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傳敎黃金期(전교황금기) 끝안났다
750명 예비자 모은 「범일동사건」을 示範(시범)으로
교회에 대한 關心(관심) 있으나 구체적 안내 없어 주저
라디오 · 포스타 · 일간신문에 삽입한 선전문 등 직접선전은 慈善(자선) · 育英(육영)보다 實效(실효) 커
앉아 기다린 전교시절 갔지만
구호품 끊어져 속시원해 하는 神父(신부)들
선전문은 說敎文(설교문) 아닌 각급 교리반 時間表(시간표)만
근간 한국교회내에서는 예비신자 수, 따라서 영세자 수의 감퇴로 인해 여러가지 모양으로 여기에 대한 걱정스러운 반성의 소리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서는 한국교회의 황금시대는 이미 영원히 끝났다고 개탄하는 사람도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예비신자 수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러나 한국교회의 황금시대, 은총의 때, 구원의 시대가 지나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예비신자 모집방법 아닌 새로운 모집방법을 쓸 때 과거보다 못지않게 구도자 예비자들이 교회로 밀려온다는 것을 다음의 체험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실례로 부산 범일동본당을 든다. 이곳에는 지금 750명이란 놀라운 수이 성인예비신자가 신앙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가? 범일동본당은 어떠한 방법으로 이 많은 예비자들을 모을 수 있었던가? 한마디로 말해 본당의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총력을 기울였기에 과거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한국교회이 전교황금시대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도 구호물자의 작용이건 또다른 이유로든 예비자들이 밀려왔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확실히 그런 황금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보아야 하겠다. 또 세인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지난 7월 1일부로 교회가 직접 분배하는 구호밀가루는 그많은 공적(?)과 함께 끝나버렸다.
이 사실에 대해 내가 접촉한 신부님들은 모두 약간의 미련은 있는지 몰라도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시원하건, 섭섭하건, 끝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그러한 소인(素因)의 덕택으로 가만히 앉아있어도 전교할 수 있었던 황금시대는 이제는 끝났다.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같이 영영 다시 오지않기를 기대한다.
예비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범일동본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에게 먼저 「어필」하였다. 그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부산에 있는 두개이 라디오방송국을 통해 방송하고 둘째 본당교우들에게 강론을 통해 독려했고 셋째로 본당관내에 「포스타」를 붙여 선전했다.
이상 세가지 방법이 다 제대로의 효과를 낸 것임에 틀림없다.
네째 방법은 각 일간신문사에 교섭하여 선전인쇄물을 「삽입」해서 배달하는 신문과 함께 가가호호에 넣도록 한 것이다. 김 아릭수 본당신부님은 확실히 이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비라의 가두살포나 가두선전처럼 덜 소비적이고 광신적이지도 않아 점잖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 신문광고처럼 많은 돈이 필요치 않아 재정적으로 약한 본당도 가능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뿐아니라 신문광고는 보통 잘 안보는데 「삽입」은 대개의 경우 눈을 한번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배달원의 『신문-』하는 소리에 뛰어가 신문을 주어 펼칠 때 그 「삽입」된 선전 「비라」가 뚝 떨어지면 누구나 뭔가싶어 한번은 훑어보게 마련이란 것이다.
모여든 750명중 대부분이 이 「삽입」을 손에 들고 성당에로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한 본당이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전교의 황금시대를 창조한 실례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우리가 분석 고찰해 보아야 할 중대한 점이 몇가지 있다. 그 첫째는 이러한 막중한 수의 사람들을 움직인 그 삽입선전문이 어떤 역할을 하였느냐 하는 점이다. 그 선전문이 그들에게 「가톨리시즘」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당장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던가? 그렇진 않다. 즉 그 선전문이 「가톨리시즘」에 대한 계몽역할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선전문에는 「가톨리시즘」 계몽의 내용은 실려있지 않았다. 다만 남녀 일반 각급 학생 직장인 그리고 지성인 등으로 조직된 각급 교리반의 시간표뿐이었다.
따라서 선전문 안니 시간표가 그들 750명 앞에 한 역할을 어느날 어느시에 각자에게 해당되는 교리반이 있음을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은 중대하고 흥미있는 일이다. 이 「범일동 사건(EVENT)」을 분석해 볼 때 그 750명은 위의 각급교리반 시간표를 쓰기전에 이미 교회에 대한 관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오지 않았던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또는 언제 가야하는지를 몰랐었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 어느 시간에 교회에 나오라는 구체적 안내서인 시간표가 도착해서 그들은 곧 첫 출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즉 「범일동현상」에서 귀납적 방법(INDUCTIVE METHOD OF INDUCTION)으로 다음의 교훈을 우리는 결론하기에 이른다.
즉 우리 주위에는 천주의 말씀을 듣고저 하는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말을 바꾸어 한다면 한국교회의 전교황금시대는 끝나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더 순수한 형태 밑에서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750명의 현상」은 범일동에만 국한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인들은 가톨릭에 호감을 가지고 있고 천주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교를 하고 외침(APPEAL)을 보내야 한다.
그러면 어떠한 외침을 보낼 것인가. 즉 어떠한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환언한다면 직접적인 인도방법과 간접적인 그것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여기 대해서도 이상의 「범일동사건」은 해답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직접적인 방법을 아무런 주저없이 사용하자는 것이다.
탁구대와 같은 운동기구나 장기 바둑 같은 오락시설을 본당에 차리는 등속의 간접적 인도방법으로 예비신자들을 모으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이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닐뿐 아니라 그 실표적 가치도 들은 바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 또는 어떤 환경에서는 그런 종류의 간접적 방법만이 주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마 「범일동사건」은 직접적 방법을 통해서 다수의 군중이 교회로 밀려왔다. 간접적 인도방법으로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동안 - 더우기 교육사업, 자선사업과 같은 그것일진대 - 직접적 방법으로 더 빨리, 더 많이 나타낼 수 있는 실적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가 하는 염려다.
물론 범일동에서 성공한 나날이 증가일로를 걷고있는 대성황의 그 이유로서, 현대건축양식 중에서는 전국 최대(?)인 성당을 최근에 지었다든가 또는 한국의 산들처럼 순하시고 무한히 인자하신 본당신부님의 인덕과 이론 정연, 내용 풍부하면서도 구수하게 교리해설을 해나가시는 보좌 왕 방지거 신부님의 묘한 「콤비」가 절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현상분석에서처럼 「범일동현상」 해석에서도 너무 성급하고 일변도적이어서는 안되겠지만 직접적 인도방법을 때를 놓치지 말고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한국에서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의식계급이라 할 수 있겠으며 또 범일동에서는 대학졸업자인 진성인들이 6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모든 점은 오늘의 시점에 있어서는 직접적 전교방법으로, 그리고 적어도 읍(邑) 시(市) 이상의 도시에서는 바로 범일동적 방법으로 한국사회에 직접 소리침으로써 진정한 전교의 황금시대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반성의 한 자료로 제공하는 바이다.
李哲熙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