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家(국가) 發展(발전)을 위한 個人(개인) 參與(참여)의 重要性(중요성)
社會(사회) 經濟(경제) 生活(생활) 向上(향상)을 위한 信者(신자)들의 積極的(적극적) 參與(참여) 時急(시급)
때때로 우리는 국민경제 향상이나 복지사회건설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에 있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다시말하면 이러한 문제는 저위에서 일하는 대통령이나 국무위원 국회의원 또는 정부 각 부처를 비롯한 지방관청에서 알아서 할일이지 미약한 나 자신 즉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는 것이다. 우리들은 매일같이 신문을 통하여 정부에서 어떠한 일을하고 있는지를 읽음으로써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지를 어느정도 알수있는데 우리들은 물론 정부에서 모든 일을 잘하여 우리국민 개개인에게 어떠한 혜택을 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그러나 이세상 일이란 모든것이 계획하는데로 잘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럴때 일반 국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불평을 하기도 한다. 예를들면 물가는 올라가는데 우리들이 받는 월급이나 수입이 이에 따르지 못하여 생계가 곤란하게 되면 제각기 정부에 대하여 그 책임을 돌리면서 불평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불평은 역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일을 잘못했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는 어느정도 이해가 갈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부정을 했다는 얘기를 듣게되면 실망에 잠기게 된다.
■ 個人과 國家
이런 경우 우리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한다면 그러한 좋지못한 현상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만 그 책임을 묻지 말고 혹은 나 자신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나의 권리와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물어보는 사람이 과연 몇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국민이 없는 정부는 있을 수 없으며 특히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국민들의 투표에 의하여 정부가 세워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국민 한사람 즉 개개인의 책임을 아니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고 있는 한표의 가치는 내가 원하는 정부가 어떤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 나서서 우리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좋은 것인가를 결정하는, 참으로 귀중한 한표인 것이다.
과거의 선거 경험에 비추어보아 선거 운동 당시의 입후보자들은 마치 훌륭한 인격과 아름다운 미덕의 소유자인 것처럼 자기를 나타냈으며 굉장한 여러가지 선거공약중 즉 약속들을 하기는 하나 선거가 일단 끝나면 거짓말에 속았다고 불평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 國民된 責任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대부분의 경우 선거가 끝난 후 그들의 행동을 볼때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 결국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곳에서 불신임을 받게되는 것이 아닐까. 국민의 대부분은 날마다 신문에 나는 여러가지 기사를 읽으면서 상을 찌푸리곤하며 어떤 이는 욕을 하기도 한다. 1백명중 99명은 이와같은 심정인지 모른다. 그럼 나머지 한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마 신문을 보지 않았거나 신문을 보기조차 싫어할 사람일는지 모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러한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를 반문하고 싶다. 이것이 단순히 몇몇 사람들의 잘못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개개인의 책임인지 말이다.
국민은 좋은 정부를 원하고 있으며 정부는 좋은 국민을 원하는 법이다.
그러나 만약 정부에 잘못이 있다면 이것이 과연 정부만의 책임인가 하는 말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국민개개인에게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개개인은 그다지 개인의 가치와 그 중요성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정치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있어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어떤 일이 잘못되게되면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생각일까?
■ 나의 國政參與
우리들이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살기좋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고 원한다면 모든 국민 개개인은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좀더 잘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구하고 나아가서 실천하지 아니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 모든 국민들의 의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만약 우리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또 무엇을 바랄 수 있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가톨릭 신자들과 관련시켜 생각해 볼때 사회경제분야만 들어 말하더라도 여러가지 핑계로써 그러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하고 이유를 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러면 어디에서 이에 대한 참고 자료를 얻을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하다. 이모든 대답들은 역대 교황께서 그들의 회칙을 통하여 너무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교황 비오 9세부터 레오 13세까지, 비오 10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요안 23세 그리고 현교황 바오로 6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톨릭교회는 너무도 훌륭한 많은 회칙을 선포하였던 것이며 이러한 역대 교황들의 회칙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조사연구사업을 토대로 쓰여진 것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노동등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 가톨릭이 나아갈바 제반사회원리와 우리책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가톨릭者와 國民
아마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세계 어느곳을 막론하고 이러한 역대교황의 훌륭한 회칙을 잘 읽고 있지않는 경향이 없지 않다. 또 읽는 이가 있다하더라도 여러가지 전문적인 특수한 용어들이 있어 읽어봐도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이 원하는 바가 우리 한국을 지상의 낙원으로 만들고자하는데 있다면 우리 신자들 가운데 남녀를 막론하고 누군가가 이 훌륭한 사회원리를 지도하는 사회지도자가 나타나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사회지도자는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져야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지도자적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는 그만큼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외면한다면 누가 해야된단 말인가.
가톨릭사회원리의 연구와 그 보급과 실천은 결국 우리 가톨릭신자들이 해야 할 의무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물론 나아가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사회원리를 널리 보급해야함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특권이요, 또한 임무인 것이다.
■ 가톨릭의 社會 參與
앞서 말한 역대 교황께서는 한나라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원리를 채택해야하며 어떠한 원리에 기초를 두어야할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원리에 따라 사회 공동선을 위하여 살아나가려면 우리는 이 원리를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하겠는가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 하나의 방법은 성인교육이라 함은 문맹자 퇴치운동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백성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경제·사회문제에 대한 것을 교육하는 하나의 대중적인 운동을 말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개발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운동의 목적은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으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서 상호의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은 사회를 떠나 살수 없는 것이다. 즉 개인은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사회는 결국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자질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 개개인의 자질을 어떻게 개발하며 어떻게 하면 사회경제문제에 대하여 최대의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는 오직 교육이라는 수단밖에 없다.
즉 사회개조는 교육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가 아무런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자포자기하고 있다.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사고방식이다.
■ 協同精神
한나라의 참다운 힘은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나 지식수준을 막론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의 조그마한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협동교육연구원의 성인교육운동의 이야기다. 협동교육연구원은 메리놀수녀회에 의하여 지금으로부터 5년전에 설치되었다.
초기 3년간 1960년부터 1963년 7월까지는 부산에 있는 메리놀수녀원에 그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당시까지는 「협동조합교도봉사회」라고 불리웠다. 1963년 7월에 사무실을 서울에 옮기자 그 명칭을 개칭하여 「협동교육연구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68의 5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제2한강교로 가는 길가에 있는 것이다.
협동교육연구원은 국민대중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수준을 향상하기 위하여 성인교육을 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카나다에서 일어난 이른바 「안티고니쉬」운동의 경제적 협동을 통한 성인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연구하여 이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알맞도록 적용하여 일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안티고니쉬」운동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노바스고시아」라는 지방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곳이었는데 이 운동을 통하여 농민, 어민, 광부,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운동을 통하여 잘살게 됨으로써 사회개조를 이룩했다는 생생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운동인 것이다.
■ 카나다에서 일어난 奇蹟
이 운동은 몬시뇰 코디 박사와 탐킨스 박사(신부)를 비롯하여 여러 신부들과 평신도지도자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성방지거 사베리오」대학교 교수였던 것이다. 이 운동을 일명 「성방지거 사베리오 대학운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대학에서 교도부를 설치하여 국민들을 교육했기 때문이다.
카나다 「노바스코시아」주 「안티고니쉬」라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학교에는 「코디」 연구원이라고 불리우는 협동조합 문제를 연구하는 곳이 있으며 현재 몬시뇰 에흐·제이·스미스께서 원장으로 계신다.
「안티고니쉬」운동은 과거 35년간 자라왔으며 성인교육을 통한 경제적 사회적 협동운동의 원리와 방법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으며 통계에 의하면 77개국의 지도자가 이곳에서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바쳤던 것이다. 한편 이곳에서 공부를 마친 세계 각국의 지도자는 「안티고니쉬」운동의 방법으로 자기나라의 빈곤을 구축하고 보다 더 잘살기 위하여 각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협동 교육연구원도 이와 마찬가지로 네 사람의 직원이 이곳에 가서 직접 공부하였으며 그 방법을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적응하여 백성들을 교육하는 하나의 선인교육기관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운동을 시작 했을까? 두말할 것 없이 국민 개개인의 자질을 개발하고 협동조합과 같은 경제적 협동과 정신적인 인간개조를 함으로써 교육을 통하여 보다 좋은 사람과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 우리나라서의 「안티고니쉬」 運動
우리 협동교육연구원의 경험은 어느정도 그 목적하였던바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즉 과거 5년 동안(1960년부터 1965년까지)은 주로 우리나라의 신용조합운동을 지도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왜 신용조합운동을 먼저 시작했을까? 그 이유는 사회개조는 교육을 통하여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런데 그 교육은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가장 필요로하는 경제부채와 직결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운동은 하나의 경제단체이다. 그러나 한편 인격단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합원 개개인의 교육이 없이는 모처럼의 협동조합운동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교육을 제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協同組合運動과 그 始發點
협동조합에는 소비조합, 생산조합, 신용조합과 같은 여러가지 종류의 협동조합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협동조합운동은 신용조합운동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가장 가능하며 가장 유리한 운동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신용조합을 제1차적인 사업으로 먼저 택하였던 것이다.
국민대중들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돈인 것이다. 그러나 그 필요한 돈을 어디서 구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고리채를 내서 쓰는 것이 일쑤인데 그 결과는 농민이나 노동자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더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마는 것이다. 여기에 신용조합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즉 부락이나 직장이나 단체나 교회 등 일정한 공동유대를 가지고 서로 잘알고 믿을 수 있으며, 아침저녁으로 잘 만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푼돈이라도 계속해서 저축하고 돈 이자를 받고(보통 한달에 1부 5리)서로 융통해 쓰는 하나의 상부상조를 통한 자조운동인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협동조합운동의 하나인 「신용조합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국 알고보면 형제가 형제를 도와주는 운동이며 이것이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 하나의 형제애의 운동인 것이다.
■ 가난의 貯蓄
여기에 우리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사랑의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또한 교육적인 운동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축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이것을 교육받고 보면 자기도 저축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용조합에 들어오기 위하여는 소정의 강습회에 나와서 교육을 받아야만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주게되는데 이 교육을 일단 받아본 사람치고서 저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96개의 신용조합이 조직운영되고 있으며 조합원 총수는 약 13,000명이며 이들이 매일 1원, 5원, 10원부터 수백원 수천원까지 저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저축된 돈이 약2천3백만원을 돌파하고 있으며 이 돈은 수백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고리채정리, 농사자금, 상업자금, 의료비, 기타관혼상제비 등 생산은 물론 생활에 요긴할때 싼이자로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기엔 이들 조합원의 대부분이 이 조합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 신용조합이 잘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과거에 저축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신용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가능케 했는가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과 국가발전이라는 이글의 제목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조합원이 되기 위하여선 하루저녁에 2시간정도씩, 5일간에 10시간 또는 12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게 된다. 이 교육을 통하여 저축과 대부의 방법을 비롯하여 조합원의 권리 의무 그리고 신용조합운동의 원리 등을 배우게 된다.
■貯蓄과 國民生活
이 조합원 강습을 통하여 저축의 필요성과 국가경제발전에 있어서의 자본형성의 중요성을 배우고 깨닫게되며, 우리국민 개개인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저축하는 국민이 될 수 있는 책임감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감은 개인의 가계문제뿐만 아니라 국가경제 발전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적축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토론회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하면 우리 가족과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결국 협동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자기의 가난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라를 살게해주겠지 하는 의뢰심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 자신의 문제는 결국 그 자신이 해결해야하며 어느듯 자립자주의 정신을 갖도록 된다. 이러한 새로운 결심과 각오는 결국 협동으로 단결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는 국가경제 발전에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협동심이 한마을과 직장과 교회를 더욱 다결케하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 뿌리를 깊게 박아주는 것이다.
■ 社會改造의 바탕
그들은 토론회를 통하여 자기의 생각과 의사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와같은 방법은 그들의 숨어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협동적 노력을 촉구하는데 있어 열성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로 변한다.
이리하여 하나의 단체가 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개조의 중요한 동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민주주의는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들의 임원을 그들의 의사대로 투표에 의하여 선출하며, 가계부와 부기를 배우게 되고, 돈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에서부터 그들의 경제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신용조합의 교육은 사람의 능력을 개발하고 잠재적 소질을 발달시켜 결국 보다 좋은 보다 책임있는 국민을 만들고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기초를 잡아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협동적 노력과 단체행동을 통하여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이상 더 말하지 않으려 한다.
협동교육연구원은 이상에서 말한바와 같이 과거 5년간 주로 신용조합운동에 주력해 왔다. 그리고 그 성과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1965년 5월에 와서 한국신용조합연합회는 연구원과 분리하게 되었으며 이제 연합회는 자치의 원칙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따라서 협동교육연구원은 제1차적인 사업계획인 신용조합운동의 연합회의 손에 넘겼으며, 우리로서는 주로 신용조합운동에 종사할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이른바 사회지도자 교육과정만을 지도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소비조합운동, 주택조합운동 그리고 지역사회 개발운동 및 노동조합운동 등 보다 광범위한 새로운 경제사회분야의 교육을 하게 되었다. 이와같은 분야외에도 우리 가톨릭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회회칙을 교육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 社會·經濟向上과 敎會의 使命
이러한 모든 교육을 한마디로 성인교육 또는 사회지도자 강습회를 통하여 우리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계속보급 하고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지도자 강습회는 현재에도 개최하고 있으며 과거에 8차에 걸쳐서(신용조합 포함) 약 150명의 지도자를 양성 배출했다.
이들은 각자가 일하고 있는 직장이나 혹은 교회에서 각기 무엇인가 사회 경제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연구원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기술을 활용하여 그가 일하고 있는 부락이나 직장이나 교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향상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잘 훈련되고 교육받은 한사람의 지도자는 수백명,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백성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의 발전과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는 이러한 사회 지도자의 양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히 요청 된다고 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 것이며 천주의 뜻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세상을 「천주의 나라」라고 볼것같으면 어찌하여 우리들이 이 지상에 가난이 없는 지상의 평화를 건설하는데 게을리 해서 될 것인가! 우리의 가톨릭교회에서 가르치는 원리에 따라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다하여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들이 진리를 원하기만하면 우리도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우리연구원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역대교황께서 가르치신 사회회칙에 따라 모든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 원리를 배워 실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아무쪼록 당신의 마음의 협조와 격려를 보내주시기 바라며 우리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일하는날 어느 땐가는 우리한국을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가브리엘라 修女(메리놀會修女·協同敎育硏究院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