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敎會(한국교회) 기틀 세운 偉大(위대)한 牧者(목자)
初大(초대) 서울敎區長(교구장) 상치쌈 즐기고 漢文(한문)에 能通(능통)한 愛煙家(애연가)
도시락 싸들고 每日(매일) 出勤(출근) 王宮圖書舘(왕궁도서관)
殉敎史(순교사) 엮기에 畢生(필생)의 努力(노력) 傾注(경주)하고
山中(산중)서 만난 호랑이 쫓은 堂堂(당당)한 威風(위풍)=逸話(일화)들
佛蘭西(불란서) 出身(출신) 韓國人(한국인) 閔(민) 大主敎(대주교)
한국교구 8대감목이며 초대서울교구장이었던 민아오스딩(불란서인) 대주교가 50년 가까운 세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교회에 공헌한바 업적은 이미 한국교회사가 증명하는바와 같이 그 비중이 매우 크다.
민주교는 한사람의 훌륭한 목자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가족안에서 역시 이방인이 아니었다는데 더욱 두고 두고 그의 생애를 더듬으며 음미케 하는 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민주교는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그의 인간면을 여실히 나타내주는 것을 알아보기로 한다.
물론 각자의 성격, 지적수준, 생활환경에 따라서 제각기 그어야할 인간적인 면에의 「라인」이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에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는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간적인 생활감정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민주교는 불란서 사람이면서 조금도 외국인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는 사실, 한문에 누구보다 능통했으며 한국 사람들의 생활습관에 완전히 젖어들고 있었다는 것, 그 한가지 좋은 예로서 민주교는 상치쌈을 즐겨했고 신학생들이 상치쌈을 먹고 있을 때에는 그 상치쌈 밥이 아주 맛있는 거라고 감탄사까지 발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대주교가 마치 학생처럼 도시락싸가지고 매일 비원에 있는 왕실도서관을 드나들었는데 그것은 순교자들의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도서관 문직이가 문을 닫아야 도서관을 나왔다고하니 얼마나 한가지일에 열중하는 성격이었는가 알 수 있다. 그 당시를 회상해서 민대주교는 매우 심신이 젊어지는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대주교는 그만큼 순교자 심신을 본받는다는데 온갖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 산악지대를 무수히 걸어다니기도 하였는데 한번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고 한다.
호랑이를 만난 대주교는 당황하는 빛도 없이 부리 부리한 눈알을 굴리면서 한참동안 노려보니 그만 호랑이가 도망쳤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만큼 눈빛이 빛났다고 하는데 눈빛뿐만 아니라 풍채가 좋기로도 유명하였다.
남자중에서도 남자로 손색이 없음을 알게 한다. 한국교구 설정 1백주년 기념때는 일본의 어떤 사진기자가 왔다가 민대주교를 「모델」로 인물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당선이 될 정도였으니 민주교의 보지못한 풍채를 우리는 쉽게 상상하게 해준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아무리 바쁘게 일하다가도 누가 대주교를 방문하기만하면 그가 유명한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신자이거나 또는 미신자거나 한결같이 유쾌하게 아무일도 하지않고 있었다는 듯이 맞아주었다는 사실이다.
담배를 퍽 즐기시는 것이어서 취침전에는 꼭 「파이프」 담배를 한대 피우고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민대주교가 집필한 일기가 우리한국교회에 보관되어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1942년 민대주교의 후임이었던 원주교(불란서인)는 서울교구 노대주교에게 사무인계를 할때 그 일기는 빠리외방전교회에서 보관하게하였기 때문이다.
그 일기에는 한국말엽 일본과의 관계·동학난을 비롯하여 청일전쟁·노일전쟁·을사보호조약·1910년의 경술국치합병·기미운동·민비학살 등의 역사적인 사실에 직면하여 가톨릭인의 눈으로 본듯이 생생히 또 소중히 기록되어 있을터인데 우리로서는 그 일기를 손에 넣지못하니 크게 유감이다.
마지막으로 민대주교는 판단력에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교회의 토지소유지는 방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혜화동에서 동대문 산언덕에 이르기까지 모두 교회땅이었는데 당시 당가(當家) 신부인 우신부(불라서인)의 소관이어서 그것을 팔아서 충청도 합덕에 땅을 사게되었는데 이것이 비위에 거슬린 민대주교는 그후부터 당가사무까지 일일이 관심을 두게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좀 더 인간다운면을 여실히 나타내주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두고 두고 알아보는 것도 많은 목자들에게 크게 도움되리라 믿는다.
周美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