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어린이들이 밤통같은 돌을 주서다 공기 받기를 하는데 열중하는 광경을 볼 때 묵주의 옛이야기를 생각해낸다. 에집트 사막의 옛 수도자들도 하느님의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은 세속을 피하며 영원을 향한 명상에 잠긴 기회도 가졌었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기도가 있었던가! 그들의 품속에 얼마나 많은 공깃돌이 있었던가!
그들의 성스러운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밤톨같은 돌맹이는 서로 뒤섞여 딩굴고 있었다. 흩어진 그 잔돌에서 묵주가 이루어졌고 그들의 기쁨과 선택에 따라 각 천주경과 성모경이 함께 엮여져 나갔다. 이렇게 여러개의 돌맹이에서 오늘의 묵주가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 모양의 묵주가 있었다.
나는 이른 아침에 한국 부인네들이 우물가로 줄달음쳐 가는 것을 돌 때 우리 육신생명의 일상적 요구를 위해 그들이 씻고 빨래하고 밥짓고 화다을 적기시 위해 열심히 두레박줄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을 본다. 이러한 욕구가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한층 더 치열해 진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위한 일상적 요구에 그 많은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순응하고 있는지 나는 생각해 본다. 신앙과 희망과 사랑 속에 성장하는 힘을 그들은 어디서 얻는지? 천만가지 유혹과 싸우는 용기를 그들은 어디서 갖는지? 죄에서 날마다 결백하고 인내속에 형제들과 하나되는 사랑을 그들은 어디서 찾는지? 개방된 성욕과 자연수 조차 뜨거워지는 열대기후 속에서 갈증의 청량수를 그들은 어디서 발견하는 것인가?
그들은 말한다.
미사에 가고 아침기도 올릴 시간이 없다고. 그러나 찻간에서 직장에서 뜻없이 보내는 시간의 여유를 갖는 이들은 그들이 아닌가? 그때 그들은 쉬이 기도할 수 있지 않는가? 성모 마리아의 손을 빌려 묵주의 두레박 줄을 굴리면서 영원한 생명수를 기를 수 있지 않는가? 그들은 또 그 새 생명은 제절로 자라난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새 생명은 성총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샘물이 제절로 부엌에 흘려들지 못하고 수도(水道)가 제절로 이루어지지 못하듯이 성총도 제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시아의 지도(地圖)를 눈여겨 볼 때, 오늘 우리 시대의 골리얕이 베트남에서 지르는 하느님 백성을 저주하는 망동의 소리, 울려오는 무기의 소음을 들을 때, 또한 우리 한국신자들이 현대조류에 흔들리는 것을 볼 때, 또 다시 나는 자그마한 돌맹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골리얕과 싸우기 위해서 대울가로 달려가 손에 맞는 돌을 찾는 다위를 나는 본다.
그 싸움은 절망적 대조였다. 거인의 골리얕은 최신무기로 장비햇는데 어린 다위는 지팽이와 돌맹이르 ㄹ가졋다. 그러나 이 작은 돌은 하느님의 무기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교회사 가운데 하느님의 모든 전쟁사(戰爭史)를 통하여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모든 싸움의 승리자이신 마리아의 지휘 아래 신자들이 손에 쥔 묵주는 승리의 무기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지혜가 죄악의 권세에 기운을 잃은 우리의 시대가 시작하고부터 안타깝게 성모님은 계속 발현하시어 이 기구의 무기를 잡아쥐도록 거듭 독촉하였다.
오늘이라 하여 어찌 천주님이 하나의 다위도 보내시지 않겠는가? 오늘에 와서 어찌 한 사람의 다위로 만족하겠는가? 오늘 우리에겐 기도인의 한 군단이, 기도인의 한 백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정에서, 본당에서, 지방에서, 그리고 교구에서 기도로 뭉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싸움의 총력을 집중시킨 다위와도 같이! 그리고 행운만을 빌 것이 아니라 천주님의 원수의 약점(弱点)인 급소를 겨누어야 한다.
나는 베트남에서 싸우는 한국 맹호부대의 소식을 들을 때 한국 가톨릭신앙의 맹호분대인 한국 치명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희망을 갖는다. 이곳 한국에 돌맹이 즉 묵주만이 아니라 용감한 기도인이 있을것을!
한국교쇠의 초기입교영세자들 가운데 한 귀족이었던 홍 루까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교리를 듣고 크게 감동했으나, 하루는 임금 앞에서 자기의 신앙을 거부했다. 박해가 극도에 이르자 그는 유형에 처해졌다.
그는 다리에 모진 매를 맞은 것이 그에게 성총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오늘에 이르도록 과거에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내가 고문을 받고 치욕을 당하는 이 마당에, 나는 내 마음을 털어놓고 너희들에게 말하여 용감하에 죽겟다. 내가 섬기고 있는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천주님이시다. …나는 이제 천주님을 위해서 죽음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겠다.』고 고백했다.
알려진 사실대로 홍 루까는 자주 신앙을 거부했지만, 그는 공무중에 있을 때 많은 손님이나 친구가 방문했을 때에도 매일 열심히 묵주신공을 하여 단 하루도 궈한 적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충만한 은혜를 받게된 것도 틀림없이 이 묵주신공에 있었다. 달레 신부가 쓴 한국교회사기에 보면 『이 새로운 영세입교자가 쓴 이 아름다운 글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기뻐할 것이다. 참다운 그리스도신자들이 소위 본능적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그와같은 불굴의 신앙을 갖게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능히 하시는 마리아의 전구하심의 은혜임을 거듭 입증하는 것이다.』
묵주신공의 위력은 아직도 많은 한국치명자들에 의해서 입증될 수 있다. 순교 백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오늘 우리의 시대의 마리아는 특별히 구원의 허리띠로써 묵주를 내려주실 것을 우리는 새로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파띠마」의 성모께서는 『나의 원죄없는 성심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고 하셨다.
河 안또니오 神需(釜山 東港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