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子 그리스도는 聖父께로부터 천상천하의 모든 권을 받으셨다. 즉 天地를 造成하시고 攝理하시는 全能天主聖父의 統治權을 받으신 王이 되셨다. 『나는 유데의 王이로다』하신 偉大한 宣言은 곧 世界의 王이요 現世와 後世의 王이심을 宣布하신 것이다. 王이신 그리스도는 最高大權者로서 人類를 統治하시는 絶對的인 政治家이시다. 이와같이 모든 政治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고 오직 人間은 그 政治에 協力 乃至 參與하는데 不過한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百姓인 가톨릭信者들은 어떻게 王의 政治에 參與하여야 되겠는가? 새로 편찬된 「천주교교리서」초안 36問에 依하면 『하느님의 백성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합니까』 『하느님의 백성은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죄에서 벗어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며 모든 것을 그에게 긴도하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합니다.』라고 提示되어있다. 이를 더 解說한다면 첫째는 王의 命令을 준수하는 것으로서 天主의 戒命은 물론 모든 敎會律法을 잘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積極的으로 천주의 뜻에 맞도록 忠誠을 다하는 것으로서 善行을 힘써 봉사하는 것이다.
끝으로는 그리스도 王國의 번영발전을 위하여 領土와 人民을 擴張하여 전 人類가 그리스도王의 통치하에 完全 歸依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왕직에 대한 信者의 一般的職分이 이와같을진대, 우리들은 現實的으로 어떻게 그분의 통치 즉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筆者에 부여된 課題이다.
나는 과거에 所謂 政治에 참여한 바 있었고 또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특히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適格者(?)로 認定된 것 같다. 흔히들 政治라면 大統領이나 國會議員이나 政黨을 하는 것 등으로 아는 이가 많다. 그러나 나는 政治란 槪念을 아주 幅 넓게 잡아서 전인류의 最大幸福을 위한 봉사라고 규정하고 싶다. 이런 의미에서 천주께서 하시는 政治만이 진실로 위대하고 거룩하고 絶對的인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天主 즉 그리스도왕께서 하시는 政治를 나는 有形政治와 無形政治들로 구분해 보려고 한다. 有形政治란 外形에 나타나는 모든 現像的秩序 즉 정치 · 經濟 · 文化 · 社會 등 모든 것이 權力構造를 통하여 이룩되는 질서를 指稱하는 것이고 한편 外形에 나타나지 않는 靈神的-倫理的 - 모든 秩序를 形成하는 것을 無形政治라고 規定하고자 한다.
前者는 形而下的政治이요 後者는 形而上的政治라고도 할 수 있다. 천주께서는 이 두가지의 정치를 처음부터 끝날까지 繼續하고 계시는 것이고 모든 人類는 그 政治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中에서도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가톨릭 신자는 일층더 충성스럽게 王의 정치에 協力하여야 할 것이며 그 협력하는 자세가 바로 가톨릭신자의 政治姿勢인 것이다.
여기서 먼저 現實的인 정치에 참여하는 우리신자의 자세부터 考察하여 보건대 세가지의 大原則에 충실하여야 하겠다. 첫째로 公義精神에 철저함이다. 正義를 드러내고 不義를 굴복시키는 상선벌악의 大義를 실천하여야 한다. 現下 부정과 불의가 滔滔히 흐르고 있는 이 世波에서 감연히 정의의 戰線에 굳건히 서서 부정과 부패를 타파함에 百折不屈하는 감투정신이야말로 그리스도王의 백성으로서 예수의 군사로서의 聖戰에 참여하는 忠勇한 臣子로 불리워질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고 부정불의와 구차히 타협하고 權謀術數나 적당한 요령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자라면 이는 그리스도王에 대한 不忠도 이만저만이 아니요 기필코 헴바칠날에 痛哭함이 있을 것이다.
다음은 『너희는 평화할지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口號이신 平和精神에 입각하여야 한다. 정의를 위한 부정과의 싸움에서도 그 수단과 방법은 어디까지나 平和的이어야 한다. 『한손에 「코란」을 그리고 한손에 칼』을 외치는 것은 그리스도王의 統治精神에 크게 相反되는 것이다. 권력이나 무력으로 壓服하는 것이 아니고 理解와 說得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천주의 거룩한 통치 大道인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무력경쟁으로 血眼이 되고 처치에 대소규모의 戰爭이 전개되고 있는 이때에 우리 敎皇께서는 부단히 평화해결을 열렬히 呼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올바른 가톨릭의 정치 자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끝으로 천주의 계명은 愛主愛人하는 「사랑」의 한마디로 통괄되는 것이다. 政治에 참여하는 人士라면 무엇보다도 많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越等하여야 한다. 「사랑」精神은 協助를 낳고 協助精神은 곧 近代民主主義思想의 基調가 되는 것이며 그 根源은 사랑의 정신에서 胚胎되는 것이다. 따라서 民主政治의 尺度는 그 나라 그 국민의 협조정신 즉 「사랑」정신의 深度如何에 달려있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어 一線政治에 참여하는 人士들 가운데는 「사랑」 대신에 「嫉妬」·「協助」 대신에 「分裂」을 일삼는 경향이 많이 발견됨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며 이러한 인사들이 하루속히 「사랑」의 정신을 生命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백성의 자세로 돌아오기를 渴望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王의 無形政治面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有形的인 「만나」보다는 無形的인 「生命의 빵」에 置重하셨다. 즉 外形的인 物質世界의 정치보다도 內面的인 靈神世界의 정신에 優位性을 부여하셨다. 『보천하를 다 얻을지라도 네 영혼에 해를 받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라고 외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천주님의 이 無形政治에 참여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천주께서 그다지도 소중히 여기시는 그 靈神이 천주聖三의 이름으로 다시 나고 聖神 안에서 자라고 커서 聖父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王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개가 華麗한 것처럼 보이는 有形政治에만 관심을 가지고 더 값진 無形政治에는 아예 外面하고 있는 것은 실로 寒心스러운 일이다. 그러면 이 靈神界의 政治에 가장 충실하게 참여하는 방법은 王의 영토와 인민을 擴大增加하는 것 밖에는 없다. 이를 위해서 牧者는 이미 우리안에 있는 羊떼를 선도성화하는 동시에 우리밖에 있는 무리를 천주의 百姓으로 하루빨리 불러들어야 할 것이고 한편 平信徒들은 第2次 「바티깐」 公議會의 精神에 따라 領土밖에 있는 兄弟들을 빠짐없이 그리스도王의 臺前으로 인도하여야 하겠다.
『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 하신 것은 곧 至上命令인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가톨릭 信者는 모름지기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하루라도 더 빨리 그리스도의 臣民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그리스도王職의 정치에 참여하는 眞正한 자세일 것이다. 現下韓國은 천주의 백성인 信者의 數가 人口 50名에 한사람 꼴의 너무나도 微弱한 實態임을 切感하면서 聖職者나 平信徒를 막론하고 現시대에 적응한 참신하고 劃期的인 방법을 모색하여 천주의 백성의 擴大運動에 매진하는 길만이 우리가톨릭信者의 當面使命이고 姿勢임을 더욱 强調하는 바이다.
玄錫虎(前國會議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