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50) 병원 - 침묵 ⑨
발행일1966-09-18 [제535호, 4면]
알랭 로베르는 기진맥진해서 띵한 머리에 불룩거리는 배를 부여안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따금씩 「까디」는 몸을 무겁게 도사리고 질질 끌려가며 -
『아니, 이놈이?』 - 비난하는 빛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달리 할 수가 없단 말이다. 까디야! … 내일이면 안다! 내일이면…」
그 자신도 이제는 아무뜻도 없는 「내일… 내일…」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더 환한데로, 소리가 더 많이 나는 데로, 그리고 여전히 사람이 더 많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이 거리 저 거리를 지나고 이 간판에서 저 간판으로 옮겨가니 「옥좌의 야시」에까지 가고야 말았다.
그는 마음이 놓여서 그리로 글어갔다. 거기서는 아무도 그들을 보는 사람이 없었고 「까디」의 신음소리가 소음에 덮여 버려 - 알랭 로베르 자신에게까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그림을 그린 천막, 눈을 자극하는 불빛, 쉰 목소리가 뒤범벅이 된 이 도시를 그는 몽유병환자 모양으로 지나갔다.
『진짜 히틀러의 자동차요! …여기서는 뭐든지 부술 수 있읍니다. 공 한개에 10「프랑」이요! …사교로 키트요! 기분! 안전! 안락! …진짜 기관총으로 비행기 떨어뜨리기요! …유령열차요! …「누가」낚기! …거울미궁, 매일밤 노선 변경 합니다!…쎅시한 완다! …물개들의 뮤직홀! …아이들은 못보는 영화!…3월 8일의 사고를 빚어낸 파샤가 매번 나옵니다!…어서 오십시요 어서 오십시요! 예술적 그림을 만들어 놓은 우리 미녀들을 감상하시라! 유명한 파나마의 리타 출연이요! 예술과 사실주의 환상이요! …어서 오십시요!…어서 오십시요』
파나마의 리타… 소년은 가까이 가서 기분 좋게 군중에 끌려들어갔다. 그는 야릇한 동요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배속에서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언제나 모험의 신호였다…
『넌 적어도 열여섯살은 됐지?』
주인여자는 애써 그를 보지 않으며 물었다.
그러나 소년이 새 지폐를 내밀자 경계하는 눈치로 위아래를 훑어 보았다.
땟국이 잘잘 흐르는 천막밑에 구경군들은 서 있게 마련이었다. 알랭 로베르는 구경군들에게 밟힐가봐 「까디」를 가슴에 안았다. 땀내와 담배냄새가 물씬 하고 풍기는 가운데에서 이 사람의 팔꿈치와 저 사람의 베레 사이로 그는 벙싯 벌어진 막으로 아직 가려져 있는 무대의 일부분을 보고 있었다.
『불타는 육체!』
하고 실내복을 입은 여자가 소개했다. 막이 찍 소리를 내며 줄을 타고 벌려졌다. 분을 더덕 더덕 처바른 나체의 두 여자가 어떤 자세로 꼼짝 않고 있는데 소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나 다른 구경군들은 껄껄거리고 있었다. 막이 내렸다.
『사랑과 그 희생자!』
이번에는 나체의 여자 넷이 「예술적 풍경」을 구성하고 있었다. 최면술에 걸린 것 같은 그는 침을 삼키는 것을 잊고 그 허벅지, 그 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본 일이 없는 그 젖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것을 만져보고 싶었다. 다만 한번만이라도… 『죽음의 키쓰!』 ……『부끄러운 정열에 미친 사람들!」 …그의 주위에 있는 구경군들은 죽겠다고 웃고 있었다. 무대위 여자들은 나가면서 그들에게 비굴하면서도 경멸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 다음에는 막이 오르니 검은 슈미즈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구경군 중의 하나가 꽁초를 입에 문채 무대에 올라가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서투르기 때문에 여자 자신이 힘없고 유순한 태도로 그의 손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알랭 로베르는 그 여자가 금발이고 머리모양이 프랑쏘아즈 여대장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검은 슈미즈가 벗어져 나가고 젓통이 드러나 움직일때마다 떨렸다. 소년은 숨막힐듯 부르짖고 팔꿈치로 사람들을 헤치고 출구쪽으로 달려갔다. 안쪽에 있는 구경군 하나가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며
『이런 더러운걸 보는데 백 「프랑」이야? 더어러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에서는 차고 세찬 급작스런 소낙비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젖히고 그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소낙비를 맞았다.
마치 비가 그에게서 그 「예술적 환상」 을 씻어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그의 뺨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로 하여금 분노와 혐오와 가책으로 우는 것을 아라차리지 못하게 해주기나 하는 것처럼 비는 점점 세차지며 야시를 씻고 사격장을 적시고 흰 누가로 만든 걸작품에 줄줄 흘러내리고 튀김풍로를 잠가버렸다. 군중은 깃을 치켜세우며 말 없이 달아나고 어린이들은 『기다려!』하고 소리치며 야싯군들은 투덜거리며 가게를 닫았다. 「까디」는 추어서 떨기 시작했아. 소년도 개를 잠바 속에 폭 싸가지고 달아났다. 그는 뛰어가다가, 물에 씻겨 내려가는 횟줄 사각형 가운데 번들거리는 역도봉들 사이에 혼자서 있는 「세르부르의 레옹」곁을 지나갔다. 그는 가죽 팔찌를 한 주먹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역사들에겐 좋은날씨로군! 어이! 재수없어!』
빗물이 줄기로 흘러 내리는 잎 떨어진 플라타나스 옆에 서 있는 말 없는 보도의 예술가는 파스텔로 그렇게도 오밀조밀하게 그려 놓은 샤르트르의 대성당을 무지한 비가 뭉개고 나중에는 아주 지워버리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알랭 로베르는 「아무때나 식사할 수 있는」 카페의 채양 밑에서 비를 피했다. 주인이 발을 치켜올리려고 나왔다.
『우리 개 줄 밥 한그릇 잔뜩 주세요…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싫어요!』
가게 주인은 「까디」가 하는 것처럼 머리를 갸우뚱하고 한쪽 눈석만을 찡긋했다. 그래서 알랭 로베르가 새 지폐를 꺼냇더니 가게주인은 얼굴이 달라졌다.
『새 돈은 어른들의 사탕이로구나!』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옆의 판장 위에는 가로등 불빛에 포마드 공고에 그린 금발의 여자가 보이는데 약간 프랑쏘아즈 여대장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아아!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야성적인 소년은 중얼거렸다.
비를 맞아 금발의 처녀는 우는 것 같았다.
소낙비는 시작할 때 만큼이나 갑자기 그쳤다. 그러나 쓸쓸해진 야시는 다시 불을 밝히지 않았다. 포장마차들의 얌전한 불빛들만이 이제는 물 속에 잠긴 큰 길을 드문 드문 비치고 있었다. 「파나마의 리타」, 「유령열차 · 차장」, 「호랑이 같은 파샤」, 「쎅시한 완다」는 벌써 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까디」 오너라!』
알랭 로베르는 알아 볼 수 없게 된 장치들 옆을 지나갓다. 개는 으깨진 밤껍질 낙화생 껍질, 담배꽁초, 튀김사이로 돌아다녔다. 「사교 로키트」(기분, 안전, 안락!) 곁에 와서 소년은 불 비치는 광막한 야시를 빨리 휘둘러본 다음 운전대 발판으로 기어올라가서 찻간을 덮어 놓은 퍼렁과 노랑칠을 한 뚜껑을 쳐들었다. 그 밑에서는 한시간전에 남녀들이 아주 요란스러운 가운데에서 껴안고 있었다. 그는 「까디」를 데리고, 그의 향수와 어지간히 비슷한 메스꺼운 향수냄새가 아직도 감돌고 있는 이 딱딱한 보금자리로 기어들어갔다.
소년경찰대의 마르쎌 경사가 새벽 세시쯤 개를 껴안고 깊이 잠든 알랭 로베르를 거기서 발견했다. 암탉들이 알을 낳으러 가는 으슥한 곳을 돌아보는 농삿군 여인처럼 매일밤 마르쎌 경사는 소공원에서 대합실로 돌아다니며 숨을 곳을 찾아다고 아주 뻐기는 도망군이 소년들을 붙잡아 가는 것이었다. 어디에 벌어지던지, 그의 순시는 언제나 야시로 끝막아지는 것이었다.
「까디」는 짖지 않았다. 그놈은 약간 번들거리는 눈으로 회중전등을 든 사람과 그와 같이 있는 키큰 빨강머리를 살펴보았다.
신문기자는 중얼거렸다.
『이게 「까디」요… 어떠냐 말이요, 내 정보가 틀림없지요? 그놈 좀 거북한 모양이지요, 이봐요! 소년은 깨우지 않소?』
『아직은, 가엾은 녀석! 브리까르』
『네!』
『경찰차를 부르지, 개를 데려가게!』
『어디로 데려가지요?』
신문기자가 물었다.
『야견계류소로. 그렇지만 거기서는 이놈을 물룅병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떻든 나는 이제 이놈을 놓치지는 않겠오!』
『그래 소년에 대해서는』
경사는 냉정하게 물었다.
『이 애가 어떻게 될 건지 당신에겐 흥미가 없단 말이지요?』
『소년은… 소년은… 그건 기삿거리가 아니지 않아요?』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애가 오늘밤 경범재판소에서 자살이라도 한다면, 「기삿거리」가 되겠지요?』
『물론이지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전화 걸어 주서요…』
『그러지요!』
경사는 그에게 등을 돌려대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