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敎實話(전교실화)] 길 잃은 양을 위해 (5) 「아베끄」살인 강도범 ②
발행일1966-08-28 [제532호, 2면]
인간에게 내재(內在)하고 있는 악성의 본능이 거의 자연적인 인간 스스로의 구애나 아무런 연마없이 강력한 원시성 그대로 가장 외면적으로 폭로되는 것 같은 하나의 희귀하고 돌연적인 존재가 바로 조일용과 같은 흉악범일지.
이런 인간을 대할 때 우리는 거의 선천적이고도 숙명적인 인간의 죄악을 느끼게 됨으로써 운명적인 체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단지 인간이란 그 하나만으로서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죽음으로써 시범한 가능성이다. 그리하여 이 기적은 그에게서도 현실적으로 눈을 뜬다. 그렇게도 몽매하고 무지막지한 패덕한이 어느날엔가 폭풍후의 바다와 같이 잔잔히 숨을 죽이고 눈을 내리깐다. 그는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그리고 고죄경 이렇게 차례로 외우며 계속 독서를 열심히 했다.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를 내가 무서울게 어딨어!』
죽음의 막다른 길에 몰린 그의 수심(獸心)은 이젠 겉잡을 수 없는 광태로 으르렁 대는 것이 당연하고 한 감방 사람들은 언제나 고양이 앞에 쥐처럼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둘레사람들에게 그의 포악이 숨박으로 표변하는 과정은 하나의 경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와같이 그에게 교리를 터득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려 3년이란 세월을 소모한 나머지다.
이윽고 1965년 4월 23일
나는 내가 대부가 되어 서울 혜화동 동성학교에 계시다가 얼마전 동두천성당으로 가셨다는 당시 서대문성당에 계시던 백 도밍고 신부님이 오셔서 세를 주니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다. 쓰린 노력의 결과라 그 보람의 기쁨은 더욱 컸다.
그가 성체를 받을 때마다 신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구하는 그의 소박한 참된 겸손한 자세를 바라볼 때 천주께 귀의하는 또하나의 길과 그이 앞에 꿇어 앉는 인간의 또하나의 형상을 생각했다. 그가 과거 악질 깡패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개조! 그것은 오직 신앙의 힘이다. 이제 그는 기틀할 만큼 제법 열심히 「경향잡지」와 「가톨릭시보」를 읽고 있다.
1962년 10월 25일, 군법에서 일심판결에 사형언도를 받은 이래 고법, 대법, 그리고 두번의 항고까지 모두가 기각을 당하고 1964년 11월 20일 그는 또다시 항고를 하여 결정의 날을 기다리는 어느날이었다.
『대부님요, 이세상에서 내만큼 죄를 많이 짓놈도 또 있겠십니껴? 그런데 이 빚진 죄를 하나도 갚지 않고 이대로 지고 가야만 하겠십니껴 예?』
『꿈결같은 세상의 한 나그네인 우리입니다. 이제 천주님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그날이 바로 잠에서 깨는 날입니다. 천주님께 열심히 기구하십시요』
『예 고맙심더,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 같심더. 그 말씀 영원히 잊지 않겠십니더』
고개를 숙인채 묵주를 매만지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그는 조용히 운명의 날을 기다리며 빙긋 웃는 그의 미소엔 금니가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