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5일.
이날은 세인(世人)이 너무나도 잘 아는 마포 「아파드」 백주살인강도사건이 신문에 커다랗게 보도되던 날이다.
全榮善(당시 26세)
趙明國(당시 25세)
이들 둘은 서로가 이종 숙질간으로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읍 신포리였고 주소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당동 432의 270호였다.
그들은 프로테스탄 신학대학을 다니며 신의 존재유무와 일생최대의 목적에 대한 문제를 알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학문을 탐구하며 노력해보았으나 그에 대한 만족한 해결을 얻지 못한채 학교는 중단하고 몇년전부터 폐결핵으로 신음해 오던 중 자신의 신병과 빈곤 그리고 세대에 대한 절망감 등등 자신들에게 이상(理想)을 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반항심을 갖고 이로부터 그들은 니체의 「니힐리즘」에 귀를 기 울였고 급기야는 또스트렙스키의 「라스코리니코프」를 정당화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같은 극도의 절망감에 허덕이면서 5년동안이나 사귀어 오던 사랑하는 연인마저 거절을 한 채 「아료샤 카라마조프」의 번민이 그의 내면을 어지럽게 하였으나 결국은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신학생의 입장으로 있을 수 없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 이러나 저러나 죽기는 매일 반이다.
천당은 무엇이고 지옥은 또 무엇이냐?
죽으면 다아 그만인 것을…
신(神)이 어디 있어?
신은 우리와 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하하……
그렇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것이다.
「라스코리니코프」야 -
너는 왜 「쏘오냐」에게 귀를 기울이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느냐 말이다.
초인(超人)의 범행은 헝요되는 것이다. 수난의 「게세마네」엔 밤이 깊었는가?
신을 저주하는 탕아가 되어보자. 자아 운명이여 내게 오라. 나는 운명을 거역하는 반역아가 되어보리라 -
1963년 11월 23일 오전 11시경. 쌀쌀한 날씨에 「오바」깃을 세운 그들 둘은 시내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마포 「아파드」를 향해 나란히 발길을 옮겨 놓앗던 것이다.
「아파드」 관리소 직원을 가장한 그들은 문 박사(당시 34세, 서울의대 소아과 조교수)의 집으로 들어갔다.
부인 김흥령(당시 28세) 여사에게 주민등록신고서 용지를 제시하면서 도장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부인이 뒤를 돌아서 「테이블」 위에서 도장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그들은 달려들어 양손으로 부인의 눈을 가리었다.
이에 놀란 김 여사가 『불이야!』하고 고함을 치자 황급히 손수건으로 부인의 입을 틀어막고 방바닥에 넘어뜨린후 미리 준비했던 밧줄로 양팔목과 목을 수회 졸라매고 이불을 덮어 씌움으로써 질식 사망케 하고 미제 제니스 라디오 1대, 라이카 카메라 1대, 여자용 백금 다이야반지 2개 및 의류 15점 등 싯가 약15만원어치를 강취하여 인천으로 달아났다.
이렇게 하여 사건발생후 28시간만인 24일 하오3시40분경 인천시 옥련동에 있는 청룡사 서쪽 약3백미터 떨어진 산속에서 장물을 묻으려다가 마침 순찰중이던 인천시 송도지서 김준호 순경에 의하여 체포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남은 한가닥의 여한은 있었다.
고중열 作 奉相均 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