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人間(인간)] 卑下(비하)와 賤待(천대)의 값
발행일1965-08-29 [제484호, 4면]
무시와 천대를 당함은 영신적으로 진보하는데 크게 힘있는 방법이지만 그러나 이방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 하나 따르고 있읍니다.
이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무시와 천대를 당하므로 우리는 명실공히 불쌍하게되는 것입니다. 무시천대는 실질적으로는 크게 교육적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하며 타인들과의 연락 안에서 우리가 타인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망상이나 망동을 없이하며 천주님께 대해서는 우리가 비록 비천하고 불결한 조물이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친근하시려하고 우정을 나누시려하고 더구나 우리와 결합하려 하신다는 사실을 놓고 천주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따라서 비하를 당하므로 천주님의 눈에 위대하게 되고 그만큼 마음의 넓이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협조는 사실상 우리 자신에 대한 만족감과 사랑과 이기심과 거만으로 우리 자신이 갇혀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만자족하므로 우리 자신을 넓히고 정화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천주의 무한하신 사랑을 받아들일 아량이 조금도 없읍니다. 참 겸손은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우리 수족과 가슴을 결박하는 쇠사슬을 끊고 성총을 받아들임으로 우리 자신을 넓히고 천주님께 가까이 가서 그와 교환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겸손은 또 우리를 평화롭게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의 근심걱정 권태증은 자애심과 초조와 이기적인 동정,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할가 겁을 먹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비하천대는 우리자신이 천주님과 인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아왔고 우리는 역시 우리의 현 입장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아니됨을 깨닫게 합니다. 비하천대는 영신생활안에서 우리를 돕고 있는 많은 사정 가운데 가장 우리를 예수님과 같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생하심은 바로 당신 자신을 낮추시는 길이었읍니다. 또 예수님의 중차대한 교훈은 『나는 마음이 양순하고 겸손한 자니 너희는 나에게 배우라』는 것이었읍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런 표양이나 교훈의 진의를 체득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가짐에 동조해서 그와 얼마간이라도 같아져야 하겠읍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것을 당해보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수고수난을 참으로 마음속으로부터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준주성범」은 일러주고 있읍니다. 그러나 비하천대를 잘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는 바로 비하천대가 진가를 발휘하는데 없어서는 아니되는 조건이기도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섭취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즉 비하천대가 닥칠 적에 마음을 안온하게 갖고 천주님 대전에 나아가 우리를 천시하는 사람이나 조건을 잊어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불연이면 분을 못참아 떨 것이며 천주님의 교훈의 말씀은 우리마음속으로 파고들지 못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마음을 깊이 갈아 흩이고 거름을 줌으로 천주님의 태양광선을 받아 배의 결실을 낼 수 있는 땅을 준비해야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