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28) 눈에 덮인 「몽부랑」의 여름 풍경
구라파의 지붕 「몽부랑」
山頂(산정)으로 가는 「케불카」 四季節(사계절)을 지나가고…
발행일1966-07-10 [제526호, 3면]
『스위스에 온 김에 스위스 시계정도는 하나 마련해가는게 어때요』 공관에 있는 안씨는 스위스의 선물 안내까지 고맙게 해주고 있다. 한국의 명동에서 사는 것 보다 좀 비싼 감이 있지만 대개 이곳에 와서는 한두개 정도는 기념으로 사간다는 안씨의 말이 그럴싸하게도 여겨졌다.
다섯개까지는 세금 없이 사가지고 갈 수 있는 여행자의 특권이 있고 시계를 갈 때면 세증명서도 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스위스를 떠날 때 이 증명서를 세관에게 보여주면 된다는 소식까지 잘들었다.
스위스에서 사게되면 딴데가서 사는 것 보다 적어도 3할 내지 4할이 싸다는 집요한 권고였으나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질 않았다.
『시계말고 이 스위스를 기념해둘 것이 또 없겠소?』
나는 궁한 대안을 내놓았다.
『글쎄, 그렇다면 여기까지 온 김에 「몽부랑」에나 가보는거죠』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머 별로 멀지도 않고… 반나절은 가야지만…』
『아니 비행기로요?』
나는 반나절이란 말에 저으기 놀랐다.
『가신다면 제가 모시죠. 저도 내 아내 하고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자동차 길도 좋답니다.』 외교관 황호을씨의 제안이었다.
마침내 「몽부랑」 행을 결심했다. 유봉구 신부님도 같이 모시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여권수속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즈네브」에 가까운 곳이긴 하지만 불란서 땅이기 때문에 입국수속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웬만한 나라 사람 같으면 무사통과된다는데 만일에 말썽이 되면 국경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뭣하니 미리 준비해 갖고 가자는 것이었다.
황호을씨 내외와 유봉구 신부님과 나와 일행이 되어 「몽부랑」으로 떠났다. 불란서땅과의 국경에 이르렀다. 외교관 차가 되어 그런지 이렇다할 검문도 안받고 통과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불란서 남쪽에 자리잡은 산간벽지… 시골길이었다. 우리 눈으로는 가난한 농가라고 볼 수 없는 농삿군들 집이 뜸뜸이 눈에 띈다.
산갈피 속을 굽이 굽이 돌며 험준한 계곡을 위태롭게 돌며 멀리서만 바라보이던 「몽부랑」을 어루만지듯 가까이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광은 이루 형용키 어려울 정도이다. 천길되어 보이는 계곡을 가로지른 구름다리길이며 가파른 절벽 옆을 아슬아슬하게 맴돌게 만든 길이며가 모두 조그마한 구멍하나 나지 않은 「아스팔트」의 훌륭한 길이다. 어떤 조그마한 도시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 조그마한 시골촌에서 조금도 시골냄새가 풍기지 않는 것은 관광객 상대의촌락인 때문일까?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눈에 띄었다. 어떤 노인이 길거리를 성성대고 있었다. 좀 누추한 품이 걸인같은 인상을 주긴 했지만 불란서에도 거지가 있나? 하고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이 노인 손아귀에는 긴장대가 들려있었고 그 장대끝에는 쇠못이 달려있었다. 나는 그 장대의 끝에 쇠못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격있는 국민임을 생각하고 혼자 남몰래 웃어버렸다. 글쎄 그 노인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바로 담배꽁초를 그 장대로 길거리에서 꼭꼭찍어 줍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같은 광경속에서 향수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스운 이야기가 좀 반가운 생각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몽부랑」 가는 길녘에 여름을 즐기는 젊은 「캠핑구릅」들이 점경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판티」바람이다 「몽부랑」이란 말만듣던, 구라파에서 가장 높은(4801미터) 산기슭에 당도했다. 「몽부랑」이란 말 뜻은 흰산이란 뜻이란다. 산꼭대기는 흰눈으로 뒤덮였고 얼음이 산둥턱에까지 흘러내려 얼어붇어있다.
『자 올라갈 준비하십시다.』
황씨는 준비해온 「오바」를 빌려준다.
지금 산밑은 여름더위를 태우느라고 윗도리들을 벗고 반바지바람의 소풍객들로 붐비고 있는데 「케이불카」를 타려는 사람들은 겨울옷 차림에 분주하다.
「케이불카」 마치 사계절을 통과하듯 한 느낌이다. 여름철에서 「케이불카」를 타고 조금 올라가니 가을철이 되고 중턱쯤 올라가니 첫 겨울 기후가 되었는지 얼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보인다. 겨울에 다달았을 무렵 종점에 닿았다고 알려준다.
추운 겨울을 느끼는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얼음지붕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가니 여기 저기 얼음과 눈의 굴들이 전쟁때 일선에 서보던 호처럼 사방으로 뚫려있다. 미처 겨울 「코트」를 입지 않았던 신부님은 벌벌떠시더니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었다.
『아니 유신부님 어딜 가셨을까?』
비좁은 굴을 여기저기 다니다가 신부님을 찾느라고 추운바깥에서 한동안을 헤맸다. 한참만에야 신부님이 나타나셨다.
『아니 어디가셨더랬어요? 여태 찾았는데…』
『난 내 뒤에들 오길래 날 따라오는 줄로만 알았지! 아니 너무 추워서… 이제야 한결 낫군』
다방에 들어 가셔서 한잔의 「커피」를 마셨더니 한결 몸이 후련해진다는 말씀이었다. 우리는 구라파의 지붕이라고 일컬으는 이 산 꼭대기 위에서 이태리쪽으로 넘어가는 「케이불카」의 장난감같은 모습을 굽어보고 있었다.
일년에도 몇사람씩 조난당하는 등산가들이 생긴다는 산이다.
빙산이 무너져 죽기도 하고 눈에 뒤덮이기도 하고 눈에 뒤덮이기도 한다는 곳이어서 등산을 할때에는 언제나 등록을 하고 야 올라간다는 이야기였다.
『여기 오길 참 잘한 것 같아요』
신부님은 덜덜 떠시면서도
『이사람아 그래뵈두 난 여기까지 와가지고 적어도 한군데는 더 맛봤단 말야… 「몽부랑」의 산꼭대기 「커피」맛 봤어? 난 봤단 말야!』하는 자랑을 잊지 않으셨다. 깊은 산 높은 산을 관광지로 개발한 그들의 엄청난 계획이 배우고 싶은 점 같기만 했다. 이들은 5년계획 정도의 것은 보통이고 적어도 10년계획 또는 30년계획 같은 것을 내세우고 백년지 대계를 꾸미는 앞을 내다보는 여유가 부럽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