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4) 이태리국수와 동전 던지는 미신
길바닥 돌 한조각의 역사도 보존돼 있고
분수·대리석 건축들이 로마의 냉장장치구실
이태리 사람들은 대식가 국수만도 백여가지…
발행일1965-09-26 [제488호, 3면]
이태리 땅에서 나는 매사에 황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2천6백년 동안 살쩌온 서구문명의 중심지였던 이태리인 만큼 길에 짓밟힌 돌한개에 이르기까지 유서가 숨어있었고, 「2천년전 운운」의 역사가 깃들여 있었다.
나는 신경통으로 요양중에 있는 정말가리다(鄭淑貞) 현재 고려대학 불문과 교수) 선생을 방문 한적이 있었다.
정선생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사자에게 물려 죽이게 했던 「파비오의 투기장」이란 정식 명칭이 붙어있는 이른바 「콜로쎄오」라는 유적근처에 있는 수도원 안에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려면 「아스팔트」의 매끄러운 큰길로 한참 달리다가 「콘스탄티노 개선문」 옆길로 들어서자 갈밭 같은 돌덩이로 「모자이크」된 언덕길을 지나가야만 했다.
『아니 「로마」 대도시에도 이같은 돌밭길이 다 있나?』
나는 김분도 신부님이 몰고가는 「스쿠타」 뒷꽁무니에 앉고 「로마」의 도시계획의 태만을 한탄하고 있었다.
약 5·6백「미터」 길이의 곱돌로 깐 포장도로였다.
「스쿠타」의 속도를 줄이면서 김신부는 나에게 곱돌포장의 내력을 이렇게 일러주는 것이었다.
『…이 길은 말이죠, 천년전의 「로마」 시대때의 포장도로랍니다. 그래, 불편한 길인줄은 잘 알면서도 고적의 하나로 보호하고 있는것이지 방치해 두는게 아내요. 그러니 역사적인 돌포장의 길이죠』
나는 돌덩이 하나라도 옛유물이라면 고이 간직하려드는 이태리 정책을 부러워하면서 2천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방치」가 아니라 「보존」되어온 이 길을 역사적으로 통과했다. 구시가에는 고색창연한 집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짐마다 성모상이나 성인의 조각품이 길거리를 향하고 있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별의별 모양의 분수가 난무하고 있다. 건조된 「시나코」 열풍으로 87도까지 열도를 내뿜는 「로마」가 한결 청량해지는 것은 그 물끼때문만은 아닌것 같았다. 그 시원시원한 폭포수 같은 분수, 눈이 휘둥그래질 대규모의 조각품의 분출구. -이런 것들이 또한 「로마」의 무더운 「7월」을 적셔주고 있는듯 싶었다. 이렇게 더워도 대리석 건축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에어 콘디셔닝」(냉방장치)을 별반 사용하지 않는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대리석 집이라 일단 집안에 들어가 창문에 차양「카텐」만을 드리우면 시원해지는 때문이라 한다. 분수와 대리석건축이 「로마」의 냉방장치가 아닌 「청량장치」 구실을 맡고 있는 상 싶었다.
「트리토비」란 분수는 베로니의 예술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트레비의 분수」는 1762년 살비의 설계로된 분수인데 물받침 연못에는 동전이 하나 가득 깔려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뭣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돈을 그 연못에 던지는 것이었다.
『저 뭣하는 것들이오?』
나는 가톨릭의 나라에서도 무슨 미신이 있는가해서 의아스럽기만 했다.
『나그네가 동전을 던져 넣으면 또다시 「로마」로 온다고 해서 외국손님들이 던지는 거죠』
나도 동전 몇푼을 던지고 「영원한 도시」의 재입국을 미신해 봤다. 어떤 이는 소원성취가 된다고 해서 돈을 던진 댄다. 성황당에 밥을 던지는 한국의 미신과는 좀 달리 장난끼가 낀것같은 관습같기만 했다.
청량한 분수를 보고 대리석 집안에 들어가도 도무지 시원치가 않다.
식성도 사나워져서 잘 먹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 무더운 때도 이태리인들은 잘 먹는다. 「질」로도 잘 먹지만 「양」으로도 대단한 대식가(大食家)형이다.
여름에도 입맛이 떨어지지 않는 이태리인 체질이 부러울 정도다.
점심때가 되면 식탁이 어지러울 정도로 대량의 식사를 한다.(점심시간은 1시부터 3시까지) 식당 중에는 「메뉴」에 가격표가 안적혀 있고 「S·Q」라고만 쓰여 있는 곳이 있는데 이런 때는 정신을 바짝차려야 한다.
과일도 「테이불」 한가운데 우리나라식당에서 간장놓듯 의례히 놔 둬 있기도 한데 모두 자기가 산것이라 생각하고 다먹다간 엄청난 값을 지불해야 된다.
「S·Q」란 「잡수신 양에 따라」 값을 받는다는 제도의 표시이다.
닭고기 쇠고기 별별고기가 다 있어도 온통 「올리부기름」이나 「치즈」 가루 같은 기름진 것들이어서 구미에 맡지 않는다.
내 숙소에서도 역시 기름진 것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숭늉처럼 먹을 수 있는 포도주가 한결 뱃속을 개운케해 주었다.
동양 사람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가끔 북이태리에서 즐겨먹는 쌀밥을 삶아주기도 하지만 한국 쌀밥만은 언제나 못하다.
음식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태리 국수는 확실히 명물이다. 내가 들은 국수의 이름만도 10여종이지만 아마 백여종은 된다는 이야기다. 국수가락의 속이 고무호스처럼 뚫린 「스파케티」니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마카로니」니 하는 따위도 그중에 하나다.
우리나라 냉면 가락만큼 가는 국수 보통 밀가루국수 중국국수 같은 것도 물론 이태리 국수 속에 다 있다.
그러나 대개 「모양」과 「소스」에 따라 이름이 다른 것이며 「토마도 쥬스」니 「치즈」 가루 등을 뿌린 비빔국수라서 간장을 풀어 말은 국수를 훌훌불어가며 먹던 한국 국수생각만 하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같은 음식물이 한국식성에는 맞는편이란 것을 딴 나라를 돌아다니는 동안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