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리 안에서] 교무금
발행일1966-09-18 [제535호, 4면]
■ 神父의 意見
꺼지지 않은 「貧者(빈자)의 一燈(일등)」
옛날 어떤 시골에 할머니 한 분이 자기의 전 재산인 동전 한푼을 내어 초 한자루를 사서 정성되이 부처님 앞에 켜두었읍니다. 때마침 사월 초파일이라 무수한 신도들이 제가끔 부처님께 올린 등불로 검은 산속의 절간은 낮과 같이 환하였읍니다.
공교롭게도 그날밤 폭풍우가 부어 모든 등불이 꺼져버렸읍니다.
그러나 그중의 단 한개의 촛불만이 간밤의 그 억센 비바람도 아랑곳 없이 한층 밝게 그을음도 없는 맑은 불꽃을 아름답게 피 우고 있었읍니다. 그 촛불이야말로 그의 전재신인 동전 한닢을 털어 불밝힌 할머니의 것이었읍니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빈자의 일등(一燈)이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처지와 위치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없을까요?
교무금이란 신자들이 교회 유지를 위해 바치는 정성이며 또한 본분이기도 합니다. 구태여 교무금에 관한 새로운 정의와 역사적 기록을 말하고 싶지 않고 다만 한 실례를 들어 「빈자의 일등」과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가를 말하고저 합니다.
시내 C본당의 경우를 보면 신자수 2천5백 연내 교무금 납부 약2십5만원, 일인당 일년에 평균 1백원 한달에 8월 한주일에 2원 내지 1원50번 이것이 신자 여러분이 한주일에 내는 천주의 교회를 위해 바치는 정성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이런 정도가 각 본당의 실정입니다. 그럼 사실상 신자들의 생활상태를 본다면 모두가 윤택하다고는 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가정방문에서 실태조사를 해보면 한주일에 2원도 못낼 정도 가난한 사람도 4백원, 2백배(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나은 사람도 4백원을 일년 교무금으로 냅니다
그럼 이것을 교무금 사정의원들이 잘못 정한 것이 아니냐 하시겠지만 그런것이 아니고 참말 못낼 사람에게 안내도록 하면 낼 수 있는 사람도 안낸다는 현실은 여러분들이 더 잘아실 것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한 주일에 커피 한잔이나 대포 한잔 혹은 사업 때문에 요정 출입을 안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며 거기에 소요되는 금액과 자지가 내고있는 교무금과이 액수를 비교해 본다면 누가 없어도 혼자 부끄럽지 않을 분이 신자중 과연 몇이나 되겠읍니까?
죽기위해 나고 살기위해 죽어야만 하는 인생의 진리니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게 되어있읍니다. 「빈자의 일등」을 비웃는 화려한 등불들은 꺼지고 마난 것입니다 내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정성으로 주를 섬길진대 주의 사업을 이어받은 교회일에 어찌 등한할 수 있겠읍니까? (대구칠성본당, 김 분도 신부)
■ 信者의 意見
할당 · 납부에 기술적 방법 필요
교무금이란 단어가 의미하듯이 교우로서 당연히 얼마씩의 돈을 교회에 바쳐야 한다는 의무적인 면만을 종래 너무 강조해온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천주님의 말씀으로 살고 진리의 복음을 사회 깊숙이 퍼뜨리는 생활을 영위해가는 신자로서 사목자인 신부님들의 경제적 생활 및 성당운영을 도우며 구원의 대상인 인류를 위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각자가 그 몫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말일 것이다.
그러나 교우니까 의무적으로 일년에 얼마씩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버리기 쉬운 곳에서 문제는 발생한다. 교우들은 성당인 나아가서는 교구의 사업까지도 주교님이나 신부님의 일이라고 방관하기 쉽고 교우들의 적극적인 의견의 반영 없이 - 결정은 본당신부님이 하시겠지만 - 행해지는 일들은 점차 신부님들의 독자적인 계획과 실천으로 수행될 수 밖에 없으며 교우들은 더욱 국외자의 입장을 취하게 마련인 것이다.
교무금의 문제도 먼저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형제의식을 배울 수 있어야 하겠고, 또 이론적으로서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 『천주의 백성』으로서의 생활을 실천해야 되리라. 다음에 본당 신자들의 대표로 구성된 조직을 강화하여 교무금 문제 뿐만 아니라 본당운영의 제반 문제를 토의하고 해결해 나가는데 전 교우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행정조직이 있어야 하겠다. 조직을 통한 평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을 때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태도를 결코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무금 할당방법이나 납부하는 방법들의 기술적인 면에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본당에 따라 특수한 사정이 있을테니 그 특수성을 어느정도 고려하는가가 문제이며 체계적인 연구와 검토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한가지 방법으로 설문지법(設問紙法)에 의한 각계의 여론조사도 좋을듯.
하루빨리 새로운 교회의 면모를 사회에 드러낼 수 있게 되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교회내에서의 대화의 광장부터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익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