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매괴성월이다.
차분히 내리는 맑은 가을 이슬에 붉은 장미의 구슬을 담그보자. 손때 아닌 부연 먼지가 우아(優雅)하고 찬란한 구슬의 빛을 잃게 하지나 않았는지….
10월은 영글어 가는 계절과 함께 우리들은 그동안 배암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그분에게 얼마나 정성어린 꽃다발을 바쳤는지 결산해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우리들은 채워보자. 그의 무릎을 안고 옷자락에 매달려 영원한 빛이요 대화인 「로사리오」의 현의(玄義)를 되찾아 보자.
매괴신공은 그리스도의 인생에 일어난 두드러진 열 다섯 가지 사건을 묵상하면서 성모송을 백오십번을 외우며 손으로 구슬을 세어가는 기도이다. ▲환의의 현의는 우아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이 담긴 성가정(聖家庭)의 단란한 모습으로 진정한 우리 가톨릭가정의 교훈을 주는 것이며 ▲통고의 현의는 즐거움 대신 당신의 아들이 모든 치욕과 고통을 감수하는 모상을 꿋꿋히 보고 계시는 치명자의 모후, 우리에게 모든 고난과 고통을 참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영복의 현의는 영화로운 당신의 승리가 우리에게 장래의 승리를 약속하여 주시고, 영원히 우리들이 머물 곳을 말해주며 우리이 대변자(代辯者)가 승천(昇天)하시므로 천국에서 우리를 굽어 살펴주실 무한한 위안을 약속해주시는 것이다.
성교회 사상(史上) 천주의 모친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으며, 특히 「매괴신공」과 관련된 은혜들이 많아. 그 첫째는 12세기에 있어서 「알비젠시아」 이단의 타파이요, 둘째는 16세기에 그리스도교 군사들이 「레판또」에서 터어키군을 격파한 대승리였다.
그것은 비오 5세 교종의 호소에 의하여 「매괴회」 회원들이 도처의 성당에 모여 기구를 바쳤던 바로 그날의 일이며, 18세기에 항가리에서 터어키군을 무찌른 승리도, 전쟁하는 바로 그 시간에 「로마」사람들이 바친 매괴신공 덕택이다.
10월 7일을 「매괴첨례」로 정한 것도 「레판또」전쟁 기념일인 10월 7일을 성모님께 봉헌한데서 시작한 것이다. 그후 레오 13세 교종때 성교회가 커다란 위협시기 때문에 종종 우리를 꾸짓기도 하시고 위로도 하여 주신다.
창세기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너와 이 여인 사이에, 또 너의 족속과 이 여인의 후손 사이에 내가 원수를 맺아 주노니 그는 너의 머리를 짓밟은 것이요, 너는 그의 발뒷꿈치를 물려 하리라.』(창 3 · 15)고 한 낙원에서 말한 그대로 세계사 및 구세사 전체가 바로 이 두가지로 상반된 표징 아래서 진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가 말하듯이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매괴신공이 없어서는 완전한 신덕의 모존과 완전한 윤리도덕의 실천이 어려움을 증명하고 있다.
더우기 환난(患難) 교회박해(敎會迫害) 등 모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유일한 돌파구(突破口)가 묵주신공(마리아)을 통하여서 임을 말하고 있다.
근대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이 회개(悔改), 보속(補贖)할 것을 경고하신 것도 우리의 갈 길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도 미처 아물기도 전에 벌써 또 다시 세계 전역에 일어나는 분쟁 등, 베트남에 점차 치켜 드는 불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얼마전 「사이공발 NC 通信」 보도에 의하면 폴투갈의 「파티마」 성모상이 월남에까지 왔다고 했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국제적인 단체인 푸른군대의 월남인 회원들이 전쟁종식(戰爭終熄)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일부 몇몇의 절규(絶叫)를 우리들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갖 무대(舞臺) 위의 광대놀음으로 밖에 생각지 않는듯 하다. 극도로 발달한 선진국(先進國)들은 이미 물질 문명에 휘말려 잠겨있고 반면 후진국(後進國)들은 흑심한 물질 곤경에 허덕이고 있다. 어떻든 현대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헤어날 생각을 않고 있다. 그러나 때는 아직도 늦지 않다. 이번 매괴성월(매괴聖月)부터라도 우리가톨릭 각 가정에서는 오늘의 고통과 괴로움을 잊고, 한알 한알의 구슬을 굴리며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가을밤 공기를 메아리쳐 보자.
李喆雨 신부(釜山 西面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