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 回顧(회고) 展望(전망)] (下)
가톨릭의 現代(현대) 世界観(세계관) 確立(확립) 敎會(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信仰(신앙)·現實調和(현실조화)·現代適應(현대적응) 어떻게…摸索(모색)
【RNS 參照】 가장 큰 여론의 대상이되고 동시에 가톨릭신자개개인의 신앙생활 및 그들의 단체로서의 사회적 자세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공의회의제는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 의안(議案)이다.
이 의안의 유래를 말하면 그것은 제1회기가 마감할 무렵 벨기의 쉬넨스 추기경의 제의에 의한 것인데 그는 공의회의 모든 문제를 ①교회는 무엇이며 ②교회는 현대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두가지 관점에서 다루자고 제의하였다.
그런데 상기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 의안은 그중 둘째 질문에 대한 교회의 해답이 될 것이다.
초안으로서는 당초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그 어느 것도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의 주의를 계속적으로 환기시켰고 대개의 초안은 과도히 구미(歐美)적인 관점에서만 작성되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아프리카 카메룬의 조아 대주교는 이에 대한 논평에서 『당신들은 부인들이 월중(月中) 어느날에 「필」을 복용할 수 있는지 묻는 시대에 살고있지만 내가 속하는 세계(아프리카)는 아직도 일부다처제하(一夫多妻制下)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같은 20세기라고 하지만 구라파의 현대와 아프리카의 현대의 양상이 다름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문제가 그 자체로서 복잡하단하고 또 각양각색이니 적합한 해답을 찾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공의회는 따로 어떤 해답을 찾기보다 차라리 요안 교황의 두 회칙 「어머니와 교사」 및 「지상의 평화」를 공의회 율령으로 비준함이 낫지않겠느냐고 제의하게까지 되었다. 하지만 지난 제3회기에 「교회헌장」이 채택됨으로써 쉬넨스 추기경의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둘째 문제에 대한 해답에도 밝은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의안 작성에 있어서 야기된 난관은 신학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인간과 그의 운명에 대한 전폭적인 긍정과 더불어 최근 수세기간의 가톨릭교회의 체험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한편 인간과 그의 현세생활을 전적으로 긍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현세가 그의 목적이 아님을 선언한다. 예수 친히 『내나라는 이세상것이 아니다』 『나는 세속을 위하여 기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뿐만아니라 『이 세상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가 아니다』라는 말은 지금까지의 강론과 신심지도소가 외친 교훈이었다. 과연 그리스도자(者)는 인간의 운명은 영원하고 사후(死後)에 영생(永生)이 있음을 신앙으로써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자(者)는 현세를 헛되고 무가치한 것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천주께서는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사 당신 독생성자(獨生聖子)를 이세상에 보내시기
가지 하셨다. 뿐만아니라 천주께서는 창세시(創世時)에 온땅을 인간의 지배하에 두셨고 그로하여금 그의 지혜로써 온 세상을 인간적이요 우애와 정의와 평화에찬 문명의 세계로 이룩하도록 명하셨다.
이같이 현세를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후세에 있다는데서 본질적으로 신학적인 문제성(問題性)이 개재되었다.
현세는 결코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우상화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의 궁극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세를 사랑과 정의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천주의 나라」가 이세상것이 아님을 잊지말아야 한다. 복지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그러나 영혼의 우위와 기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 교황 바오로 6세는 1957년 추기경 시절에 한 평신도 사도직회합에서 행한 강연중 현세적인 것과 초성(超性)한 것의 이상적 관게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명하여 『교회의 사명은 신성(神聖)한 것과 세속적인것의 간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은 전자(前者)를 더럽히지 않고 오히려 전달해 줌으로써 후자(候者)를 왜곡(歪曲)하지 않고 오히려 성화시킴으로써다』고 말하였다.
종교적인 신성한 것을, 환언하면 신앙을 세속적인것과 차질 없도록 결부시키는 일은 지난 3세기간에 있은 사회 및 사상의 혁명에 의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사업이 되었다. 근대의 인도주의적 사상 및 사회운동은 정치적인 인간해방에 기여한바 지대하나 종교를 인간예속의 원인으로서 공격해왔다. 특히 「맑시즘」은 종교를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참된 발전의 가능성에서 이탈케하고 그 목적달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규탄하는 일을 지상과제로 삼아왔다.
이같은 공격적이요 반종교 반교회적인 세력하에 「가톨리시즘」은 자연부정적인, 후퇴하는 자세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체방위(自體防衛)의 관념은 신앙상의 가르침에도 영향을 끼쳐 「세상」이라는 낱말부터 부정적인 뜻으로 더 해석되었고 현세란 인간을 구원으로 보다 오히려 멸망으로 더 이끄는 것인양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사상가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교는 현실생활과는 무관한 종교이다』라는 인상을 많이 주게 되었다. 과연 많은 신자들은 신앙과 현실을 2원적(二元的)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현실생활 내지 현세가 다시 적극적인 것을 신학의 관심대상이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이같은 신학적 동향을 불란서에서는 『지상(地上)의 현실의 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의회의 「현대 세계에 있어서의 교회」 의안은 이런 현대적 신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백26「페이지」에 달하는 동 의안은 3편으로 성립돼 있고, 첫 두편은 사회학 및 신학적 견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제3편에서는 「현대에 있어서의 크리스챤의 중요 임무」를 다섯(5) 「카테고리」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산아제한문제는 교황과 그가 설립한 특별연구위원회에 일임하여 여기서는 취급하고 있지 않다.
제4회기에 상정될 「포교안」은 지난회기에서 14조항의 원리원칙만을 나열하여 너무 간략하다는 이유로 거부된 의안에 비해 양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착실한 것이다. 동 의안은 교회는 본성적으로 선교적(宣敎的)임을 밝히고 있으며 한편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전교지방의 포교활동에 중점을 두면서 불신도(不信度)가 커가는 소위 그리스도교적 각국의 사정과 그 문제를 도외시 않고 있다. 동 의안의 한 장(章)은 전교활동과 그 조직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혁신을 제의하고 있다.
흔히 공의회는 평신도의 지위와 주교들의 사명을 높였으나 사제들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다는 불평을 듣게되는데 지난 회기를 거쳐 이번 회기에 이르면서 사제의 생활, 말씀과제(諸) 성사의 수여자로서의 그의 사명의 깊이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주교직과의 관계 및 신자단체의 영적지도에 있어서의 사제의 역할을 밝혀주는 새 의안이 작성돼 있다.
「평신도사도직」 의안 역시 지난 3차의 회기중에는 그것이 지나치게 성직자위주로 또한 구라파적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 수정된 의안은 이미 공포된 「교회헌장」에서 밝혀진 평신자의 교회내의 지위와 역할에서 출발하여 무게있는 것이다고 보고 있다. 「계시안」 역시 1962년 11월 20일의 표결결과 비록 3분지 2미달이긴 하였으나 수정돼야 한다는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후, 요안 23세의 직접 개입으로써 「그리스도교일치국」의 협조하에 새로 만들어졌는데 모든 계시진리가 성경에 내포돼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현안으로 두었다. 이 쟁점에 대하여 요안 23세는 4백년간이나 해결을 보지못한 문제이니 또다시 4백년을 더 기다린들 어떠랴고 논평하였다한다.
그외에 제4회기중 별 큰 토론없이 표결에 바로 붙여질 다섯 의안이 있는데 그것은 「주교사목권한」 「수도회」 「신학교」 「교육」 「비그리스도교 관계선언문」 등이다.
그리스도교가 아닌 제종교와의 대화를 촉구하는 이 선언문에는 그 동안 많은 논란의 대상이되었던 대(對) 유태인선언문도 포함돼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