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개] (7) M지부장 ③
발행일1965-10-17 [제491호, 4면]
『냉정이 아니고 객관성(客觀性)이지요. 험상궂은 눈을 하고 얼굴은 무슨 보이지 않는 벌레에 시달리는 듯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는 한 연인이 내 진찰을 받으러 온다고 합시다. 그 여자의 손을 잡아 주거나 작은 알약을 달라고 정신과의사(精神科醫師)를 찾아오는 건 아닙니다-. 10분이 지나서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을 죽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만약에 내가 고해신부 모양으로 「그건 나쁜 일입니다. 아주 나쁜 일이에요!」하고 말한다면 사죄권(赦罪權)이 없는 나이니 그에게 무슨 이익을 줄 수 있겠읍니까? 또 누구처럼 자애롭게 말해준다면…』
『소년원 판사처럼 말이지요!』 라미씨는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그렇다고 합시다! 「뭐, 그게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구나!」 판사님처럼 무죄를 언도할 권한이 없는 나로서 그 여자에게 무슨 이익을 주겠읍니까?… 그렇지요. 오직 하나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판사님이 냉정이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언제부터 남편을 죽이고 싶습니까?」 잘 낮지 않는 변비증 이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나는 적어도 아이들을 다룰적에는…』
『그렇지요, 뺨을 토닥거려 주고싶고 그 부모가 도무지 사랑할 줄을 모르는 그 가엾은 어린것이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것은 크나큰 유혹이지요… 그러나 어린이들을 그들이 가진 부모가 비록 돼먹지 않았더라도 그 부모들에게 적응시켜야하니, 동정을 하고 감동시키고 감동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그러면 시종일관 태도를 취하고, 결코 판단하지를 말고 그들을 자기 자신들과 대결시키는 거지요. 그저 거울노릇만 한단 말입니다! 그 때에는 그들의 고민이 무너지고,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끌레랑 의사가 알랭 로베르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그 이튿날 아침이다.
『자, 이 친구, 뭣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어디 네 일건서류를 좀 보자…(그는 그 서류를 썩 잘알고 있다…) 이건 네가 그린거냐?』
『네.』
『설명을 좀 해봐라. 거기 넓은 밭가운데 있는 네 집말이다. 철망이 빙둘러 쳐저있는데 그건 왜 그러냐?』
『그렇게 생겼으니까 그렇죠.』
『네 눈에는 그렇게 좋아, (침묵) 얘야, 두루씨 내외는 좀스럽게 괴팍스럽더냐?』
『그러믄요.』
『그보다도 갑자기 그렇게 됐지, 응? 하여간, 네 생각에는 갑자기 그렇게 된것 같았단 말이지』
『갑자기 그렇게 됐어요.』 알랭 로베르는 단언한다.
『그야 어쩔수 없지, 늙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하고 싶어하는걸 못하게 하던란 말이지?』
『뭣이든지요』
『그래도 세수하는거야 그랬을 라구! 학교에 가는 것도 그렇고… 좋아, 얘야 거기 왼편에 있는 건 나무들이냐』
『보면 몰라요.』
『맞았다. 그럼… 두 나무중에 어느 것이 너냐?』
회색 손가락 한개가 올이 오르지 않은 소매끝으로 비죽 나와 나무하나를 가리키려다가 딱 멈추더니 껍질속으로 도로 들어간다.
『난 나무가 아냐요.』
『나도 그건 안다. 허지만, 네가 나무라면 어느 것이겠느냐 말이다… 이거지?』
알랭 로베르는 동의한 것을 이내 후회한다. 그렇다. 하나는 위엄있는 또 하나는 짜부러진 두 나무중에 그는 짜부러진 놈이다.
『됐어. 다른 그림을 보자. 이건 한 가족이 아니냐? 말해봐라, 이건 아버지와 어머니가 식사를 하고 있는 거지- 허지만, 다른 식군 없니?』
『그렇겠죠 뭐』
『그 사람들 사이로 벽에 걸려 있는 그 사진들은, 누구냐?』
『사진틀이요』
『그건 나도 알아(의사는 여전히 너무 순하게 말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는 종잇장을 비쳐본다) 넌 흰 연필칠을 해서 지웠구나…』
『여긴 고무가 없어요!』
『뭘 지울려고 했니? 사진틀 속엔 누가 있었니?』
『아무도 없었어요』
소년은 주먹을 쥐며 말한다.(둥근눈이 그것을 보았다.)
『좋아, 그런데 너는 거기 없니?』
『없어요, 난 여기 있는 걸요!』
『참 그렇지』
의사는 이렇게만 말하고나서 벼란간 그의 씨름군 같은 상체를 곱슬머리에게로 수그리며 그 험상궂은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본다.
『그럼, 드루씨 내외가 전쟁통에 잃어버린 아들 이름은 뭐냐?』
『앙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면서 왜 말을 안하는 거냐?』
『앙드레』
알랭 로베르는 잠시 사이를 둔 뒤에 말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날랜 손이 감색 소매 밖으로 날름 나와서 세번째 그림(사람)을 움켜쥐어 구겨서 방바닥에 내동이 친다.
의사는 여전히 느릿느릿 몸을 굽혀 구겨진 종이를 집어서 펴가지고 들여다보며 중얼거린다.
『이게 앙드레의 얼굴이로구나. 그리고 사진틀이 네 방에 있었니?… 그래?… 그리고 너한테 그애 얘기만 하더란 말이지, 응?… 「앙드레는 이렇게 안했을 거다!… 아이고 앙드레가 있었더라면!…」하고 말이다.』
알랭 로베르는 얼굴이 샛빨개졌다. 그는 회전창(回轉窓)의 고리와 난방장치의 「파이프」에 정신이 팔린체 한다.
의사는 아무것도 못본체 말을 계속한다.
『앙드레 앙드레, 참좋은 이름이다. 허지만 앙드레는 이젠 집에서 없어졌지! 그런데 너는 그집 아들이었고!』
『아아니! 이 나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소년은 눈썹을 험악하게 치켜세우고 입은 벙싯 벌리고 턱을 바들바들 떨며 몸을 일으킨다. 그럴줄 미리 짐작한 끌레랑은 끄떡도 않고 묻는다.
『엉? 넌 그 집 아들이 아니었었니?… (침묵) 그 분들이 너는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그러더냐?』
의사는 느릿느릿 말을 계속한다.
『언제 그러더냐?… 생각해 내봐… 싸움이 한바탕 벌어진 뒤에? 부인이 먼저 골을 냈었니?』
『아니요, 남편이요』
『그럼 그 분들이 진짜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는 걸 네가 알게 됐을때 네 맘이 어땠니?』
알랭 로베르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다.
『속이 텅 빈 것 같았어요. 난 마굿간으루 가서 새웠어요. 추웠어요.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앙드레 처럼 말이지?』
『앙드레 걔는 재수가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난 그 애가 너 있는데 있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이죠, 걔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 테니까요!』
『허지만 너도 아버지 어머니가 있지 않니?』
『그렇죠! 아버지 어머니 참 훌륭해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 이얘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거 봐라』 의사는 입을 쑥 내밀고 말을 계속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드루씨 내외는 아들이 없어서 쓸쓸하고, 너는 부모가 없어서 쓸쓸하다. 너를 소년원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하는 것보다 일을 바로잡을 좀더 영리한 방법이 아마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은 늘 나한테 그 말을 한걸요!』
『혹은 또 「가족의 유품을 때려 부수겠다」고 을리대는 것보다 좋은 방법 말이다… 가족의 유품이란 앙드레의 초상을 말하는 거지 응?』
『사방에 그걸 걸어 놓았어요!』
『그리고 「자동차에 금을 그었다」는 이야기는 뭐냐?』
『보이세요, 광에다 처박아둔 「모타」도 없고 「브레키」도 없는 헌차얘요. 닭들이 그 속에 살고 있었어요…』
『그래 넌 어떻게 했니?』
알랭 로베르는 아무지게 말한다.
『내 이름을 썼죠. 계기판(計器板)하고 네 문짝에다요, 내 이름을 말예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름이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처럼』
죄다 그 사람들 거였어요. 그런데 그 낡아빠진 헌차가 그 사람들한테 무슨 소용이 있었어요?』
『물론 그렇지, 허지만 말이다 『늙으면…(그는 손짓으로 말을 보충 한다)
얘야, 반에서는 괜찮으냐?』
『그저 그래요』
『밤에 꿈을 꾸니? 가령 어젯밤에 꿈을 꾸었니?』
『네』
알랭 로베르는 중얼 거린다.
그의 얼굴은 해가 없어진 하늘처럼 갑자기 변하고 눈은 더욱더 반짝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