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2)「로마」의 운전사
회색빛 속의 늙은 「로마」의 아침 「오토바이」 소음으로 밝아 오고
점잔찮은 운전수 「시골사람」 욕보여
발행일1965-09-05 [제485호, 3면]
난생 처음 가보는 구라파 나그네 길이었다. 책에서만 익혔던 「로마」였다.
새벽 4시에 「로마」교외에 있는 비행장에 혼자 도착해보니 촌에서 서울구경온 사람 이상으로 얼떨떨하다.
아는 친구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또 나와 친분 있는 교포나 신부님을 찾을려면 어떻게해야 좋을는지 망서릴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태리 말도 안 통한다.
나는 덮어놓고 신문기자적인 눈치만 갖고 「로마」 시내에 들어가는 다른 동행손님들이 탄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회색빛속에 잠긴 늙은 「로마」는 아직 아침잠에서 깨어나기전인상 싶었다. 「SAS」 항공회사사무실에 당도하니 또 양손에 가방을 든 어리둥절해진 촌놈이 될 수밖에 없다.
「로마」의 아침은 「베시바」(스쿠타)오 「오토바이」 소리로 밝아온다.
항공회사에서 지정해 준 「호텔」로 가자해도 어딘지 알길이 없어 그리던 「로마」시에 첫발을 내딛고도 서성대고 있었다. 이번엔 딴 손님들 가는대로 따라 갈수도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갈곳몰라하는 고아처럼 서성대고 있었다.
『그렇지! 이런땐 「택시」를 타는게 제일야…』 혼자 중얼거리면서 「택시」를 잡았다.
「호텔」 이름을 댓더니 곧 『씨!』(「네」란 말) 하더니 차에서 내려 짐을 차 꽁무니 뚜껑을 열고 차곡차곡 넣어준다.
『역시 「로마」의 운전사들은 친절하군!』
한 10분쯤 달리니 「호텔」 문앞에 다다른다. 역시 운전사가 나와 짐을 꺼내 양손에 들고 자길 따라 들어오라는 눈치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호텔」 종업원들도 마중해주질 않는다. 나는 겁이 털컥났다.
『이렇게 친절한 운전사에게 「팀」을 얼마 주어야 한다?』
그는 나를 「프론트데스크」까지 인도해준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 의자에 앉고 좀 기다려 보라는 듯한 이태리 말이다.
역시 말은 안통해도 표정과 손짓 몸짓으로 대강의 의사는 소통이 된다.
「팁」의 단가를 알리가 없다.
이태리 화폐 「리라」의 가치를 알길도 없었지만 이태리 돈을 바꾸어 놓지 않은 것이 또 큰 실수였다.
『비행장에서 바꾸는 곳이 있었던 것을 쯧쯧』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었다.
나는 10(달라」짜리 미국 돈을 내 놓고 『나 이돈 밖에 없는데 「팁」으로 받을 만큼 받고 거슬러 주슈』하고 한국말과 한국식 손짓을 다했더니 곧 알아차리고 돈을 받아 쥔다.
그는 반면에 웃음이 번져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국채 크기보다도 좀 더 큰 이태리 돈을 몇장 거슬러 준다.
나는 전적으로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 들고 난뒤 나중에 우리 대사관의 H씨와 연락이되어 만났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 운전사한테 촌놈대접을 받은 것을 알았다.
『아니 신형! SAS회사가 바로 이 「호텔」에서 백(미터」앞에 있는데…』
그제서야 난 「로마」의 운전사가 날 차에 태우고 10분 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닌 것을 알았고 약5「달라」(1천5백원) 가량의 「팁」이 지불된 것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어수룩해 보였길래 이렇게 날 속였을가.』
나는 이태리에 가기전에 선배한테 『이태리에 가면 좀도둑이 많으니 단단히 조심하게』하는 소리도 듣고 또 「자전거 도둑」 같은 영하도 보았기에 나대로의 선입감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로마」에 내리자 첫뺨을 얻어맞은 셈이다.
「로마」에 묵고 있는 동안 나의 그 선입감도 시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라보고 놀란사람 소댕보고도 놀란다』는 격으로 난 한번 겪은 다음부터는 한국의 도둑풍토와 똑같이 취급하고 『푸른 하늘과 검정머리와 인정 많은 점등만 한국과 닮은게 아니라 도둑 많은 것두 닮았군』하고 매사에 눈을 부라리며 방범의 신경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전거 도둑」 시대는 이미 지나 있었다. 그 유명한 「로마」의 「종착역」은 그야말로 「로마로 통하는(철로)길」이었다.
사람이 늘 들끓었다.
「소렌토」로 기차여행을 위해 기차표를 사러갔다. 안내 해준 친구가 귀뜸을 해준다.
『아니 왜 이 무거운 짐을 갖고 왔다 갔다 해, 어차피 또 이리 와야 하는데…』
그는 『짐짝을 그냥 여기 대합실에 놔두고 차표 사가지고 와도 되는데…』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 나의 「한국의 방법사상」은 반드시 힘들어도 짐을 꼭 몸에 붙이고 다녀야만 했다.
기차를 타는데 개찰구가 없다. 표를 사가지고 그냥 기차를 탄다.
『한국 같으면 어지간히 공짜배기가 많이 활용하겠네…』 난 몰래 감탄했다.
길거리에는 자전거도 방치된채로 있었고 「베시바」나 자동차가 즐비하게 주차되어있어도 「자전거 도둑」이나 자동차 도난 사건의 신문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촌놈」골리는 운전사가 있고 어쩌다가 남의 주머니에 흥미를 갖는 소매치기군이 좀 있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생각하듯 「그점」에 있어서 「한국과 비슷」한 수가 없었다.
조상들이 이룩해 놓은 문화재에 의해서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어 사는 형편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