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첵코슬로바키아 신부 한 사람이 철의장막 뒤의 사제생활을 기술하여 보낸 긴 편지가 「베를린」 교구의 주간지 「페트루스블라트」에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첵코슬로바키아의 사제 노동자이다. 정부로부터 사목사업에 부적당한 자라는 판결을 받아 사제복을 벗고 강제노동을 해야하는 수백명의 사제중에 한 사람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미사를 드리고 저녁이면 피로에 지친채 성무일도를 읽는 것이 우리 사제노동자의 유일한 위안이다.
만약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조차 빼앗아 버린다면 우리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들이 집전하는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는 한사람도 없으며, 어린아기에게 영세도 주지 못할뿐 아니라, 고해도 들을 수 없어 죄인을 하느님과 화해를 시켜줄 수도 없고 어린이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지도 못한다.
천만다행으로 우리 사제노동자들의 어머니들이 많이 살아계서, 죄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기구중에 우리를 항상 생각해 주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우리들에겐 착한 천사들이다.
어머니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은 신학책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책들을 서로 돌려가면서 읽고, 종교적 선천문이라는 낙인을 받은 책들의 내용을 빠짐없이 배껴두기도 하는데, 이러한 책을 서방의 친구들이 부쳐줄때 우리는 마치 어린애들처럼 기뻐한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는 우리가 사제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훌륭한 노동자요, 착한 친구임을 알고는 교회에 대한 애착심을 품는 사람이 허다하다.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성총으로 여기고 있는 많은 사제들은 침묵으로써가 아니라 강론과 교리교육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게될 그날을 위해 스스로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틈나는대로 공부하면서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촉진시킨 신학적인 발전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이 교구에서는 매년 20명의 사제들이 사망하고 있으며 철의장막에 둘러싸인 이후 단지 두명의 새 신부가 생겼을 뿐이다.
이곳에서 퐐동하고 있는 사제들의 평균 나이는 66세이며, 이곳에 사제가 한 사람도 없게될 날이 언제일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너무 늙어버리기 전에 이곳의 교회에 자유가 부여되도록 항상 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제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을 꾸짖고 괴롭히는 공산주의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무진장의 노력을 해왔으며, 그 결과 이제 많은 사제들이 공산주의 형제들을 사랑어린 태도로 대하게 되었다. 그래서 때때로 어떤 공산주의자는 사제노동자가 그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은밀한 가운데 신을 발견하는 수도 있다. 【베를린 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