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교회)內(내)의 自由(자유)
公議會(공의회) 以後(이후) 學究面(학구면)에서의 考案(고안)
知性(지성)은 傳統的(전통적) 權威(권위) 세우면서
現代適應(현대적응)에 자유로운 姿勢(자세)
대화 · 지식 · 경험 제공할 구체적 제도 마련 긴요
自由(자유) - 原則(원칙)보다 實際的(실제적) 面(면)에서의 擴張(확장)
敎會(교회) - 現代科學(현대과학), 內包(내포)한 問題點(문제점) 積極(적극) 探究(탐구)
神學內部(신학내부)의 多樣(다양)한 學派(학파) · 方向(방향) 認定(인정)코 西歐(서구)만 아닌 全世界(전세계) 文化(문화)와의 對話(대화)
지난 公議會 會期동안 外信이 傳해온 公議會 會議進行 方法과 案件處理過程과 決議事項을 알게된 우리는 한편으론 그 前代未聞의 당황할만치 自由로운 討論과 論爭을 경악의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또 다른편으로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獨善的 會心의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全世界는 天主의 叡智가 自然의 「諸偶然」과 人間이 恣意로 꾀하는 遊歲에 모든 機會를 주면서 그러나 救援의 永遠한 計劃에로 그들을 攝理해 간다는 劇敵光景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敎會內의 우리 주변에서는 敎權의 權威와 天主의 백성의 自由를 둘러싸고 保守 혹은 進步의 兩陣營을 構想해 놓고 자기자신을 그 어느 派에로 맡겨보는 事態가 있다.
또 이미 許容되기 어려운 舊制度의 權威의 희미한 그림자를 固守하려는 낡은 精神들과 또 너무 性急한 改革과 原則 없는 無軌道한 思考 등의 亂立으로써 어지러워진 現狀에서 우리는 깨어서 성신의 은총을 빌며 성신의 감도에 예민하며 연한 몸가짐을 갖도록 해야겠다. 이것은 이미 뚜렷이 된 바이지만 성신의 自由로운 입김은 傳統의 權威를 세우면서도 그의 現代에의 適應엔 놀랄만치 自有롭기 때문이다. 더우기 가톨릭 知識人에게는 이러한 姿勢가 여느때 보다도 더 切實히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敎會內에서의 思考와 發表의 自由에 대해서 예수會 神父이며 現代指導的인 神學者 카를 라너의 「敎會內의 與論」이란 論文을 소개한 바 있지만(뉴먼 어소씨애이션 編 「갈대」誌 1961年) 여기서는 가톨릭 知性의 學究生活에 있어서의 自由라는 角度에서 가톨릭 知性의 態度를 現代의 最前線 神學者들의 見解에 따라 考察해 볼까 한다.
누구나 다 認定하듯이 이번 公議會로서 가톨릭 知性이나 學者들은 以前보다는 더 큰 精神的 및 學問自由를 갖게되었다. 筆者의 記憶에 아직 새로운 몇가지 例만 들더라도 1950年 「人類의 誤謬」라는 回勅의 公布를 前後해서 筆者의 벗들이(뜨화퐁태느-實存哲學者이며 가브리엘 마르셀의 親友) 司祭昇品을 1年 延期當했다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外 神學者 이브 더 몽셔이, 앙리 더 류박, 古生物學者이며 北京人의 發見者 때이야르 더 샤르댕 등이 많은 束縛을 받았던 바였다.
류박 神父는 이번 公議會에서 公的으로 復權이 과시되다 시피 少數의 「公議會 神學者」로 任命받았으며 또 新學問題準備委員會의 委員으로서 「敎會憲章」 기초에 決定的인 영향을 주었다. 더 샤르댕 神父는 그의 生存時에 햇빛을 못보았던 그의 原稿가 死後에 出版되자 「로마」 의 警告에 부딪쳤다. 그러나 公議會 會期中 이 制限이 撤回되었던 것은 世界的 時事로서 널리 알려진 事實이다.
그外 또하나의 現象은 最近에 이르러 「禁書目錄」이 敎會法上의 效力을 喪失했다는 發表이다.
그러나 이것은 決코 「禁書目錄」 그 自體의 必要性을 否定한 것은 아니다. 敎會는 異端에 대해서 自己防衛를 해야하며 惡書의 害毒에서 그 子女들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 것이다. 이 決定은 信仰과 道德을 위태에 빠지게 하는 出版物을 忌避해야 한다는 自然法을 排除시키는 것이 아니다. 禁書는 그리스도 信者의 良心이 가르치는 限 道德的 苛責을 加하는 것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禁書目錄은 「宗敎革命」이란 新敎의 離反이 있었던 當時의 專制的社會의 産物이었으며 이러한 權威的 措置는 現代가 생각하는 만치 奇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監督面에 있어서 過度했던 点이 없지않아 反省과 是正이 必要하게 되었다.
1965年 12月 7日자로 檢邪聖省(SANCTUM OF FICIUM)이 그 名稱부터 「敎理聖省(S. CONGREGATIO DE DECTRINA FISEI)」이라고 變更되어서 엄격한 裁判과 같은 立場에서 보다는 아버지나 兄弟와 같은 태도로써 臨할 것을 다짐했다. 이것은 敎會가 時代의 要求에 適應한 하나의 뚜렷한 實例이다.
그러나 이 넓혀진 自由는 原則的인 擴張이라기 보다는 具體的이며 實際的인 것이다. 즉 이 커진 自由는 敎會와 그의 公式 代表者들이 特히 世界觀的으로 重要한 問題들에 關해서도 現代科學의 모든 分野에 있어서의 問題点과 그의 모든 成果에 맞서 볼만한 意志와 勇氣를 말하는 것이다. 또 이러한 諸問題에 대해서 神學的인 解答을 너무 早急히 내림으로써 경우에 따라서 그리스도敎 學究의 立場을 甚히 곤난하게 窮地에 몰아넣는 일이 없도록 愼重을 期할만한 賢明도 이 自由가 意味하는 것이다.
公議會 以前에 準備되었던 많은 指示와 解釋은 그後 取消된 것이 있지만 그와 反對로 다른 問題, 例를 들면 人類單祖說, 夫婦生活에 있어서의 倫理的樣相 등 論難이 있는 問題에 關해서 오직 權威만을 내세우는 立場을 止揚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가톨릭 神學 內部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多樣한 學派와 方向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것 또 그리스도敎 神學은 다만 西歐的인 것의 獨舞臺가 아닐 것이며 西歐外의 各文化가 쌓아올린 哲學과 叡智와 더불어 對話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公議會中 및 以後에 여러 구석에서 때로는 가톨릭敎會엔 이제 思想과 思考의 「自由」 制限이 없어져서 『제 멋대로 생각해도 좋다』는 進步的이라고 自負하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가톨릭으로서 또 誠實하게 있기를 원한다면 아뭏든 敎會는 항상 하나의 「絶對的 制度」로서 自認하고 있다는 것을 公言할만한 勇氣도 가져야 한다. 敎會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의심해 보며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變更될 수 있다고 내세우는 어떤 討論協會나 集團은 아니다』(라너). 敎會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는 天主의 絶對的이며 決定的인 自己傳達의 現存 그 自體로서 自身을 알고 있으며 또 人類에 對하여 이 決定的인 天主의 救贖行爲를 信仰안에 받아서 傳達하며 宣布하는 者로서 自處한ㄷ. 이러한 自己意識으로부터 敎會가 그의 敎義에 自己의 實在대로를 言語槪念으로써 具體的으로 表現化하는 勇氣와 可能性 및 義務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敎義는 絶對的인 의미를 띠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信條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絶對的인 抱束力으로써 信仰을 要求할 수도 있으면서 또 同時에 理論的으로서나 가톨릭信者들의 實踐的生活의 面에서나 考慮되어야 할 点이 없지 않는 것이 事實이다. 이러한 信條에 關해서는 公開的인 對話가 必要하게 된다. 따라서 知性人이나 學者는 敎會當局과의 對話를 꺼려하지 말아야 하며 自己의 知識과 經驗을 敎會에 提供해야 한다. 이 点에 關해서는 지금까지 보다 더 具體的이며 더 나아가서 制度上의 어떤 措置가 講究되고 制度되었어야 마땅할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敎會當局者는 또 이들의 現世的인 知識과 經驗을 묻고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져야 하며 對話의 素地를 닦아주어야 한다. 敎會當局의 代表者들은 이러한 마당에서 아직 從前과 같은 父權主義的으로 自己의 個人的 賢明과 人生經驗으로써만 敎會를 혼자 이끌어 나가기는 不可能하다는 것을 銘心하지 않으면 안된다. 人間生活 이 最高度로 複雜化된 오늘날 敎會는 오직 學問的으로 吟味된 方法으로써 _得될 수 있는 反省과 또 體系的으로 計劃整理된 經驗만이 必要하다는 것을 確信에야 한다. 그것은 『敎會가 現世的 諸現實에 關한 神學을 設計했기 때문이다.』(꽁가르)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問題에 관해서 가톨릭 信者의 學者나 專門家까지도 不足한 現狀에 비추어, 이럴때 敎會는 주저하지 말고 非그리스도者에게 知識과 情報를 請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事態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學者가 자기의 專攻分野에서 人間的인 標準으로 보아 자기의 義務와 課題를 遂行했다고 할 경우 그는 學者로서의 자기의 그리스도敎徒의 본분을 대부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또 篤信한 그리스도敎 學者일지라도 참으로 어떤 연구가 자기의 救靈과 남의 救援을 위해서 도움이 되느냐 하는 細心한 質問을 끊임없이 할 必要는 없다.
그는 거리낌 없이 俗된 好奇心에 끌릴 수도 있으며 또 「世俗的인 世界」를 건설하는데 協力할 수도 있다. 어느때든 항상 또 어디서나 宗敎的이라야 하며 무엇이든 모든 것을 直接 聖化하려는 것은 外觀으로는 그리스도敎的이며 熱心한 信者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實際로는 이것은 有限한 無常의 造物_ 자기의 生命의 궁극적인 統一과 調和를 천주의 神秘에 委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그것을 統御해 보려하는 건방진 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敎 知性이나 學者에게 그의 人間的課題를 遂行하기 위해서 敎會가 公式的으로 細密한 具體的인 規範이나 指示를 내리는 것이 不可能하다는 것은 理解가 간다. 그리스도敎學者는 廣範圍하게 자신의 固有한 專門知識과 個人的 良心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成年으로서의 그리스도敎徒가 혼자 遂行하는 이 課題의 成功은 그의 신앙과 그리스도敎徒다운 內面態度에 의해서 일워지고 거기서 靈感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에게는 따라서 平素 기은 신앙을 培養하며 敎會의 神秘體의 보이지 않는 生命의 흐름에서 呼吸하고 滋養을 섭취함과 同時에 敎會의 可視的이며 現世的인 制度와 要素도 等閑히 하지 않는 努力이 要求된다.
가톨릭 知性은 그의 專攻分野의 諸要請을 充足시킬뿐만 아니라 人間은 자기의 이웃사람에게 行하는 愛德의 行爲의 하나하나에서 永遠한 천주께 對한 사랑을 實現하여 또 이러한 奉仕에 對해서 모든 學問도 義務를 지고 있다는 신앙의 確信을 가짐으로써 自己의 使命을 成就할 수 있는 것이다.
公議會 後 時代는 公議會 그 自體보다 어떤 의미로는 더 重要하다. 이때처럼 가톨릭界, 聖職과 平信徒의 一致團結이 切實히 要求되는 때는 다시 없다.
가톨릭敎界의 諸方向內部에서의 一種의 「一致運動」과 對話가 必要하다고 생각된다. 이 一致團結과 對話는 敎會의 公的權威의 독선적 專制나 또한 그와 대조를 이루는 방자한 自由主義的 사고와의 安價한 妥協이나 休戰에서가 아니고 『무엇보다 천주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直視하며 거기에 제 자세를 겨누어 가짐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며 곤란은 극복될 것이다.』 (꽁가르)
金泰寬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