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州敎區(전주교구) 使徒會(사도회)의 進路(진로)
「方法論(방법론)」 熟議(숙의) 止揚(지양)하고 果敢(과감)한 實踐精神(실천정신)아래
充實(충실)한 그리스도 證人(증인)으로 布敎活動(포교활동)에 積極參與(적극참여)해야
20世紀(세기)後半(후반)의 信徒(신도)들 義務(의무)
第2次 「바티깐」 公議會는 使徒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規定하고 있다. 『使徒會는 信徒들이 公議會 精神에 따라 敎會內에서의 그 地位와 責任을 自覺하여(敎會憲章 37條 參照) 所屬 本堂의 典禮生活에 能動的으로 參與함으로써 함양되어 本堂使徒職事業에 성심으로 從事하며, 혹시 敎會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이에 引導하며 天主의 말씀을 傳播시키며 特히 敎理指導에 熱誠으로 協力하며 各自의 知識과 經驗을 살려 敎會의 救靈事業과 財産管理에 더욱 效果를 내는 것을 그 目的으로 한다.』(信徒使徒職律令 10條 參照)
1966年度 美國 가톨릭 年鑑에 依하면 全世界 人口 32억9백42만中에서 가톨릭 信者 590,400,000명, 回回敎 455,785,000名, 힌두敎 395,191,000, 儒敎 350,835,000, 5百여派로 갈려진 兄弟들(프로테스탄) 224,065,000, 佛敎 161,856,000 기타종교 원시종교 등이 모두 850,000,000 쯤 되어있다.
世界的으로는 가톨릭이 가장 많은 信者를 가지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韓國에는 아직도 全人口의 2%에 不過하다. 6·25 直前 170,000을 헤아리던 韓國敎會가 10餘年동안 長足의 發展을 하여 今年6月末 統計는 700,000이 넘었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갈려나간 敎會의 牧師님들의 數가 1萬명이 넘는데 比해 神父數는 15분의 1인 不過 680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예배당은 一面一敎會를 벗어나 벌써 洞里마다 敎會가 있는 反面, 聖堂은 平均 一郡二敎會도 되지 못한다는 形便임을 우리는 注視하여야겠다. 그러면 現在 神父數가 모자라서 一面二敎會가 되기까지 까마득한 事實을 강건너 화재처럼 보고만 있을때인가?
이번 公議會는 처음으로 平信徒代表를 參席케 하였고 過去에 사제들의 獨占物인양 奉獻되었던 미사성제도 信徒들과 共同으로 집전케하였다. 따라서 信徒들은 다같이 하느님의 百姓으로서 하느님의 救援에 倍前의 共同責任을 갖게되었다.
우리는 現代人間의 尊嚴性과 自由를 信奉하는 數億의 世界人類의 救援을 目標로 또 우리 子孫萬代를 위하여 우리 世代가 다 하여야 할 任務를 遂行할 때는 왔다. 우리 韓國殉敎者들이 80여년간 피흘리며 希求해오던 이나라 福音化는 尙今도 많은 時日이 必要하고 계속 忍耐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韓國敎會의 復興을 위해서는 聖職者에게만 依存할 때는 지났다.
『信徒들은 平信徒使徒職 團體에 積極加入하여 기도와 행동으로 本黨과 敎區의 布敎活動을 全力 밀어주어야 한다.
信徒는 그리스도의 몸안에 결합되어 있으므로 能力대로 이행하지 않는 肢體는 自身을 위해서나 敎會를 위해서 쓸모없는 肢體다. 信徒들은 本堂神父의 지시에 따라 傳敎수녀, 會長, 敎理敎師를 도와 손을 맞잡고 포교활동을 해야한다』(平信徒使徒律令 2條 參照)
이웃집의 불을 끄는데 그 方法을 너무 오래 論議하고만 있을때가 아니다. 第一 急先務는 우리모두가 참다운 使徒가 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권고를 기다리고 있는 영혼이 허다하고 우리의 노력이 아니고서는 영원히 구원을 얻지 못할 자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과 접촉하기 위한 第一重大한 용기가 不足하여 미리 겁을 먹고 뒤를 사린다.
혹은 남이 조롱을 하거나 남에게 비평을 들을가봐 惑은 그 사람이 나보다 부자이고 地位가 높으니까 等 두려워하는 ㅏㅁ음이 모든 可能性으로부터 울타리를 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敎理를 모르니까 남을 권고할 責任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면 누가 敎理를 넉넉히 알고 있는가?
勿論 神父들이다. 그러나 神父들은 거의가 未信者들과는 別로 相通이 없이 지낸다. 信徒들은 하루에도 數10名 數百名의 外人들을 만나 對話를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면 知識과 討論 等이 宣敎하기에 絶對 必要한 要素인가? 여기서 우리는 회개하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과 회개하는 자를 찾는다는 것을 구별하여야 한다. 前者는 知識을 要求하는 것이지만 後者는 오직 熱誠만을 要求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敎理知識이 不足하면 敎理先生에게 案內하는 役割이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
『하느님의 百姓은 모든 사람과 接觸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누구나 福音을 전해야 할 使命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實踐해야 할 義務가 있다. 特히 家庭에서나 職場에서나 말과 行動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야 한다』(布敎律令 11-13-21條 參照)
우리 信徒들은 敎會의 組織이고 細胞이다. 敎會는 우리를 通하여 살고 또 우리를 通하여만 生活한다. 信徒들이 活動하면 敎會도 움직여지고 信徒들이 活動을 中止하면 敎會는 退步하는 法이다. 우리는 領洗를 받음으로써 神秘體의 肢體가 되고 神秘體와 함께 자라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입이 되고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손과 발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세상을 福音化하기 爲하여 우리 人間外에 다른 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活動의 수단이고 연장이다.
우리 周圍에는 秋收할 것이 많이 있다. 바앗가에 모래만큼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차려보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公議會後 우리 使徒들은 信仰의 눈을 자극시켜 마치 예수께서 당신께 마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듯이 우리도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주시하여야겠다. 그들에게 우리가 救援의 기쁜 消息을 전한다고 해서 듣는이마다 다 개종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改宗하는 것은 主의 恩惠에 屬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主님은 『너희는 모든 사람을 회개시키라』고 命하지 않으시고 오직 『너희는 가서 만민을 가르치라』고 命하셨을 뿐이다. 우리가 福音을 傳하면 主님은 옆에서 役事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布敎하려 갈 때는 바로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는 것이다. 그때 役事하는 이는 우리의 허약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神靈한 힘인 것이다. 우리 信仰보다 더 價値있는 것은 없다.
現代社會와 가톨릭이 要求하는 使徒會는 모름지기 十字軍의 精神으로 前進하여야겠다. 偉大한 野心과 勇氣는 聖神의 힘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聖神의 힘을 이끌면 計劃은 움직이기 始作할 것이다. 그러면 이 世上에 새로운 分野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金二煥 神父(全州敎區 使徒會 會則草案者 群山 月明洞本堂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