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堂神父(본당신부)와 信者(신자)와의 關係(관계)
信德(신덕)으로 얼버무리는 習性(습성) 止揚(지양)하고
지도자의 普遍的(보편적) 기술지식 培養(배양)해야
본당운영 現代化(현대화) 해야
現實(현실) 理解(이해)부족이 無理(무리) 招來(초래)
회장 忠實(충실)한 橋梁(교량) 역할 하고
한국천주교의 교세는 날로 상승일로의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시기일수록 각 본당의 운영에 있어서도 국민교양의 향상에 발맞추어 사회환경을 직시(直視)하고 현실의 동태를 파악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미 시대도 바뀌어 가고 세대도 교체되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신덕 하나를 방패로 하여 전근대적인 사고방법으로 본당이 운영될 시대는 아닌상 싶다.
여기 표제를 들고 본당을 중심으로 하여 신부와 회장과의 관계를 고찰키로 하는데, 물론 본고(本稿)는 본당의 대소 위치(도시냐 시골이냐), 개성적인 전통 여하에 따라 적응도가 다를 것을 미리 말하여 둔다.
본당의 회장들은 신부의 지시에 의하든지, 또는 자기판단에 의해서든지 본당운영에 있어서 신부를 보좌함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막연한 규정으로 의아(疑訝)가 없을 수 없으며, 여기 여러 면의 기술적 조치가 수반되는 것인데 그 기본태도는 신부와 회장과의 단결, 즉 정신적 결합이다. 교우나 회장으로서 거듭되는 되는 신부의 체임(遞任)에서, 신부들의 개성과 소신에 따르는 본당운영방침의 변모를 추종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러한 본당 운영 방침의 변모는 전진의 양상으로서 해석될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본당의 운영을 위하여 회장은 신부를 보좌함이 직책임에 이의(異議)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신부나 회장에 있어서 우리는 어느 행동의 한계가 있음을 주장하고 싶다. 모두가 본당운영을 위한다는 이념하의 조치라고 하여도 신부는 통솔자 또는 지휘자의 자질과 기술에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일반사회의 장(長) 같으면 이것의 유무가 사업의 성과에 큰 영향을 가져오는 것이며 그 측정이 곧 제3자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인데 본당의 운영에 있어서는 신덕(信德)이란 조건하에 노출되지 않음이 일반일듯 하다.
그러나 본당의 발전에 적지않은 영향을 가져오는 것만은 사실이다. 신부는 온위(溫威)의 양면을 가져야 하지만 시대와 현실의 연구와 아울러 통솔과 지휘의 기술체득으로 최대의 성과를 기해야 할 것이 정도(正道)라고 한다면 회장들을 완전 파악하고 회장을 통하여 반장으로 다시 교우로 지시가 전달되고 운영이 유루(遺漏)없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이 이상형의 운영법일 것이다.
교우의 사정은 회장 반장이 알고 있는 것이니 그들을 통하여 실정을 파악하고 회장외이 친근자의 진언을 과신(過信)하지 말고 「민심」이 아닌 교우의 심정을 알아서 중국식 현군(賢君)과 같은 치자의 태도가 아쉽다. 신부는 우리의 체험으로는 때로 세사에 어두울 경우가 없지 않으며 그 지시가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회장과 상의하여 회장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만사에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요는 회장을 완전 파악하고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회장으로선 신부를 보좌함에 있어서 자기의 행동 한계를 스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회장은 신부의 보좌이지 운영의 주체자가 아니다.
회장은 신부와 교우를 단결시키는 교량(橋梁)의 구실을 가지고 있으며 신부의 운영에 대한 비판자일 수는 없다. 한국인은 흔히 사생활에 있어서도 간섭해서 아니될 것을 간섭하고 남의 일을 제 일과 같이 비판하려는 습성이 있다. 신부의 새 계획에 대해서 교우간에 「可다」 「否다」의 가치판단이 내려지고 물의를 일으키는 예가 없지 않은데 이를 선도하는 직접적 책임은 회장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회장은 신부의 지시나 계획이 어떠하든 간에 항상 신부를 감싸고 본당발전의 수호의 구실을 다해야 할 것이다.
회장들이 본당운영에 참여하게 되는데 새 계획의 토의에 있어서 소신대로 의견을 진술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신부와 1대1의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주종(主從)의 관계에 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신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입안(立案)에 대해서 성심껏 그 가능성을 들고 철회나 수정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일반사회의 회의와 같은 형식이 취해져서는 아니된다고 믿는다. 회장은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보좌자이지 주체자가 아니라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
흔히 우리나라 명사들 중에 회의에서 토의하여 결의에까지 참석하고도 그 결과가 자기 소신과 반대되는 것이라면 결의에 참석한 책임을 망각하고 반대운동이나 비판으로 나서는 것을 본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모르는 행동인데 회장은 일단 회장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외부에 나가서 기밀이 전파나 반대의 의견이나 비판조의 언설을 해서는 아니된다. 이것이 교회 통일을 교란함이 된다. 어떠한 경험많은 신부이든 신부 독력으로 본당운영의 성과를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니 회장은 성심껏 신부를 보좌함이 또는 신부이 잡무를 덜게 하여 신부로 하여금 본당운영에 대한 연구의 심적여유를 주도록 함이 회장의 직능일 것이다 회장은 이러한 중책을 질머진 반면 교우에게 겸허하고 친절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회장은 동시에 교우의 「공복」(?)적인 심념(心念)으로 본당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되풀이하는데 신부와 회장의 철석같은 결합에서 본당운영은 원만히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李崇寧(서울 청량리본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