에 앞장서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미래는 단지 육신의 굶주림과 헐벗음이 없는 미래, 실업과 빈곤이 없는 미래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전인간(全人間)으로서 구제된 미래, 육신의 굶주림 뿐아니라 영혼의 굶주림도 없는, 눈물도 슬픔도 가셔지고 죽음마저 극복된 생명에 충만한 미래이다.
그것은 생명자체이시요 행복자체이신 천주로써 인간과 온 우주가 영원토록 가득 채워진 미래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불멸의 생명에 대한 믿음위에서 있다.
영혼만이 아니고 육신까지도 영원히 구제된다는 그 믿음, 나아가 이 인간을 거쳐온 물질세계도 천주로써 구제된다는 그 믿음을 토대로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인생관·세계관은 전폭적인 긍정이다.
흔히 그리스도교를 현실도피 내지 부정, 혹은 육신멸시의 종교로 관념하고 있으나 이는 큰 오해이다.
그리스도교는 존재하는 실체(實體)이면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긍정의 종교이요, 그리스도교가 부정하는 것은 죄악과 오류뿐이다.
환언하면 종교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생활과 행동으로써 인간과 그 목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 부정을 부정한다.
인간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그 불멸성은 부인하는 그 태도·그 모순을 부정하고 혹은 인간의 문제가 마치 위장(胃腸)뿐인양, 모든것을 물질위주로 다루는 그 관념, 그런 세계관을 부정하고 나아가 육체의 우상화(偶像化)(例 美女大會, 肉快樂主義)를 구가하는 현대 풍조를 부정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것이 표현과 형태는 달라도 결국은 인간을 영혼·육신 결합한 전인(全人)으로서 보지않는 인간 부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영혼 혹은 영적인 것만을 위주한 인생관, 세계관도 오류임을 천명하고 반대로 육체 혹은 물질적인 것만을 위주한 인생관, 세계관도 배격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해마다 광복절과 함께 맞이하는 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축일의 의의를 남달리 감득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의 부활승천은-그리스도의 부활승천 다음으로-인간의 전인(全人)적인 구제를 증거하고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참됨을 더욱 확증하여 주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성모마리아의 육신채로의 승천은 영혼과 함께 인간육신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영생에 구제됨을, 따라서 물질의 구제를 증명하여 준 것이다. 그리스도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었을지라도 살아날 것이니라』(요왕 11장 25절)고 하셨다. 이 말씀이 내용 그대로 완전히 성취된 것이 성모마리아의 몽소승천이다.
뿐만아니라 그것은 인간과 세계의 미래적 구제가 현세에서가 아니고 천국에서, 환언하면 천주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성취됨을 무엇보다도 밝혀주고 있다. 인간과 세계는 스스로 자기를 창조하지 않았다.
따라서 스스로 그 존재목적을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과 세계는 조물주이신 천주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따라서 그 존재목적 역시 창조주의 창조이념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목적적(合目的的) 인간과 세계구제는 그것이 전적으로 조물주이신 천주께 귀의(歸依)하는데 있다.
이 원리와 이 진리를 떠나 설계하는 우리의 모든 미래계획은 결국 헛된 것이다. 「복지국가」도 지상 「파라다이스」도 그것은 인간육신을 배불릴 수는 있을망정 인간을 인간으로서 구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복지사회일수록 더욱 증가되는 인간의 내적 좌절감과 절망엔 속수무책인 것이 될 것이다. 광복20주년, 어슴푸레이나마 어떤 전환점에 서 있다는 느낌을 금치못하는 이 시간에 이날과 함께 맞는 성모 몽소승천축일의 의의가 우리의 미래설계의 「비젼」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왜냐하면 인간 생명의 불멸을 믿지않는 풍토에서는 참된 의미의 인간해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