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3) 로마의 생활 주변
한국의 냉수는 세계적 명물
「로마」시중에 무궁화 가로수가…
이태리 아줌마 눈치 살피며 김치 먹고
발행일1965-09-19 [제487호, 3면]
내가 유숙한 곳은 김분도 신부님이 알선한 「가톨릭여자합숙소」였다.
이 숙소에는 일본서 음악공부하러 온 두여성과 중국여성 등 동양의 아가씨들이 몇명 이태리 여학생들과 유숙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한국 유학생 신상우씨(현숙대 음악과 교수)도 유숙하고 있었다.
이 금남의 집에는 신씨와 내가 특별히 혹이점으로 들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허용한 조치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한국남자 두 신(申)씨가 이 숙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머물러 있었다.
전 수도여고 교장 방순경 선생도 이집에 어울리게된 것은 나그네의 시름을 풀어주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이태리의 기름진 음식에 고민하는 나에겐 유일한 나박김치 생산 제공자가 되어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이태리 아줌마의 눈치를 봐가며 간신히 나박김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조금 익으면 그 냄새 때문에 이태리 사람들의 표정들이 일그러진다.
그 조심스러운 난관을 돌파해가며 만든 방교장 특제의 나박김치와 신씨가 내놓은 고추장이 식탁에 내 놓아지면 대만, 홍콩, 일본출신의 동양 아가씨들이 앞질러 「원더풀」을 연발하면서 퍼 먹는다.
우리 한국인 일동은 이태리인에 의해서 구박받은 나박김치와 고추장이 일본 중국 등의 동양인 여학생에 의해 이렇게까지 환영 받을 줄은 미처 몰랐던 처지라 우리 몫이 줄어드는 섭섭함도 잊고 있었다.
식사 때마다 만나지는 중국여학생 일본여학생들이었지만 동양인들끼리는 얼굴빛깔뿐 아니라 나박김치 좋아하는 식성과 포도를 먹으면서 씨를 뱉는 습관마저도 우리하고 똑 같았다.
이태리 사람뿐 아니라 서구사람들은 포도를 먹을때 씨를 다씹어 먹는다. 그런데 예외없이 동양인들은 씨를 씹어 목으로 넘기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것 같았다.
「에레베타」는 제가끔 탄사람이 운전하게된 자동식었으나 철망으로만 가려져있는 구식이었다.
이 「빌딩」안에 제맘대로 출입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에레베타」여는 열쇠가 유숙하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고 있었다.
내가든 방은 4층이었다. 열쇄로 「에레베타」문을 열고 들어가 4층까지 올라갈 생각으로 4자가 새겨진 단추를 눌렀다 내려보니 내가 내릴층이 아니다.
한참 어리둥절 헤매다가 간신히 여기서 말하는 4층이란게 한국서 말하는 5층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이 있는 다음에 비로소 1층·2층의 호층이 우리하고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2층부터 그 글은 1층으로 세고 있는 것이었다.
「에레베타」에는 안팎에 「피아노」라는 글자가 많이 보였다. 『과연 음악의 도시는 다르군! 이렇게 「피아노」개인교수가 성행하고 있으니…』하고 감탄했던 어리석음을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다.
김신부한테 물었더니 『1층 2층할때 그 「층」이 「피아노」로 표시된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물」 다스리기를 잘했다는 「로마에 와서 제일 생각하는 것이 한국의 그 차디찬 샘물이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물은 명물이다. 나중에 이태리뿐 아니라 독일을 가보나 어딜 가보나 우리나라에서 맛본 듯한 냉수를 먹을 수 없었다.
한국의 산수(山水)가 좋다는 말은 헛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곳에 와서 냉수를 마셨다간 바로 배탈이 난다. 물을 갈아먹어 그런것이 아니라 물의 질이 본시 나쁘다. 수도물을 컵에다 따라 몇시간 놔두면 뽀얀 석회질의 앙금이 반정도 밑창에 깔릴정도다. 서구 사람들은 냉수 잘 안먹는 습관이 물의 질이 나빠 생긴듯 하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의 냉수 잘마시는 습관은 비위생적인 것이 아니라 약수가 발달할 만큼 물의 질이 좋은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곳 사람들은 물대신 「쥬스」나 맥주를 마시고 냉수도 사먹는다. 냉수라해도 자연수가 아니고 맛이 씁쓸한 「탄산수」이다. 냉수라는 바람에 「아꽈」라고 하는 냉수를 사마셨더니 씁쓸해서 도무지 메스꺼워 마실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의 가을과 비슷한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이태리 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그 차디찬 샘물의 맑은 맛은 찾을 길 없는 이태리의 물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유숙했던 「비아 람부로」라고 하는곳 근처에는 우리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아직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도 가로수로 등장되어있지 않는 무궁화가 「로마」 길거리에 심어져 있는 것은 어딘가 한국과 닮은데가 있는 나라의 상징 같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