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國(조국) 언제나 나의 祖國(조국) - 南美行(남미행) 가톨릭移民國(이민국) 航海記(항해기) ⑬
女人(여인)의 「샤리」에 넘치는 異國情趣(이국정취)
樂園(낙원)의 뜻 「모리시아스」의 거리
발행일1966-07-03 [제525호, 4면]
【12월 13일】 9시경부터 드문드문 고래등 같은 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대식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납작한 섬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로 머리가 보글보글 타서 붙은 듯한 깜둥이가 벌거벗은채 「카누」를 타고 다니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돌덩이 산이 오뚝 오뚝 솟은게 꼭 제주도 근처로 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가까이 감에 따라 시골에 대낮처럼 한산하게 조으는듯한 조그만 도시가 얕으막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게 보였다.
저녁후 배회사 소속 「모타 보오트」를 타고 상육, 거리를 구셩하러 다녀봤으나 상점마다 문을 꽉꽉 닫고 두꺼운 재목으로 덧문을 하여 무거운 쇠를 가로 지른 후 열쇠로 꽉꽉 잠가 버려서 도대체 서부 개척때 있던 무법지대 같아 곧 돌아오고 말았다.
물건값은 전부 수입품이므로 홍콩이나 싱가폴의 두배, 밤 모기에 물리기만 했다.
홍콩이나 싱가폴도 해떨어지기 바쁘게 상점을 거두어 들이기는 매한가지되 속이 다 들여다 보이게 성들은 철문만 닫았지 안에는 불을 켜놓고 밖에는 「네온 싸인」이라도 빛나고 있었다.
특히 싱가폴에서는 손을 잡고 다니는 연인, 어디나 가지런히 앉는 남녀의 뒷모습이 밤불에 비쳐 유유자적하는 인생의 풍모가 엿보이더니 도대체 이곳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식으로 밤이면 모두 악당으로 변하는지 차도 사람도 보기 힘드니 기분나쁘기 짝이없다. 낮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빌리면 외국인이라고 무척 반가와하며 따라오면서까지 주소를 적어달라더라는 것이다. 이곳엔 또 동물원이 있다는데 무료라고 하니 내일 떠나기 전 아이들을 구경시켜야겠다. 별로 사람살만한 곳이 못되는 듯, 불령이 되었다 영국령이 되었다가 한단다.
【12월 14일】
「남국의 정열」이란 누가 말했던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만물의 호흡은 뜨겁게 번져가고 바다는 파랗게 해변을 적신다. 밤의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모리시아스」의 거리는 아름다운 꽃과 초록의 가지가지 나무로 덮여 사뭇 성서적이다. 식물원, 박물관에 가꾸어 놓은 화원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발밑엔 잔디가 끝없이 펼쳐 있고 위로는 하늘을 가리운 나무들이 송이송이 빨강 노랑 보라빛 꽃들을 탐스럽게 늘어 뜨리고 있다.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인어들의 분수, 꽃들을 바쳐 이고 있는 대리석 꽃대 가시 돋친 선인장이 억세게 뻗어있고 종려, 파초잎들이 바닷바람에 하느적 거린다.
어느 궁전의 뜰이 이렇듯 아름답고 천국의 화원이 이렇듯 기묘할까? 사이사이로 보이는 인도계 여인의 긴 「샤리」가 매혹적이다. 비질을 하고 있는 검은 여인은 아무리 가난해도 귀걸이를 잊지 않는다. 더러 코옆에 꽂은 콩알만한 장식물이 깜찍한데 맨발의 이 여인은 아무런 향수도 모르고 자라난 이방의 꽃처럼 이땅의 풍토에 흡수된 하나의 검은 보석이 되어 빛난다.
뜨거운 하오이 꽃동굴속에 몇백년을 살아왔을까. 쌀 한섬은 실을 법한 커다란 거북들이 한쪽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하늘을 찌를듯이 늠늠하게 서있는 가로수에 비겨 이고장 채소들은 하 체신없이 작아 맹랑하기 짝없다.
양파는 밤톨보다 작고 도마도가 토란알만하다.
상치 배추 파 고추 … 꼭 「갈리버」의 소인국에 온 것 같다. 그러나 여정이란 따라로운 것. 쌍꺼풀진 커다란 눈망울의 소년들이 가는 곳마다 우리들을 둘러싸고 신기한듯 바라본다. 더러는 『짜뽕 짜뽕』하면서 아는척한다. 『노 노 꼬레아 꼬레아』하면 보물을 발견한듯 기뻐하며 사진도 찍으려 하고 주소도 적어달라고 한다. 안내까지 해준다는 소년의 호의를 굳이 사양하고 배로 돌아오나 외국인으로 그런 순진한 환영을 곳곳에서 받고 들어오는 발걸음은 유쾌하기만 하다.
배는 또다시 출항, 남국의 정열은 밤을 누빈다. 쩌렁쩌렁 울리는 스트디오 녹음기의 트위스트에 맞춰 갑판에서는 젊은이들이 흥겹게 춤을춘다. 아랫층에서는 예능대회 예비심사로 춤과 노래가 한창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부산한 흥겨움은 남국을 담아 뜨겁게 피어 오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