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44) 병원 - 침묵 ③
발행일1966-08-07 [제529호, 4면]
『아들놈아, 아들놈아 어디 있느냐? 내 아들아 대답해라 …네 애비가 너를 찾는거다! …내 아들아 나 여기 있다 여기있어!…』
그의 부르짖음은 죽은듯한 그 수풀속에서 우스꽝스럽게 울렸다.
가끔 눈뭉치가 가지에서 사뿐 떨어졌다. 이것이 그의 탄식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었고, 그것은 모욕적인 것 같이 보였다.
나무들이 이 낯설은 소풍객에 침을 뱉는 것 같았다. 굉장히 넓은 묘지, 흰 카버를 씌운 박물관, 잘 숨겨 놓은 함정이라고나 할까 …끌레망쏘가 잠잠할때에는 개들의 헐떡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순경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벌써 한시간 이상을 허비했다.
『난 아무래도…』
순경이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빨」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짓을 했다.
열 발자국을 더 가서는 노인의 비가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들놈아 대답해라! …어헝, 아들놈아!…』
그들은 늪 가까이로 가고 있었다. 「이빨」과 쁘로뱅씨는 같은 생각을 했고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높이 얼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늪에서는 마치 구원을 애원하는 탈들 모양으로 나무가지들이 드러나 있었다.
『얘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끌레망쏘는 부르짖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두마리 개가 다친 짐승들처럼 짖었다. 개들은 어떤 잡목 숲 속에 뛰어 들어가서 눈을 이리 저리 흩날리고 발톱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여전히 낑낑거리면서 나왔다가는 다시 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노인과 「이빨」은 급히 개의 뒤를 쫓아가며 지나는 길에 그들의 뺨을 후려갈기는 낮은 가지들을 헤쳤다.
『마로! 뒤따르! 이리와!』
순경은 개들을 도로 불러 오려고 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사람들보다 먼저 다달은 개들은 빳빳한 갈색 천무더기와 얼굴 모양으로 생기고 검은 자주빛을 띤 어떤 물건을 치를 떨며 초조하게 냄새 맡고 있었는데 그것은 올라프였다. 「이빨」이 그를 들어올리려 했다.
『아냐! 내가!』
노인이 명령하고 허리를 감싸 안아 올렸다.
그는 여러달째 귀에 낀채로 있은 솜을 뺐다. 그리고 그 귀를 싸늘하게 언 가슴에 갖다댔다.
근심과 추위로 그의 얼굴은 돌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얼굴이 벼란간에 20년이나 젊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고 이 다음에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기쁨, 초인간적인 기쁨이었다.
『살아 있다! 살아 있어!』
그는 소리쳤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그는 짐을 아주 따뜻하게 품에 안은채 성큼 성큼 걷기 시작했다. 짝을 지은 개들은 낑낑거리며 대들었다.
『따라르, 가만히! 마로!』
눈은 이제 오지 않았고 수풀은 그 신비를 잃었다.
이제는 헐벗고 연약하고 버림받은 겨울 수풀에 지나지 않았다.
「이빵」과 쁘로뱅씨는 가슴이 뭉클해서 그들 앞에 싼타클로스 할아버지와 그의 너무 무거운 짐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늙은이는 그의 가슴 속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이 자기의 심장뿐인지 어떤지를 알지 못했다. 잠시동안 그는 올라프가 눈을 뜨고 웃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가 소년에게로 그 커다란 대머리를 숙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타아잔」이니 무어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추위와 공포와 피로가 사람의 몸에 끼칠 수 있는 해를 올라프는 모두 겪었다. 악질 폐렴, 신경발작, 혈액순환의 장애 따위. 「존데」, 주사, 수혈 등 의학으로 그 해독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놓고는 기다렸다. 병원 의사들은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글레망쏘는 아무 말 없이 흰침대 발치에 자리잡고 앉았다. 저녁에는 목구두끈을 끄르고 조끼 단추를 빼고 다리를 펴기도 했다.
그 유명한 「사흘째 안깍은 수염」이 나흘, 닷새째 깎지 않은 수염이 되었다. 그는 자기 집문을 잠그고 날짐승은 「잡혀온 공」과 다른 몇몇 소년들에게 맡겼다.
요지음은 눈에 덮힌 야채밭이 홋이불을 덮고있는 어린 소년보다는 그의 손길이 덜 필요했다.
올라프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했을 적에 이 홋이불을 보고 무서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눈의 고문이 다시 살아나는 줄로 생각한 것인가? 그런 다음 그는 노인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절대적인 환멸과 실망이 역력히 드러났다. 『다른 누구를 기다린건가?』 끌레망쏘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도 역시 슬픔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짤막하고 열띤 말로 소년은 제가 한 기묘한 모험을 노인에게 들려 주었다. 눈에 익은 수풀, 환영하는 짐승들…. 그것은 「일리아드」요 「오디세」였다. 노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노인은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진실을, 처음날 밤 소년이 정신착란중에 그의 눈물겨운 서사시를 되살리며 들려준 이야기를 영원히 혼자만이 간직할 것이다. 얼음같이 싸늘해진 몸, 구두속으로 스며드는 물, 얼어들어와서 나중에는 감각을 잃어버린 발, 길을 잃게 하고 눈을 어리는 눈, 돌라오고자 하는 그 광적인 욕망 - 그러나 어떻게 길을 찾느냐 말이다.
추위로 마비된 귀를 어둠 속에 기울이고… 늑대 곰, 독수리, 강도가 무섭고… 늪 근처에 쓰러져서, 다시 일어날 수가 없고 - …이렇게 해서 「타아잔」을 믿던 이 어린 소년의 고난을 알 사람은 「떼르느레」의 오직 한사람의 주민, 「타아잔」을 모르고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주민밖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의사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문병을 허가했다. 이것이 끊임없이 간호를 하고 있는 노인을 교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프랑쏘아즈 여대장이 곧 달려왔다. 알랭 로베르는 여대장과 같이 올 허락을 받았었다. 숨막히는 병실에 들어서며 그들은 서로 쳐다보았는데 - 말하지 마시요! - 말없는 이 눈길에는 여러날 전부터 억제해 온 동정과 호기심, 비난과 희망이 간직되어 있었다.
마침내 어린 올라프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병실, 홋이불, 얼굴, 이렇게 모든 것이 흰빛인 가운데, 여느때는 고집스러운 머리춤에 가려져 있던 그의 눈이 일찌기 알지 못했던 파란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프랑쏘아즈 여대장은 울고 싶어지고 기도를 드리고 싶어지고 잃었던 그의 어린 소년을 더 잘 생각하기 위해서 혼자 있고싶어졌다.
『나는 시내에 가서 물건을 좀 사야겠다.』
그 여자는 알랭 로베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는 여기 남아있거라 - 그렇지만 말을 하면 안된다!』
『내가 감시하겠읍니다.』
끌레망쏘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침내 교대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여대장이 떠난 뒤에 곧 잠이 들었다. 소년은 발끝으로 살금 살금 걸어서 무지무지하게 커 보이는 침대에 새우처럼 꼬부리고 있는 올라프에게로 가까이 갔다. 그는 겁이 났다.
『그래서?』 소년이 물었다.
『좀더 가까이와.』
올라프는 싸움을 거는 것처럼 말했다.
『내 병은 전염도 안된단 말이야!』
그는, 불을 다시 살리려고 풀무를 부는듯, 숨을 자주 쉬고 풀무소리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주위의 공기는 펄펄 끓었다.
『이거봐, 난 임종을 한번 했다. 다른 애들한테 이 말을 꼭 해라!』
『그게 무너데?』
『죽기 전의 중요한 5분간 말이다.』
알랭 로베르는 그애가 부러웠다. 그는 올라프를 경계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훑어보았다. 이 알 수 없는 패짝이 실증이 나지 않았다. 빛나는 그의 눈, 눈가에 들려쳐진 회색 테두리, 엷은 자주빛 입술, 보이지 않는 재갈을 물린 것처럼 끊임없이 결련되는 그 입
『이거 봐.』
소년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는 엷은 회색 천으로 만든 「샤츠」를 약간 벌려서 샛빨간 그의 가슴을 보였다.
『피냐?』
알랭 로베르가 소리를 쳤다.
『쉬! …그 말을 다른 애들한테 하겠냐?』
(그는 그것이 「마큐로크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너 왜 도망쳤니?』
『자유… 자유… 넌 모른다.』
『그게… 어떻더냐?』
『아아!…』
그는 무아경에 빠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기침 한차례가 독수리 모양으로 그를 엄습해 와서 흔들어 젖치고 발톱으로 바수어 놓았다.
『피를 토하려나보다』고 알랭 로베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은 몸을 꿈지럭거리며 잠속에서 천천히 다시 올라오는 끌레망쏘를 깨우지 않으려고 급히 홋이불 속으로 숨었다. 알랭 로베르는 눈쌀을 찌푸리고 보이지 않는 올라프를 살펴보고 있었다. 경련하는 그 흰 무더기, 그윽한 요동 - 불을 뿜는 「킬리만쟈로」 화산을…
소년은 드디어 샛빨개 가지고 다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