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30) 기찻간에서의 지루한 밤
가뭄을 걱정않는 농부들
수도시설 해놓고 물뿌려
한 좌석 6명의 국정 모두 달라
눈치보며 생소한 여행 갖가지 시설에 어리둥절
발행일1966-08-07 [제529호, 3면]
기차안의 복도는 한가운데 있지 않았고 한국의 침대차와 같이 한쪽 창가에 뻗어있었다. 좌석은 세 사람씩 앉게되어 있었는데 동양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여행때 시름겨워하는 것은 여기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먼저 얘기를 거는 사람이 반드시 생긴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할머니가 묻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다. 불란서 말 같다. 난 고개를 저으며
『불란서 말을 모릅니다.』라고 영어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는 자기 옆에 앉은 작업복 차림의 남자한테 뭣이라고 햬기를 거는데 그 남자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가만히 보니 우리가 서로 마주 앉고 있는 여섯명은 이태리 남자, 불란서 할머니, 이태리 젊은 아가씨, 그리고 독일 신사, 나머지 두 사람은 자주 밖에 드나들어 국적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얘기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로 얼려있었다. 그래 떠듬떠듬 영어로 나하고 말들을 나누어 나의 국적정도는 소개할 수 있었지만 말이 안통하니 지루한 여행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 여름인데도 유리창은 굳게 다쳐있었다. 실내 공기는 10분만큼씩 환기하도록 돼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냉방장치와 난방장치가 잘돼있었다. 날이 점점 어두어져가고 있다.
난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밤에 잠을 잘 때는 어떻게 자나 하고… 아무리 두리번 거려봐도 잠 잘 장치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암만해도 내가 침대권을 사야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국의 3등 객실 같이 제가끔 제자리에서 새우잠을 자야하나? 싶어 장거리 여행에 고생스럽게 됐군…하고 남몰래 걱정을 하고 밤을 기다렸다.
차창밖을 내다보니 파랗게 펼쳐져 있는 발들이 시원스럽기만 하다. 가끔 젖소들 떼도 보게되고 포도밭도 보게된다. 그런데 유심히 들으니 무슨 이상야릇한 소리가 농장을 통과할 때마다 들려온다. 마치 벌우는 소리를 확대시켜 듣는 감이다. 이것이 무슨 소린가를 분석하느라고 한동안 신경을 썼다. 나중에 알고보니 밭에 물을 주는 분수장치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비가 안온다고 한국에서 처럼 그들은 기우제를 드리지 않고 이같은 관수시설을 해놓고 있었다. 수도 「파이프」에 나사식 분수장치가 매달려 있었고 사람의 손이 안가도 기계가 제혼자 빙빙 돌면서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처음엔 가까운 거리에서 먼 거리로 3·40「미터」 가량의 높이까지 물을 뿌려주는 것이니마치 비를 만들어 뿌려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가게에 가서 그 기계를 샀더니 아주 간단한 장치였다. 분수기가 뱅뱅돌며 물을 뿜어주는 것은 전기장치도 아니었고 수압관계였으니 자동적으로 수도꼭지에 매달아 놓기만 하면 빗물처럼 그 넓은 밭을 골고루 젹셔주게 되어있는 것이었다.
기차표 조사를 차안에서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차표 조사를 하는 사람 뒤에 몇사람의 시중군들이 따라오면서 담요 한장씩을 노나준다.
『이것을 어떻거라는 걸까?』
남 하는대로 하리라 생각하고 남들이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눈여겨 봤더니 손님의 머리 위에 뚜껑이 덮여져 있는 것을 연다.
그 속에는 두개의 침대가 나온다. 좌석 번호를 보니 난 2층에서 자야만 되게 되었다. 구두를 벗고 올라가려니 여름철의 구두속 위생처리문제가 저으기 걱정일 수 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목욕을 하긴 했지만 유난히 땀이 많은 나로서는 하루에 두어 차례는 양말을 갈아신어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신은채로다. 남몰래 고민거리가 하나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새 양말을 어디에 들어있는줄도 모르는 가방 속에서 꺼낼 수도 없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만의 일이라도 다른 손님에게 불쾌감을 주어 영뚱한 망신을 당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나의 발에서 또 구두에서 무슨 냄새가 안나나를 검진해 볼 수도 었다. 난 바깥 시골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처럼 한동안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다가 화장실엘 갔다. 그리고는 구두를 벗고 무슨 도둑질한 물건을 살펴보기나 하듯 하면서 위생정비를 시작했다. 냄새가 예민한 서구 사람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게 제일 안전하다. 생각하듯 걱정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일까지 신으려면 아무래도 걱정스럽다. 난 양말을 벗어 빨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여름철 밤바람에 이것을 말리느라고 본의아니게 「센치」한 소녀처럼 밤하늘의 별만을 세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