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델간돌포 · 伊太利 NC】 교종 바오로 6세는 3일 주례(週例) 일반알현을 통해 또하나의 교회의 모습을 설명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의 단체를 지난주에 접견한 바 있는 교종은 『불행으로 말미암은 온갖 시련을 겪으며 신앙을 굳게 지키고 사랑의 도움을 받으며 인정많은 자들의 위로를 받고 있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들도 역시 교회가 아닌가? 그들은 교회의 자녀이며 교회의 상징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통의 가치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농아(聾啞)들과 또한 그들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통받는 교회(神戰之會)에 대한 어떤 「비죤」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그들은 진복팔단(眞福八端)을 지닌 참다운 교회, 역사의 무대위에서 관용과 자제(自制)로써 모든 것을 견디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약속된 생명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은 고통은 비록 지상(地上)에서는 다만 희망의 미덕에 바탕을 둔 영적(靈的) 행복을 누릴 수 밖에 없을지라도 영원에서만은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준다.
진정, 교회는 이난들이 겪는 모든 고통, 즉 되와 슬픔과 비참함과 죽음 등에 대하여 위안을 주기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결점에 대하여 풍성한 자비심을 갖고 있으니 바로 이점이 고통받고 있는 교회와 인간 사이에 깊은 이해(理解)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이론상으로나 실질적인 행동면에서나 어떠한 박애주의도 인간의 궁핍을 걱정하는데 있어서는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로 인정된 사실을 덧붙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 그리스도의 수난은 당신의 지체이며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역사이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일뿐 아니라 세계 전역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역사이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가난과 억압 속에서 구속사업을 수행하신 것처럼 교회도 인류에게 구원의 열매를 전달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같은 길을 따르기를 요청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