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11월은 애상의 달이다. 지나간 그리운 이들 무덤 앞에 머리를 수길 양이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슬품 위에 보다 이제 여기 죽음이 감싸는 신의 영광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간 이들의 영광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달에 신자의 영혼과 관계있는 음악을 소개해보고 싶다.
프란쯔 슈벨트는 많은 작곡을 했다. 「오페라」 「오페레따」 「심포니」 등 그러나 그는 대중을 위해 이런 것을 만들지 아니한 것 같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남겼는가. 두개의 매우 중요한 것을 남겼다. 즉 실내음악과 「리이드」. 여기 대해서 아무도 이의(異)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97년에 탄생하여 베토벤보다 한해 후인 1828년에 죽은 그는 603개의 「리이드」의 작곡가이다. 시와 음악이 이렇듯이 밀접하나이 되어있는 「멜로디」, 그것을 우리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가지 일화가 슈벨트의 작곡의 용이성과 그의 정직성을 잘 빛내고 있다.
어느날 오후 두 친구가 그를 보러왔다. 그들은 그가 괴테의 「올느의 왕」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실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후 그는 앉아서 우리가 아는 매우 아름다운 「발라드」(譚詩曲)을 몇분내로 작곡해냈다. 그러나 슈벨트는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에 이 걸작을 들어보기 위해 이웃 학교에 가야만 했다.
하루는 「숭어」의 반주곡이 베토벤의 「꼬리올라누스」와 조금 비슷한 것 같다고 누가 그에게 귀뜀해주었을 때 프란쯔는 동감하고 그 「리이드」를 찢어버리고저 했다. 다행히도 그의 친구들이 그를 말리기에 성공했다.
기악연주자요(四重奏) 애호가중 한 사람인 자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슈벨트는 같은 질의 실내음악의 많은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
「소녀와 죽음」은 슈벨트를 위해 행복한 해였던 1817년에 작곡한 「리이드」이다. 그러나 1824년 병원에서 보낸 한달후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실망에 잠겨 죽음을 간절히 원했다.
그는 자기 친구중 하나에게 『매일밤 나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매일 아침이면 수면이 걱정이 앞선다』라고 써보낸 일이 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음이 말하기를 「네 손을 달라. 떨지 말라. 나는 너의 친구이다. 너는 내 팔에서 삶보다 더 단잠을 자리라」』고 한 시를 발견했을 때 그의 정신상태는 이러한 암울 속에 잠겨 있었다. 그후 그의 정신 상태는 좀 좋아졌다. 그래서 슈벨트는 「왈쯔」와 더 가벼운 다른 작곡을 하기 위해서 이 사중주를 포기한다. 그러나 1826년초 병이 재발했다.
그는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의 하나인 「소녀와 죽음」을 즉각 끝마쳤다. 항가리 사중주에 의한 이 연주는 우리를 황홀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