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순간 여인은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뜻밖에 여인의 이런 호들갑스러운 엄살에 그는 여인을 한손으로 밀쳤다. 그녀는 산수(山水)받이 개천에 뒤로 나가 떨어지자 다시 돌을 집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것을 곁으로 가서 그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아차 좀 너무 심했구나 싶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다가 금새 샛하얗게 질리면서 경련을 일으키며 실신해버리는 것 같에 얼른 일으켜 맥을 짚으니 급하게 뛰는데 어느듯 하체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머리에 얼핏 뇌일혈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군대에서 구급법교육시간에 배운 것이 있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약 3-4「센티」 가량 되는 칼을 꺼내 여인의 우측 목덜미를 비껴땄다. 그러나 여인의 몸은 끝내 기척 없이 그의 팔안에서 굳어져갔다.

「아,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순간 정신이 아뜩해지면서 그의 가슴은 겉잡을 수 없이 두방망이질 했다. 그는 어쩔줄 모르고 죽은 시체를 내려다 보다가 그것을 길 옆 도랑에다 버려둔 채 정신없이 뛰었다. 그는 외갓집에 갈 염두는 감히 나지도 않고 그 길로 충북 청원군 남성면 귀대리에 있는 종이모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뜻박에도 이것이 살인강도가 될줄이야….

그의 기소장에는

『피해자 강여인으로부터 금품을 강취할 것을 결의하고 그녀에게 접근하여 불응하면 폭행을 가할듯한 태도로 협박을 하여 항거불능케 하고 돈을 내라고 하니 거절하므로 제차 돈을 내라고 하니 「사람 살리시오!」하고 고성으로 비명을 지르므로 이에 당황한 피고인은 왼발로 동녀의 옆구리를 3회 강축(强蹴)하고 동지면에 졸도시킨후 피고인이 소지하고 있던 손수건으로 동녀의 입을 털어막고 작으칼로 지면에 졸도된 동녀의 우측 후두경부를 2회나 찔러 실신케 한 후 동인을 끌어다가 동소에서 약5·6「미터」나 떨어진 도랑에 집어넣고 무게 약3관 정도의 돌로 동인의 후경부에 눌러놓은 후 동인이 소지중이던 찹쌀 한되와 금70원(구화700환) 상당을 강취하고 동녀로 하여금 질식 사망케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재판장님!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해선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읍니다. 그러나 이건 너무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 주십시요.』

그의 입술은 매말라 있었다.

『재판장님! 아무것도 모르는 이 엎드린 죄인에게 부모님의 영 앞에 가서라도 욕된 과오를 씻을 수 있는 현명하신 판정을 내려주십시요』

그의 입술은 경련을 일으켰다.

『재판장님! 제발 빕니다. 어린 두 여동생에게 천추의 한을 남기게 한 것만이 가슴이 메일 뿐입니다.』

사뭇 그는 애원을 하였다.

애처로운 한가닥의 절규였다.

그러나 무정하게도 판견을 그대로 내려지고 말았다.

피고인의 백마디 호소나 사연도 피해자의 죽음의 사실 앞에선 아무런 변명이나 효과도 없었다.

1963년 8월 하순경.

내가 그와 접촉을 하게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이것은 공무(公務)가 아니엿으나 매일, 극형수들을 찾아다니며 전교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