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리 안에서] 교회 고용 平信者(평신자)의 處遇問題(처우문제)
발행일1966-10-16 [제539호, 4면]
■ 信者의 意見
「정당한 품값 제때에 주라」는 지엄한 분부, 냉혹한 勞資關係 아닌 사명감 가져야
위와 같은 주어진 제목에 답변하기 거북스러우나 대의(大義)라는 점에서 솔직히 말하자.
고 요안 23세는 교황이 되시자 첫 사업으로 「바티깐」시국의 모든 종업원의 봉급을 배로 늘려주셨다. 먼저 자기를 어깨에 떠받쳐 메는 연(輦)군들에게 『그대들, 내가 무겁지, 선 교황은 홀쭉해서 가뿐하였지만 나는 뚱뚱해서 갑절 무거울 거야. 그러니 이 시각부터 그대들의 보수를 갑절로 늘려주겠어』하셨고 둘째로 문지기들의 대우를 곱으로 늘려주셨으며, 나아가 모든 공무원의 일값을 배로 늘렷다고 전해 들었다.
어버이다운 온정에 감동되기 그지 얺는 처사이다.
흔히 교회기관 고용료는 싸다는 평이 나돌고 있다. 끄덕여지는 현실이다. 막대한 교회 운영 유지비를 지탱하느라고 일값을 후하게 치르지 못하는 고충은 이땅이나 외국이나 통하는 바 있겠다. 외유하고 돌아온 Y신부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벨기의 어느 성당에 갔더니 종치고, 청소하고 사무보는 복사가 생계우지를 위해 낮에는 셩관으로 겸직한다고 한다. 『정당한 품값을 제때에 주라.』는 것은 지엄한 분부다.
그런데 교회기관 교용인은 외부 기업체의 고용인보다 희생적 보수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라면 웃어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교회기관에 근무하는 이는 으례껏 교우요, 기업주(?)는 성직자이기 일쑤인데 교우가 집안일(교회기업)에 봉사함에 임금이 적다해도 한편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가령 그 품값이 외부사회와는 동떨어지게 싸다면 재고할 문제점이 없을 수 없겠다. 교우도 사회인이다. 가족을 거느리고, 생활비와 자녀의 양육 · 교육비와 갖가지 세금도 남과 똑같이 내야한다.
더구나 오늘 같이 구름다락으로 치달리는 물가고의 현실에 있어서는 교회기관 종업원의 보수도 외부사회에 근사치 정도로는 따라감이 당연하지 않을까 노파심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부사회처럼 냉혹한 노자 관계가 아니라 서로간에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는 역군끼리의 형제애를 전제로 하여 보다 따스한 애덕과 이해력 · 관용성을 가지고 융합된 유대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잘 유지된다면 서로의 인격도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보호되고 존중될 줄로 안다.
끝으로 한마디 보태고 싶은 말은 교회기관의 어떤 사업이나 기업의 계획 및 조사 · 검토 등에 실무 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활발하게 청취하여 참고로 삼는다면 보다 큰 실효를 거두리라 믿는다.
(검돌)
■ 神父의 意見
터무이없는 예산에 세상물절 모른다고 신부만 족쳐
무딘 호미론 밭매기도 힘들어
어렷을적 얘기다.
1922년 그러니까 내가 소신학생적 어느해 방학때 농사를 버려놓고 채 김을 못매서 밭에는 바랭이가 호랑이 새끼칠 정도였다. 밭을 덤벼들어매기로 하였다. 어머님이 내주시는 호미가 다 이글어지고 그나마도 호미날이 반은 부러진 것을 주셨다. 아무리 옆에 일군을 따라갈래야 따라갈 수가 없다.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옆에 사람 것을 바꿔 매여보니 제법 따라갈만했다.,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교회일을 할려니 거치장스럽고 사람대접을 안해준다』 과연 옳은 말이다. 인간일진대 의 · 식 · 주가 선결문제다. 내 어렷을 적에 보면 본당신부님들이 『교회일인데 뭐 희생 좀 하시오』하고 공짜로 일시키는 것을 볼적마다 어린마음(소신학생시절)에도 언잖은 감이 없지 않았다.
자기가 자진봉사(무보수로)하는 것과 일을 시키고 댓가를 치르는 것과 한계가 뚜렷이 다르다고 본다. 먹어야 한다. 입어야 하고 써야하고 자녀교육도 시켜야 한다. 교회에서 봉직하는 유급회장님과 전교회장님들 교회직원들 주일학교선생들 총무서기 식모들 그리고 신부님들의 비서 등등 그들은 천사가 아니고 이슬만 먹는 매암이도 아니다. 현 경제상태에 맞먹도록 그들의 생활에 맞도록 처우개선을 하여주고 될 수 있는 한 퇴직금 뿐만 아니라 장래를 위한 경제적 보장제도도 마련해 주어야 하겠다. 그러나 물이 목마른 자에 필요한 것이다. 제 아무리 목이 타 죽게되어도 마실 물이 없으면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1966년 9월말 현재 남한은 12교구내에 본당이 338개처에 공소가 1715개소이고 성당은 688개소이고 이 일터전에서 봉사하는 한국인 신부가 385명에다가 외국인 신부가 688명 거기에 남회장이 2183명에다가 여회장이 922명이다.
이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가 아니다. 또 그들이 책임진 교회운영 · 전교사업 · 자선사업 · 교육사업 등 말로만 되는게 아니다. 덮어놓고 『본당신부는 구식이다. 우리 「본당신부는 사회물정을 모른다.」 「사람처우를 안해준다.」 마구 떠들어댄다. 『죽일 놈은 본당신부들이다.』 그런데 죽게하는 자는 누구냐? 각 본당에 1년 예산편성을 보면 근사하다. 관항목에 느러놓을 것은 다 느러놓지만 나열만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지 않는가. 연말결산 때 보면 맨 「마이너스」 투성이. 제대로 관 · 항 · 목을 제법 집행 못한채 그해 그해를 넘어가니 그럼 신부들이 사과장사를 하란 말인가 하다못해 요새 화제가 된 「사카린 밀수업을 하란 말인가?」
이 교회사업을 유지 발전시키고 교회에 봉직자를 응분에 맞도록 처우 개선을 본당신부들이 할 줄 몰라 안해주는게 아니지 않는가? 위에 어느 신부가 일을 공짜로 시키고 싶어서 그러는건 아니지 않나? 본당운영위원들이 1년 예산을 빈틈없이 짜고 또 그것이 예외없이 집행될 때에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왜 마실물은 안떠다주고 덮어놓고 왜 목마르게 그냥 내버려 두느냐?고 호통 호통하니 본당신부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또 본당신부들이 귀먹은 돈을 교회를 위해 얼마나 쓰는지 아는가? 모르는가? 몰아세워도 사정이나 알고 몰아세웠으면 본당신부들이 굶어죽어도 한이 없겠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정신을 따라 교회는 성직자만의 교회가 아니고 「천주의 백성」인 신자들의 교회고 집이다. 그러면 「백성」이 제 교회 제 집을 떠맡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본당신부님들을 대신해서 교우들에게 뭇매를 맞을 작정하고 이 모진소리를 남한에 계신 706829명 형제자매에게 외치는 바이다.
종부를 미리 받고 맞아죽을 시간을 기다리겟다. 『본당신부도 할 말이 있다』고.
吳基先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