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지상) 典禮(전례) 세미나] 典禮運動(전례운동)의 目的(목적)과 意義(의의)
그 外的(외적) 變更(변경)을 떠난 根本的(근본적) 考察(고찰)에서
거룩한 秩序(질서)로 生活(생활)하는 천주의 백성, 전례 통해 그들중에 臨(임)하는 그리스도
천주영광에 參與(참여)코 聖化(성화)
人類救援(인류구원)의 방편되고
明白(명백) · 眞實(진실)한 表徴(표징)으로 時代(시대) · 民族(민족)에 적응토록
발행일1966-08-21 [제531호, 4면]
공의회는 전례에 관한 헌장을 기초로 해서 본당마다 전례운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거룩한 전례를 그 외적인 변경에서 보다 그 기본적인 목적과 의의에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교회의 전례와 그 방법을 통해서 당신의 영원한 사제품을 실천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주의 백성으로서 전례에 의해 그리스도의 사제품에 참례하며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전례는 천주의 영광이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는 그 말씀과 특히 성사로 인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EPIPHANIADEI) 인간은 그의 영광을 전례를 통해서 발견하며 그의 영광에 기본적으로(EXISTENTIALITER) 참여하도록 시키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사느냐고 하는 문답책을 따라 천주님을 찬미하고 성총을 얻고 천당으로 가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이는 인간중심사상에서 벗어나고 천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대로 사람은 천주님의 영광을 발견하고 인저하며 그의 영광에 참례하기 위해서 갈고 있다고 우리가 말해야 되겠다. 그리고 천주의 영광에 참례함으로써 또한 참례하는 그만큼 인간이 거룩하게 된다면 전례는 인류의 구원이 된다. 그러므로 공의회는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고 말한다. (전례에 관한 헌장 10조)
전례이외에 교회의 모든 활동과 그 목적 또한 언제나 전례를 통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며 또한 효과있게 실천되는 천주의 영광과 인류의 구원이라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신자들의모든 활동과 일반적 활동까지도 천주의 말씀과 성사 즉 전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전례는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인 교회의 활동으로써 온 천주의 백성의 활동이다. 사제만이 활동이 아니고 성가대의 활동뿐 아니고 본당 회장만의 활동도 아니다.
성당에 모여있고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대표하는 모든 신자들의 활동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사제와 백성(신자)만으로 구별되어 모든 기도를 교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백성이라면 질서없는 대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주의 백성은 거룩한 질서에 의하여 조직돼 있는 백성이며 천주의 가족으로서 사회적 질서를 드러내는 백성이다. 가족에서 아버지의 위치와 일이 잇으며 어머니의 위치와 일이 있듯이 천주의 백성은 전례를 실행할 때에도 사제의 위치와 생할 부분이 있으며 신자들의 대표인 회장과 해설자와 복사들 그리고 성가대 또한 남교우와 여교우들을 대표하는 신자들의 우치와 행할 부분이 있다.
각자가 자기 부분, 그리고 자기부분만을 맡고 실행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어른만이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표할 자격 있듯이 어른들이 미사때 복사하는 것은 가장 적당한 것이다. 또한 성가대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성가대가 있어 일반신자들이 성가를 못했다 해서 이젠 일반신자들이 성가 함으로써 성가대는 성가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되기 쉬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서로가 새로이 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전례를 통해 모여있는 천주의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전례의 특징이다. 그리스도는 성체로서 계실뿐 아니라 같이 모여서 기도하며 성가를 부르는 신자들과 더불어 계신다. 그리고 천주의 말씀을 낭독할 때도 그리스도 친히 말씀하시면서 계신다. 그러므로 복음이나 독서를 낭독하는 자들이 예의 바르고 또는 품위있게 낭독하는 것이 당연하다.
천주의 말씀을 듣고 이해함으로써 신자들은 천주께 대답을 해야하는데 너무 빨리 낭독함으로써 진실한 대화의 분위기를 해친다면 전례의 기본적인 뜻과 목적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전례는 천주의 백성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내적, 외적 태도의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천주의 영광을 드러내며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전례의 활동이 그리스도게서나 성교회가 세우겼던 볼 수 있는 표징으로써 실천이 된다. 이 볼 수 있는 표징은(예를 들면 영성체의 빵) 신앙의 신비와 이 신비에 속하는 성총을 그대로 드러내어야 하며 신자들이 볼 수 있는 표징의 신앙적 내용을 쉽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축성된 빵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음식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제병이 얇은 종이의 맛보다 진짜 빵의 맛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리고 영성체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만찬에 참례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신자들이 참례하는 그 미사때에 신자들을 위한 빵이 축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미사때 축성된 큰 제병으로 영성체 하고 신자들에겐 이미 축성된 감식 속에 모셔둔 성체로써 영성체 하도록 한다면 사제는 혼자 만찬에 참례하고 신자들에겐 잔치에 참례한다는 표징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디서 구해온 약을 노나주는 기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의 표징은 진실한 표징이라야 하며 그 표징에 속하는 신앙의 신비는 똑똑히 나타내야 한다. 따라서 전례의 모든 외적인 표징은 그 표징이 가르치는 신앙의 신비를 현대사람 뿐 아니라 현대한국인에게 맞는 것이라야 한다. 예를 들면 신자들이 미사 때에 서있는 태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낸다면 현대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를 어떠한 외적 태도로써 드러낼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공의회는 전례에 관한 헌장과 전례운동을 통해서 모든 신자들에게 신앙에 대한 더욱 깊은 인식을 시키며 그들의 신앙을 매일 새롭게 하며 굳게함으로써 신자들이 어디서나 언제나 일반생활 속에서 모든 것을 거룩메 하고 또한 모든 것을 거룩케 함으로써 천주의 영광을 온인류 앞에서 밝히고 온인류에게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하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성교회이 유일한 목적과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