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가 치른 신유 · 기해 · 병오 · 병인 4대 교난에서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신 수많은 선열들이 진리를 죽으으로 지켜낸 그 참되고 굳은 신앙과 백절불굴의 인내와 용덕을 본뜨기 위해 정해진 달이 이 복자성월이다.
9월하면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사실 독서하기에 좋은 때임에 틀림이 없다. 이 독서와 복자들에 대한 신심(信心)이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복자들에 대한 신심이란 결국 그들이 실천한 선행을 알고, 아는 만큼 감탄하고, 감탄하는 만큼 자기 생활을 향상시키는데에 그 보람이 있을 것이다.
예를 김대건 신부로 든다면 그 분이 우리나라의 첫 사제로서 영예로운 순교복자로 세계 만방에 선언되기까지에는 당시 중국관리들을 놀라게 한 사물에 대한 놀라운 관찰력, 사물을 분석하는 뛰어난 비판력,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그 싯적인 기교, 젊은이로서 6개국말에 능통한 탁월한 사교가였기 때문에 나라에서도 그를 아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포장은 임 요셉에게 『네가 김 신부와 같이 죽겠다고! 아니다. 김 신부는 죽이지 않는다. 도리어 나라에서 그 양반은 높은 벼슬까지 주기로 했다. 그러니 너는 너 혼자라도 죽겠단 말이냐?』라고 한 말로 보아 죽지 않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에 높은 벼슬까지 약속받고도 오로지 천주 사랑하는 불로 자기를 불태우면서 사형장으로 향하였던 그의 충성! 형리들에게 『내 몸을 이렇게 하면 칼로 치기가 편하냐!』고 묻자, 『아니요, 몸을 좀 이리로 돌리시오』하는 대답에 그대로 몸자세를 고친 후 여덟번째 칼로 숨진 숭고한 모습!
죽음 앞에서 얼마나 태연자약했는지를 우리는 감탄할 수 밖에 없으며 감탄은 그분에 대한 존경심으로 존경심은 내 생활의 개선으로 전향될 것이다. 또 병인년 3월 8일에 순교하신 서 누수 신부는 『본국에 가겠다면 보내주겠다』는 정부의 제의를 거절하고 그 혹형을 참아냈고 마침내 순교한 사실을 놓고 우리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존경심은 또다시 자기의 미온적인 신앙생활을 그분의 신앙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힘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간단한 묵상기도이기도 하다.
이는 목적을위해 많은 행사가 이달에 행해지고 있는줄을 독자들도 잘 알 것이다.
강연회, 순교지 순례, 순교지에서의 특별미사, 유해 친구, 기념사업 등등이다.
그러나 이런 행사들은 규모가 커서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에 복자신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지구적(持久的)으로 각자의 신심을 키워가는 점으로 보면 단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순교자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서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일이다.
특히 「복자성월」이라는 소책자는 9월 한달을 두고 짐스럽지 않게 날마다 배당된 부분을 읽어갈 수 있으면서 한국교회사 줄거리를 알 수 있고 또 매일 소개되는 순교자들의 영웅적 모습이 소개되어 분명 우리 생활에 큰 자극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독서의 계절에 복자성월을 맞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니 많은 독서를 통하여 복자들에 대한 신심을 북돋기를 권하고 싶다.
사실 우리가 명예로운 조상을 가졌다는 자랑은 그들로부터 이같은 무형(無形)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
천주께로 향해 그들 마음속에 타오르던 거룩된 사랑의 불꽃은 그들 자신을 제물로 불사르고야 말았으며, 이 사랑의 불꽃은 전능자의 힘을끌어내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한 것이다.
금번 복자성월은 병인순교 백주년에 맞는 뜻깊은 달이다. 교구마다 이 해를 기념하는 사업이 착착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 사업의 이면에는 모금이라는 애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후손인 우리가 선열들이 참 유산을 이어받아 그들의 가슴 속에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기념성당을 세우는 일이 외적인 기념사업에 앞서야 할 순서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순교선열의 후손다운 마음가짐이 되어있다면 모금이란 문제를 가지고 계획을 짜고 재촉을 하고 방문하는 등의 일이 생겨날 수가 없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성의가 우러날 것이니, 이 정성이 모이고 뭉쳐 각 교구의 기념사업이라는 외적표시가 될 것이다. 그 정성이 크면 클수록 빠르면 빠를수록 외적 증거가 두드러져 온 세상에 우리 조상을 자랑할 기회도 될 것이니 그 해가 바로 올해인 것이다.
崔奭浩 神父(서울대교구 병인순교백주년기념사업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