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1)
발행일1965-09-05 [제485호, 4면]
알랭 로베르는 갑자기 성채(城채)를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성채였다….
저편 강언덕에, 모든 물건을 덜고 거만하고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저 희미한 햇빛 속에 동근 지붕, 총안(銃眼), 작은 탑들이 있었고, 어쩌면 「돌랑(突郞)」까지도 있었는지 모른다.(「돌랑」이 무엇인지 그가 알기나 하는지?) …무슨 기사(騎士)들과 말들이 이렇게 「빠리」 한복판에 살고 있었단 말인가!
『빨리 가자, 알랭 로베르!』
호송관(護送官)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새벽 기상종이 울린 뒤로 사람 없는 거리에서나 역에서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 기찻간에서나 그는 『빨리 가자. 알랭 로베르!』만 되뇌이고 있었다.)
『자아! 또 뭐냐?』
호송관이 다시 말했다.
그는 뒤돌아서서 소년이 꼼짝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물에 무딪쳐 갈라지는 물결모양 잔뜩 찌푸려져 잇닿은 눈섭, 새까맣고 반짝이는 두눈, 말을 하려는 것처럼 아니! 방금 울고난 것처럼 반쯤 벌어진 입술.
눈을 한번도 깜박이지 않고 기차에서는 손을 「포켙」속에 집어넣고 깃을 올려 젖친채 한잠도 자지않고 아무말도 묻지않은 열 한살난 이 어린 소년, 이 괴상한 어린것이 무서워졌었다.
『저기!」
알랭 로베르는 아침이라는 아직 탁한 목소리로 물으며 팔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두개만이 너무 긴 소매에서 비죽 나왔다.)
『저건 뭐지요?』
『재판소다. 오너라!』
『그 속엔 뭐가 있어요?』
『도독들, 살인자들… 판사들! 자 빨리가자!』
알랭 로베르는 이내 고문하는 지하실 층마다 교수대, 소매 없는 새빨간 외투를 입은 사형집행인들이 손으로…
이런 상상을 했다. …예선(曳船)이 지르는 소리로 모든 것이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예선이 「아취」 밑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배를 내려다보려고 다리한가운데까지 뛰어 갔다.
평저선(平底船) 뒷쪽에는 화분들과 토끼장사이에 제 나이 또래의 한 소년이 벌렁 누워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호감을 지니지 않은채 서로 만났다.
(나도 도망가면 어떨까?)
하고 알랭 로베르는 너무 긴 소매 속에서 주먹을 꼭 쥐며 생각했다.
『봐라!』
그를 따라온 호송관이 말했다.
『이게 유명한 전망이란다. 여기는 재판소, 왼쪽에는 상사(商事) 재판소와 경시청(警視聽)…그리고 저 뒤에는 시립병원 아주 오래된 병원이다.』
재판소, 경찰, 병원이 세마디 말로 어른은 돌로 지어진 세계를 만들어 놓았었다. 어린것은 그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배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아! 저 배, 누워있는 저 아이-벌써 저렇게 멀리…)
알랭 로베르는 머리털이 곱슬거리는 머리를 쳐들고 마음씨 좋게 웃으며 말하는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모자 안경 우비-모두가 하나로 되어있었다…여러 고적(古跡) 가운데 서 있는 또 하나의 고적-어떻게 그 손이 아직 따뜻할까?
『…또 꽃시장도 역시 볼만하지』 그 사람은 말을 맺았다.
그러나 소년은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꽃시장 저쪽에서 개 한마리가 그들 앞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알랭 로베르는 웬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대가리와 목을 쑥 내밀고 눈은 한군데만 보며 그 개는 사뿐한 걸음으로 뛰고 있었다. 개는 배가 그러하듯 그저 고집스럽게 앞으로만 곧장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사람들이 많이 거닐고 그렇게도 요란스러운 그 네거리 한가운데를 그 개가, 혼자서 아무 소리도 없이 급한 걸음으로 지나간다는 이상한 일을 알랭 로베르를 스치고 지나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 개의 세계는 다만 그에게서 자꾸만 달아나는 한줄기 냄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개는 아가리를 벌리고 혀를 빼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돛단배가 방향을 바꾸듯 잠깐 망서렸으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자동차들을 아랑곳 없이 행길을 비스듬이 건너갔다. 재판소 입구를 지키는 순경들 중의 하나가 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알랭 로베르가 그것을 눈치 채고는 눈섭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때에, 자아, 그는 제 심장이 뛰는 것을 아주 분명히 들었다. 우비 입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그것이 들리지 않을까?
개는 건너편 보도(步道)에서 제길을 잘 알아보기나 하는 것처럼 유쾌한 듯이 길을 곧장 계속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광장을 한바퀴 돌아서는 다시 제가 떠났던 자리로 왔다.
그 때에는 숨을 헐떡이며 멈추어 서서 꼭 죽어가는 사람들이 하는 몸짓으로 이쪽으로 다음에는 저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런데 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알랭 로베르는 그 개가 목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조금 전부터 이 어린소년은 숨쉬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는 크게 한번 숨을 들이 쉬었는데 「새액」 소리가 나는 바람에 전신이 떨렸다.
『뭐냐?』
아무도 듣지않는 가운데 시립병원의 창건(創建) 이야기를 하던 호송관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요!』
소년은 윤기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성 루이 다음엔요…』
그는 평화를 원했다-어린이들의 평화를, 그것은 어른들이 말을하는 때이다. 그는 그 개가 집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된 길이었고 또 개도 그것을 깨달은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평화를 원했다,
『그래서 성 루이 다음에는…』
개는 반대편으로 다시 떠났다. 흰점이 박힌 빼빼마른 갈색 개였다.
털은 선고를 받은 늙은 임금의 호사스러운 옷처럼 그 몸둥이를 둘러싸고 출렁이고 있었다.
훌륭한 달리는 기계!
(자아, 저놈이 뛰어야 할만큼은 뛸수 있겠지)하고
소년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개는 방금 걸음을 다시 멈추었었다. 알랭 로베르는 개다리가 부르르 떨리고 약간 몸이 쳐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몸을 떤 것인가. 아니면 바람에 털이 흔들린 것인가? 개는 갑자기 자리를 뜨더니 거의 같은 장소로 해서 같은 행길을 건너질렀다.
이번에는 자동차 한대에 치일뻔 했다. 알랭 로베르는 멀리서 그것을 막으려는 듯이 팔을 올렸다…개는 어깨를 쭉 스러뜨리고 비굴하고 겁먹은 시선을 보이며 물길이 출렁이듯 되돌아왔다. 순경은 손가락으로 개를 가리키며 두 동료에게 눈짓을 했다.
『이거 보세요. 집 잃은 개들은 어떻게 되지요?』 알랭 로베르가 벼란간 물었다.
『허지만… 그건 아무 관계도 없는 거다!』 호송관은 안경을 바로 잡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생뜨 샤벨성당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냔 말야요?』
『야견(野犬)은 경찰이 잡아서 계류소(繫留所)로 데려가지』
『그럼 거기선 그 개들을… 거둬 주나요?』 (그의 목소리는 희망으로 떨렸다)
『제사 지내지』
『아 그래요… 그렇지만 누구한테요?』
소년은 조금 후에 말을 이었었다.
『누구한테라니?』
『누구한테 제사지내냔 말이야요.』
(그는 한동안 거창한 말의 함정에 걸려들었었다.)
『제사 지낸다는 건 죽인단 말이야.』
그 사람은 말했다.
(그리고 「죽인다」는 말 대신에 「제사 지낸다」는 말을 쓰는 사람들축에 끼는것이 기쁜것 같았다.)
『죽여요?』
알랭 로베르는 거의 부르짓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그 개들이 뭘 했게요?』
『그건 질서를 위해 그러는거야, 집 잃은 개들은 질서를 위해서는 위험한거란 말이다…』
호송관이 대답했다.
순경들의 생각도 같은 모양이었다.
알랭 로베르는 순경들이 모여들어서 밤새들 모양으로 망또를 펼치는 것을 모았다.
그들은 무섭도록 우지하게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옆구리를 떨며 걸음을 멈춘 개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개는 감색옷을 입은 그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쳐다보고 냄새를 맡으며 그들에게로 약간 고개를 내밀었다. 꼬리까지도 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