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발전은 전교에 비례되고 전교가 교회 발전의 「바로메타」라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①전교란 교회의 포교활동에 관한 율령에서 규정된 대로 『일반적으로 복음의 전달자들이 교회로부터 파견되어 전세계에 나아가 아직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단체들 가운데 복음을 설교하고 지방 교회를 세우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 사업』이다.
복음이니까 「희소식」이다. 원수의 죽음, 승리, 불행의 제거, 내림 등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구원을 보고하는 것이다. 이것을 맡은 사람을, 이것을 위해 파견된 사람을 「메센저」 혹은 「사도」라 한다.
이들이 띤 사명을 「임무 · 천직 · 특파 · 전도 또는 포교」(한 주교)라고도 하는데 신구약을 통해 대표적 「사도」는 그리스도시다.
파견된 그리스도는 이제 『만민을 가르치라』 하시면서 그 제자들을 전교하러 파견하셨다. 이때부터 천주의 백성인 우리 교회는 이 사명을 다하기로 전력을 기울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이기때문에(루가 2 · 11-19)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게하고 주는 것이다. 풍부하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는 먼저 자신에게 해야한다.
그리고나서 집안에, 주위에, 직장에, 사회에, 국가에 그리고 온 세계에 이렇게 전교 범위를 차츰 넓혀야 한다. 마음의 등불을 촛대위에 또 교회의 횃불을 세상에 비춰야 하지 않을까?(마테오 5 · 15-16)
②그러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를 전하고 주어야 하는가?
▲세말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면서 『만민을 가르치라』는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상(至上) 명령이기 때문이다. 온 인류의 구원이 여기에 달렸으니까. (루가 4 · 43 참조)
▲신비체의 머리신 그리스도는 첫째가는 선교사요 제일 위대하신 사도로서 성부께 위임받은 사명을 죽기까지 수행하셨다면 그 지체인 우리도 같은 사명을 지니고 이를 죽기까지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요, 영광이며 자랑거리기 때문이다. 집안의 경사나 이름난 인 물은 본능적으로 자랑하고 싶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는 능히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종도 4 · 20)
▲우리는 또하나의 본능이 있다. 구원을 나혼자만 받을 것이 아니라 내 부모, 자녀, 친척, 친구들, 그리고 내 동족들도 모두가 다 받게하고 싶은 이것이다. 우리는 나면서 가족적이요, 사회적이며 민족적이니까 혼자만 살고 행복하려는 것은 외람되다. 이는 무자비한 것으로 남의 영혼 하나도 구하지 않은 자는 천주 앞에서 창피당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앙화로다』 (코전 9 · 16)
▲견진을 받은 자의 의무중 하나는 「남의 구령에 힘씀」이다. 그러니까 특정인들만이 전교할 의무가 있는 것이 이낟. 견진을 받은 사람이면 예외없이 자기 나름의 전교를 할 의무가 있다. 총동원해야 한다. 여기서 「一年一生主義」를 강조한다. 한사람이 일년에 한명씩만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가톨릭화의 비결이다. 『평화를 보하고 경사이 희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고운고!』(로마 10 · 15)
③전교방법은 많다.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위선 교회와 포교활동에 관한 율령과 그 정신을 잘 연구터득하고 전교대상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것이다. 여기에 꾸준한 노력과 타는듯한 구령열을 겸해야겠다. 전교가 아닌 딴 교파들의 전도열은 우리의 얼굴을 붉힌다.
▲다음은 전교의 외적 활동에 앞서 내적 생활이 있어야 한다. 전교자 자신의 성화다. 나무인 외적 활동을 지탱하는 것은 뿌리인 내적생활이다. 천주와 가까운 사람이라야 그 전능을 발동시켜서 효과적인 전교활동을 할 수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본 막달레나는 기쁨에 못이겨 단숨에 사도들한테 달려와 자기가 보고 말한 것을 전했다.
이 전하고 알리는 것, 이것이 바로 전교가 아니낙? 그리고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나서 넘쳐 흐르는 것을 주어야 한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소유한 그리스도를 주어도 자신은 언제나 같은 그리스도로 차 있어 비여있지 말아야 한다. 내적 생활이 없는 사람의 전교활동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조금도 다름이 없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낫다.
▲그다름 전교활동에 있어서 주력해야 할 중요한 것은 「호감」을 주는 것이다. 첫 인상을 좋게 주고 마음을 사란 말이다. 이것 없이 물질도 이론도 도리어 역효과만 낸다. 그래서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속을 쏙 빼버려야 한다. 『나는 모든 점에 있어서 자유로운 자로되(그리스도를 위하여) 보다 더 많은 이를 구하기 위하여, 나 나를 모든 이의 종이 되게 하였노라』(코전 9 · 19)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몇사람이라도 구하기 위하여는 나 모든 이에게 대하여 모든 것이 되나니라.』 (동 22절) 봉사적이라야 한다.
▲기타 방법으로 위선 「매스콤」의 효과적 이용, 요기적 전교망 조직, 교리학교의 강화와 증설, 전도사 양성과 활용, 철저한 예비자 안내와 잦은 방문, 교리책 무료제공, 교재연구, 예비자들과의 친목 행사를 들 수 있다. 이것들을 위해 전교회비가 있는 것이다. 위에 말한 것들이 잘 실시되었던들 오늘의 한국교회의 면모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교의 황금시대를 아깝게 놓치지 말자 시급하다. 끝으로 전교의 교본이라고 할만한 벨기의 쉬넨스 추기경의 책이 김정진 신부의 『복음을 전하라』는 역본으로 불원간 출판될텐데 전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崔益喆 神父(서울 里門洞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