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줏대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사내는…
아무리 「갈대」 모양이라지만, 그런대로 제 다운 속셈과 줏대를 지녀야지, 아니라면 어찌 비바람 거센 사바(沙婆)를 곧바로 걸어 나가겠는가?
말을 바꾸면 드높은 생활이념(理念)과 뿌리있는 사생관(死生觀) 위에 자기의 인생설계도를 자신있게 펼쳐나가는 것이다.
인생의 승자(勝者)가 되는 길!
죽음을 문턱에 맞으며 들이켜 한뉘를 뉘우침 없이, 웃음 머금을 수 있는 여유는 위와같은 이들의 소유가 아니겠는가?
이에 우리는 바로 이웃에, 지금 우리 눈앞에 그런 승전군상(勝戰群像)을 본다.
신념에 산 사람들 -보다 값진 것을 위해 한 목숨 아낌없이 내던진 영웅스런 남녀들- 일러서 순교자!
목숨건 맹세는 값진 것이다. 죽음 무릅쓰고 입증(立證)한 사실은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일임에 어김없겠다. 더구나 수천·수만의 양반, 평민, 남녀 노유가 계급도 신분도 저만치 밀어두고 한결같이- 죽음마저 달게 받아 증명한 일이라면 진리 나이고서야…
송죽(松竹)이 부러워할 줏대!
사내다운 만용이 아니다. 사바길을 알았고 죽을 바 자리를 택하였기에 흠연히 목숨바친 그 용덕! 그 믿음! 얼마나 장쾌한 일이랴.
이제 우리는 그들을 기념하고 그들을 추모하여 탑을 세우고 현양(顯揚)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 기념탑이 유물들이 우리 시각(視覺)에만 머물러, 향수(鄕愁)로운 「썬치」를 자극하는데 그쳐서는 아니 되겠다.
그 사상 그 핏발이 당장 우리들 영혼 속속에 파동쳐, 불멸의 부각(浮刻)으로 새겨지기를…
그들의 발자취가 회고(懷古)와 기념행사의 대상에 불과하다면 무슨 소용이랴.
먼저 우리네 행동을 바꾸어 놓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줄로 안다. 그 정신이 우리들 혈맥 구석까지 스미어, 우리의 성화(聖火)와 겨레의 그리스도화(化)에 싱싱한 추진력으로 살아 움직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아가, 이 땅 곳곳에 하늘 영토(領土)를 보다 넓게, 보다 깊이 펼치는 데에 거센 힘이 되어야 비로소 그 피, 그 희생은 정당한 효력을 보게 되리라.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가짐은?
「제토」 근성(選民意義)을 버리자!
고자세(高姿勢)가 사람을 건지던 시대는 갔다. 겉으로만 순교자의 후예됨을 코에 걸지말고 후예다운 행동- 행동의 적극화가 최급선무 아닐 수 없다. 각자의 처지대로, 각자의 생활 주변을 변화시켜 나가는 그리스도적 삶이…
이것만이 진정 순교자의 피줄을 이어받은 후예들이 걸어갈 길인가 한다.
李錫鉉(가톨릭소년 編輯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