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라앉은 날이었다. 집에 있노라니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나가보았다. 문을 여니 희색이 만면한 대장부가 귀여운 한 여인과 더불어 웃는 낯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아, 참 귀한 손님이시군요. 들어오십시요.』하고 안방으로 맞아들였다. 우리 내외도 무릎을 꿇고 통성을 하여보니 그들은 약혼한 사이로서 현재 안식교(安息敎) 신학대학생으로 졸업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차를 내오고 그이는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시간은 잠잠한데 애기할 때마다 그는 성경의 장(章) 절(節)을 인용하며 그 뜻을 밝히곤 하였다. 참으로 그들의 앞에서는 흘러간 2천년의 세월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하여 나는 교회 운영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안식교에서는 재정면에 있어서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어 나갑니까?』 『네, 저희는 십일조(11租)를 지키지요. 구약성경 「민수기」 18장 26절에 보면 이런 것을 알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당신을 시험(試驗)해보기를 허락하신 단 한가지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다름아닌 십일조를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알리라. 은혜를 참으로 받는지 안받는지를…」 이 말씀 그대로 우리는 믿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진키느냐 안지키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信仰)의 척도(尺度)입니다.』 『벌이가 없다든가 생활이 안되어 나가는 경우에는?』 『물론 실직하였다든가 벌이가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양심에 맡기는 수 밖에 없지요.』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내 머리가 수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야~ 나는 이 면에 있어서 갖고 있는 신덕이 이 사람만도 못하구나! 신덕이 있다고 자처하는 우리 교우들의 신심(信心)이, 이 안식교인의 믿음에 비길바가 못되는구나!> 『그 외에 또 교회에 바치는 것은 없읍니까?』 『왜 있지요. 그것은 연금(捐金)이라고 합니다. 모일 때마다 두차례 즉 두가지가 있읍니다. 하나는 각자가 나가는 소속(所屬) 교회 자체의 운영을 위하여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전체(全世界的)의 운영을 위하여 내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이 점에서도 우리는 뒤지고 있구나. 우리는 본당을 유지해 나가려도 구제 물자의 덕을 바라는 수가 있고, 더구나 성당을 세우려면 이례히 교구 본부에 가서 졸라대는 법인데…. 그 외에도 우리 가톨릭 신자들을 가톨릭교회라는 빽을 괄호(括弧)에 넣고 프로테스탄 신자들과 비교해 볼 때에 그 신심생활(信心生活) 면에 있어서 나은 점이 무엇일까? 우리 집안 일이지만 교우들이 복음 성경을 제대로 보기를 하나? 교무금을 제대로 - 하느님의 말씀대로 - 바치길 하나? 전교를 제대로 하나? 복음 성경 말씀대로 - 예수님의 말씀대로 - 살려고 애쓰기를 하나? 나은 점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 본당신부님은 앞장 선 분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그 실례로는 첫째 주일미사 강론하실 때 월례(月例)회 반장회의 때에 교시(敎示)하실 때는 반드시 신약성경 책을 들고 읽어주시고 풀이해 주시고 우리 교우로서 행할 바 본당 회 · 반장으로서 실천할 바를 명시해 주신다. 그리고 교우라면 각 세대 단위로 복음성경 한권씩은 물론이려니와 예비 교우 입교할 때에도 복음성경 사가질 것을 조건으로 세를 주신다.
둘째로는 교무금에 대한 납부기준 실천인 것이다. 이것은 서울 대방동본당의 시범(示範)을 본받아 작년도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21조(二十一租)의 실행이다 월 수입액수의 20분지 1을 각자가 내주기만 하면 우선 본당 운영은 그럭저럭 된다는 것이다
남이 얼마나 내는가 비교하는 눈치로 살피지 말고, 그러니 자기가 내는 액수에 거리끼지 말고 이십일조를 계명삼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본당에는 최상 2천원에서 최하 20원까지 있다.
한국교회는 엄연한 독립교구들이다. 자치를 해야한다. 우리는 천주이 백성이며 우리 자신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이다. 자기의 의무와 권리를 남에게 미룰 수 없다. 내 살림을 내가 해야한다.
그런데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가는 점이 있다. 그것은 어찌하여 이와같은 교무금 납부기준을 같은 서울특별시내인데 소위 변두리 몇몇 본당에서나 기치(旗幟)를 들고 나서야 하는가? 연초에 교무금 납부 기준에 대한 여론 조사에 관한 공문을 보여 주어서 하루 바삐 결정 실시되기를 바랐었지만은, 이런 일은 교회운영의 필수적인 중대사일 뿐만 아니라 「천주의 백성」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도 불가결적인 한 의무이니만치 교구(敎區)에서 - 할 수 있다면 전국적으로 주교회의에서 - 결정지어서 공포 실시케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중대한 기준을 전국교회적으로 균일화(均一化)하도록 결정지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가난한 신설본당의 서글픔일는지는 모르나, 우리 본당구역 내에 이사를 온 지가 몇해가 되어도 이문동본당은 교무금을 많이 낸다고 교적을 일부러 안떼오고 그냥 차를 타고 종로까지 계속 나다니는 그런 교우를 어떻게 돠야 할 것인가?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 생기는 까닭이다.
金奎英(서울 里門洞본당 회장, 東國大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