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訪(탐방) 파월 상이용사 - 맹호 권영대 중위 · 이장우 중위
돌아온 용사는 말한다
將兵(장병)은 戰場(전장)에서 信仰(신앙)에 歸依(귀의)한다
이름 씌여진 위문편지 받고 싶고 명절이면 꼬마들 서로 끌고가.
전투 직전 종군신부 강복엔 뜨거운 감동.
여학생이 걸어준 묵주는 전지의 마스코트
붙임성 많은 월남 아가씨
시가지를 훨씬 벗서어나서도 자동차는 넓은 대로를 한참 달리다가, 드디어 크기로 동양굴지라는 제1육군병원 위병소를 무사 통과했다. 한낮 겨운 쇄잔한 가을 볕 아래 탁트인 넓디넓은 언덕에 「코스모스」와 어울어져 잡초가 성성한데 여기 저기 조으는 듯한 흰 건물은 마치 전장의 상흔을 안고 돌아온 고달픈 용사들이 여기 평화로운 언덕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모습 같다.
임시성당 구내에서 수인사 끝에 권영대(아오스딩) 중위, 이장우 중위와 마주앉고 보니 그들 역시 약간 수척한 탓인지 오히려 화사하리만큼 다정하고도 온화한 얼굴이다. 그래 가간 고국이 얼마나 그립더냐고 물으니
『그야 뭐 부산항을 떠나면서부터 우린 이미 부상당하기 전에 향수병을 먼저 앓았으니까요 하하』
이렇게 웃는 권 중위의 말에 『참 그때 부산 데레사여고 학생들이 부두에 출영나와 목에 묵주를 걸어주었는데 그게 여러 장병들의 「마스코트」가 된 셈이지요. 특히 임전때는 가슴을 눌러보고 그걸 확인한다고 합디다.』
프로테스탄 신자인 이 중위는 특히 장병들의 전장에서의 신앙동태에 관심을 갖고 유의했던 것 같다.
『예 정말 성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거기선 돈주고도 잘 못구합니다. 교우수 70만이라니 성의만 있다면 적어도 신자 장병들을 위해서만도 성물하나씩은 「마스코트」로 선물할 수 있겠지요. 특히 그걸 개인개인의 선물로 받는다면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개인적이란 말이 났으니 위문편지 말입니다. 정말 그렇게 반가운게 없는데 그게 좀더 성의가 있었으면 해요. 국민학생들의 「장병아저씨에게」하는 편지가 무더기로 오는데 어떤땐 한사람 앞에 세통씩이나 돌아가거든요. 그래가지곤 정말 어떤 특정한 개인의 정이나 성의를 느낄 수 없지요? 어쩐지 인정도 「C레이숀」처럼 배급되거나 도매금으로 취급받는 느낌이랄까요』 『그렇지요. 역시 장병 누구누구에게 이렇게 이름을 쓰면 훨씬 실감이 나고 반갑지 않겠어요. 아, 왜 교회 산하 여학교나 女大같은데서 군종실을 통해 장병명단을 알아내서 개개인 앞으로 편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역시 여학생이나 여대생들의 편지가 인기겠지요』
『그야 그렇지요. 근데 그런 편지는 웬만해서 실전지의 사병들에겐 돌아가지도 않지요. 아, 이거 너무 받는 이야기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정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군대라는 전체 사회도 중요하지만 좀더 장병 개개인의 영혼문제 정신문제 같은 것이 우리 교회로 봐선 보다 큰 비중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중위님 그곳 교회 현황이나 신자들의 신앙상태 같은 건…』
『거기 교우들의 신심태도는 우리나라 교우들보다는 훨씬 더 열성적인 것 같습니다. 말이 안통해서 상세한 내용은 잘 몰라도 미사참례의 태도는 얼마나 진지한지 몰라요. 또 경문도 얼마나 큰소리로 합창하는지 때로 성당 밖 멀리 진지에까지 울려오거든요. 그 은은한 경문이나 성가소리를 들으면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조국에의 향수를 자아냅니다.』
『우리 장병들의 그곳서의 신앙상태는? 흔히 전장에서는 신앙이 해이(解弛)되고 냉담하기 쉽다는 말도 있는데』
『천만에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극력 부정한 이 중위는 『실예로서 저녁에 흔히 막사에서 천주교 신자든 신교 신자든 각기 성가나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때 소대원 전체가 고요한 성가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평상시 군대에서 흔히 보는 야유의 태도나 말씨를 전혀 볼 수 없읍니다. 그뿐 아니라 실전에 나갈 때 1개분대씩 「헬리콥터」로 진지에 투입하게 되는데 그때 신부님이나 혹은 목사님이 와서 방금 대기중인 분대마다 강복 혹은 안수기도로 무운장구를 빕니다. 멀리 포연(砲煙)이 자욱한 전지를 눈앞에 두고 포성이 터지는 가운데 고개숙인 장병들의 경건한 모습, 그 기도의 자세, 참으로 목전에 죽음을 둔 그들이 아니곤 느낄 수 없는 뜨거운 감회가 속구칩니다. 또한 이런 순간이야말로 천주교, 신교 안믿는 모든 장병까지도 진정으로 한마음 한뜻, 같은 염원으로 단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믿음을 잃기 커녕 오히려 신앙에 귀의한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치열한 격전지에서 죽음이라던가 신앙에 대한 의식이 뚜렷합니까』 『사실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지고 또 눈코 뜰새 없이 총질을 하는 마당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의 의욕, 더구나 천당이니 지옥이니 그런걸 생각할 겨를은 없읍니다. 허지만 정말 나이 전의식이 천주께로 확대된 경험이 전장에서 꼭 한번 있었읍니다. 빗불이 고인 흙탕 숲길을 찦차로 달리다가 지뢰가 터져 차가 전복되고 전 그 밑에 깔렸어요. 입에서 피가 수도물처럼 쏟아지는데 이젠 마지막이다 싶은 순간 아, 천주님! 하는 내심의 절규와 함께 의식을 잃었죠』 그때부터 병원신세를 진다는 권 중위의 눈빛이 어쩐지 허공에서 잠시 슬프게 방황하는 느낌이더니 이내 다시 맑게 빛난다.
『그곳 아가씨들 여기 아가씨 보다 어떻습니까 「따이한」이 퍽 인기라던데』
『여기 아가씨들은 그저 죽내 사내 따라다녀야 겨우 어떻게 눈이라도 돌리는, 그렇게 비싸게 굴지 않아요. 거기 비하면 그곳 아가씬 퍽 상냥하고 개방적이지요. 한번 보고 두번 만나면 벌써 친숙한 구면이 돼죠. 어떤 아가씬 한국과 미국 이세라면서 한국 말을 유창하게 걸어오죠. 나중에 결국 순 끙 까이(월남말로 여자)라는 게 탄로 났지만』
『민족 의식이 희박한 편이에요?』
『천만에 아주 자주성이 강한 백성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사상이전에 누구에게도 이민족의 지배는 받지 않겠다는 주체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또 그들은 퍽 친절하지만 결코 비굴하거나 아부하지 않죠. 천연자원이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오늘 먹을 것만 있으면 내일은 걱정도 안하는 낙천적인 사람들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한국 사람에게 외상도 달라는데로 주고 돈도 빌려줍니다. 광주리를 울러 메고 과일장사하다가 다 못팔고 해가지면 한국병사에 광주리채로 들어밀고 갓다가 이튿날 아침 그릇과 값을 찾으러 오지요. 언제든지 대문은 열어놓고 해수욕장엔 카메라를 던져놓고 놀아도 집어가지 않지요. 그러나 역시 빈부차는 심한 편이고…』
『음력설날 「라이니」란 마을을 혼자 산책하다가 어떤 꼬마에 끌려 그의 집에 억지로 들어갔어요.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서로 권하드군요. 그런데 문깐에 또 동네 꼬마들이 잔뜩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나오자 마자 또 한놈에게 붙들려 갔지요. 이렇게 끌려다니다간 한이 없겠고 또 베트콩 습격의 염려도 있어 겨우 타일러 빠져 나려는데 이번엔 한 아주머니가 와서 자기들 집에 가자는군요. 굳이 사양하니까 그럼 좀 기다리라는거에요. 쫓아가더니 큰 호박만한 그곳 과일과 먹을 것을 단뜩 싸다가 안여주더군요.』
『예 거긴 새로운 낯선 사람은 그저 안보내는 풍습이 있나봐요. 그뿐 아니라 그들으 남을 의심하지 않고 퍽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들 같더군요.』
휴가 이야기가 나오자 권 중위는 『「풍타오」 해변의 남국 경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추억이며 휴가지에서 한국 아가씨들인 간호장교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고. 바스켓 하나를 들고 스립퍼를 신고 흰 「아오이지」를 입은 소박한 베트남 신혼부부들, 『한번은 베트콩 요새로 쓰던 성당을 탈환했을 때 푸른 초원속에 한점 흰 성당에 들어가니 무수한 탄흔과 깨어진 유리창이 흩어진 속에 벽에 붙은 말없는 14처, 높이 달린 그리스도고상』 앞에 꿇어 평화를 빌었다는 권 중위, 그의 전쟁과 타향의 인정이야기는 아직도 끝이 없는데 창너머엔 붉은 석양이 내리고 복도에선 식사하러 가는 장병들의 신발소리가 줄지어간다. (丹 · 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