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리 안에서] 여성 복장
발행일1966-08-14 [제530호, 4면]
■ 神父의 意見
俗과 聖의 개념 차이?
여름철이 오면 여러가지 여름의 역사가 벌어진다. 바갓가에는 해수욕군들이 우글우글하고 다방이고 회의실에 가면 얼음덩이가 판을 친다. 그런데 성당에서도 여름이 오면 가끔 여름시비가 벌어진다. 시비의 주인공들은 여성들의 반나체복장이다. 「반나체」라고 했으니 일부여성들은 대발노발 할지 모르겠다. 어떤 본당에서는 소매가 완전히 없는 복장을 한 숙녀들에게는 성당 입장을 거부하고 성체 난간에 나왔을 때는 보기좋게 「비토」당하기도 한다. 오늘 「노 슬리브」의 주인공의 말인즉 『사회복 따로 신앙생활복 따로 한계를 그을 필요가 있을까?』하는 말에는 따끔한 일침을 받는 기분이다.
왜냐하면 「사회복」 「신앙복」을 구별하는 한계에서 잘못하면 「사회생활」 「신앙생활」을 분리해서 일단 성당에 와서만 천주의 자녀가 되고 성당밖을 나가선 세속의 자녀가 될 우려가 있다. 「노 슬리브」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면 어찌 그 아름다움도 천주님의 아름다움의 반영이 아니겠는가?
『아름답다』의 판단 기준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구라파의 유행을 따라가는 이태리 그중에서도 「로마」, 그 안에 있는 「바티깐」 궁전에서도 키가 큼직한 스위스 군인들이 「노 슬리브」의 주인공들을 입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쯤도 우리는 알아야 하겠지. 요컨대 「노 슬리브」로 천주님을 찬미한다는 그 자체가 나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의 작은 존재가 작은 진선미를 바친 것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속된 내용이 신성한 성전에서 인정될 수 없다는 원칙적인 문제다. 「노 슬리브」가 그런 속된 개념이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노 슬리브」의 주인공들 모두가 속된 존재들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그런 지탄을 받을 수 있고 따라서 대중이 모이는 성전에서는 부당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론뿐이다.
때에 따라서 너무 보수적인 할아버지교우들의 눈에는 더한층 불쾌할 수 있겠고 또 한편 일부 젊은층들에게는 도리어 유쾌한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거룩한 교회라는 것과 속(俗)과 성(聖)을 구별해야 하는 교회니까 그럴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노 슬리브」는 대중복이 아니니까 대중이 모인 그곳에는 삼가해야겠다는 이론도 타당하지 않는가?
■ 信者의 意見
「사회복」 「신앙복」 따로 둘 필요있나
자연계의 서슬퍼런 성장에 비해 기온에 따른 인간의 나태와 정지상태는 달갑잖은 대조다. 살인적 더위도 막바지에 들어서고 보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은 절로 밴다. 그래서 우리들 몸에 걸친 옷은 단조롭다 못해 형용만을 유지하려든다.
그래서 요즘 여성들이 「노 슬리브」를 호용한다. 이 옷이 환영받게된 것은 다만 남에게 주는 시각적으로 경쾌하고도 활동적이라는 까닭일 듯하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한복을 제외한 하절복장은 만들다보니 죄다 팔을 생략한 동체(胴體)만의 옷뿐이다 그래서 주일날에는 미사 참례하려 나들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약간 당황하게 된다. 경신행위때의 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타당한 복장에 대해서 신부님의 걱정까지 들은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보니 미사참례때 입을 옷을 따로 마련했어야 하는걸…. 후회해본다.
사회복 따로 신앙생활복 따로 한계를 그을 필요가 있을까. 사회와 소외된 신자가 된 것 같다. 인류원조 아담과 예와를 분득 생각한다. 낙원에서의 그네들의 의복이란 우리들보다 간편하고 어쩌면 전혀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의식과 의복이나 사상에 얽매인 현대인들 보다 더 순결하고 진실되게 그들의 창조주께 영합하려 했을 것이다. 비록 창조주의 단일회의 명을 처스려 만회할 수 없는 실수는 범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저 미국의 일부 나체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자는 것만 아니다.더구나 찬바람이 스칠때까지도 「노 슬리브」를 입을만큼 고집센 여성은 아마 없을 것이니 신부님들 방심하시길. 위에 말한 그런 지엽적인 것 보다 더 여성교우 서로가 보다 근본적 신아에로의 자중을 촉구함이 어떻까? 오히려 지나친 형식적이며 독선적 신앙의 과시를 좀 지양해야 되지 않을가 싶다.
따라서 여성들도 맹목적인 신앙을 불식하고 보다 양식과 지성을 겸비한 실천적인 신앙인이 돼야 하겠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성실한 인간성이 결여된 교인이야말로 비판의식이 강한 현대에서 지탄받기 알맞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 여교우들 태반이 종교적 정서가 너무 결힙돼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차라리 신앙의 근본적 요소가 되지 않을까.
(__ 李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