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29) 「즈네브」를 떠나던 날
관광의 나라 스위스의 여행안내는 전화 11번이
전국통화 자동으로
개찰없는 역구 출입
발행일1966-07-24 [제528호, 3면]
『신부님! 정말로 함께 「로마」로 안가시겠어요?』
수술한 왼팔을 갖고 혼자 「로마」로 다시 들어가려니 걱정이 태산같다. 하는 수 없이 유봉구 신부님께 염치좋은 동행 유인을 했다.
『난 아무래도 내 「스케줄이 있어서 불란서로 떠나야겠어!』
여행가방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나의 딱한 꼴을 걱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신부님의 여행 「스케줄」이 있었다. 나 혼자 단독 「로마」 여행을 강행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신부님을 이 이상 걱정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으례히 그 나라를 떠날 때 해야 할 몇가지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스위스 돈을 바꿔야만 한다.
『은행엘 안내해주십시요』 스위스 돈을 이태리 돈으로 먼저 바꿔놔야마 이태리 땅에 떨어지자마자 우유 한병이라도 사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관에 있는 직원 한 사람은
『지금 은행엘 가봤는데 자 문을 닫았을겝니다. 숫제 기차 정류장으로 가십시다. …거기선 언제든지 어떤 나라돈하고도 바꿀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은행은 낮12시부터 2시까지는 물을 닫고 쉬고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보통 상점들도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낮12시15분이 되면 문을 닫고 쉰다음 1시반이 되어야만 다시 문을 여는 관습이 있는 도시인 것이다.
『가만 있어요, 기차시간이 언제있나를 알아봅시다.』
「즈네브」한국공관의 황씨는 전화를 먼저 절어 알아보자고 한다. 그는 스위스 나라의 전화는 퍽 발달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11번으로 「다이알」을 돌리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간단한 전화번호가 다있어요?』
나는 의아스러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스위스 땅에 온 여행자는 적어도 이 전화번호만은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여행에 관한 문제는 무엇이든 11번으로 전화를 걸면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답니다.』
기차시간, 비행기 떠나는 시간, 일기예보 또는 「호텔」에 관한 것까지 척척 알아서 알려주는 고마운 전화제도였다.
기왕 전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스위스의 전화는 전국 어떤 곳이든 간에 자동 「다이알」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주 벽촌 산간벽지까지도 통화가 자동 전화로 가설이 다 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공항의 「터미날」이기도 하고 철도역이기도 한 「꼬트나랭」역으로 갔다. 사실 나는 「로마」까지 가는 비행기표가 있었지만 기차여행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이태리 돈도 바꿔놨다. 기차표도 샀다. 기차를 타러 간다면서 전송나온 세 분이 모두 지하도로 들어온다. 어찌된 일인지 기차는 안보이고 서울시내에 있는 지하도 같은 곳으로 걸아가게만 되어있다.
『아니 어디서 기차를 타죠?』
『조금만 가면 기차 탈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다들 들어가세요. 저 혼자 가죠』
『그래도 여기까지 나왔으니 기차타는 것이라도 봐야지』
『개찰은 어디서 합니까?』
『개찰요? 개찰구는 없어요. 차있는데 가서 그냥 태민씬 타고 가면 되고 우리들은 거기 가서 짐을 차에 올려놔드리고 돌아가죠』
나는 슬그머니 개찰할 때 보일려고 들고 있던 기차표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공짜로 타는 사람은 없겠죠?』
나는 한국적인 풍경을 상상하면서 우스게 소리를 하고 다같이 웃었다.
나는 차에 올랐다.
좌석표를 보고 내 자리를 잡았다. 며칠만 잘 조심하면 수술자리가 아물 것이라고 하던 팔이 여행가방을 잠간 들고 기차 안에서 서성대는 동안 뻐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전송자의 손들이 한동안 흔들어 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의 고독한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