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상과 신앙은 고대종교나 원시신앙의 중심이 되어있다. 이것은 비록 각기 그 형태와 풍속을 달리하고 있긴 하지만 원시 모든 부족(部族)국가에 거의 공통된 민속신앙이었다.
우리나라 원시신앙으로서도 천신(天神)을 비롯한 자연신과 조상의 영혼을 숭배하는 사상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 영혼숭배의 사상이 종교형식화한 것이 이른바 「샤마니즘」(SHAMANISM 巫俗)이며 조상숭배의 행사이다.
「샤마니즘」에 있어서는 죽은자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이 「무당」(巫堂 SHAMAN)의 몸을 빌어서 생존자와의 관계를 맺고 조상의 영혼을 숭상하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살아있는 자에게는 생사화복(生死禍福)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각 개인이 그 조상을 숭상함은 물론, 특히 개국시조를 극진히 봉사(奉祀)하여왔다.
고구려로부터 고려를 거쳐 이씨조선에 이르기까지 사당(祠堂)을 세우고 춘추로 제사를 드려온 고구려 시조 동명왕(東明王)의 숭배는 이 한가지 예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금은 재물을 같이 묻어 후히 장사하고 그 옆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어서 그 영혼이 언제나 푸르게 살아있음을 나타냈고 삼한(三韓)에 와서는 사람이 죽으면 새깃(鳥羽)을 넣어서 장사지냇는데 이것도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와같이 하늘로 올라가라는 뜻이었다. 고려시대에 와서 불교와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 귀족중심의 신앙이었음에 반하여 일반민중은 여전히 「무당」을 믿었다. 무당은 가무(歌舞)로써 잡신을 물리치고 신(神)을 영접하여 소원을 이루워주며 병도 고쳐주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무지한 백성 사이에 오랜동안 큰 세력을 잡고있었다. 유교의 자주학(朱子學)을 지도이념으로 삼았던 이씨조선 5백년간에도 비록 조상숭배 사상이 형식적이고 파벌적인 주자가례법(朱子家禮法)으로 몰락해 가긴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전통적인 조상숭배와 「샤만」 신앙은 계승되어왔다. 17세기말에 이르러 이른바 서학(西學)이라 불리운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자 토착적(土着的)이고 파벌적인 조상숭배사상과 무속(巫俗)과 맞서게 되었다.
천주교는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고 제사도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학(邪學)으로 몰려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샤마니즘」 신앙의 특징이 인간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유명(幽明)을 달리한 저세상에 살아남아있어서 「무당」의 중개로 생존자와 인연을 계속하고 죽은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뜻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민속신앙이라면 천주교의 근본교리와 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천주교에서도 영혼의 존재와 또한 죽은이들의 영혼이 천당에 가도록 기도드리며 아직 속죄를 다 못한 영혼들은 연옥에 가서 단련을 받고있기 때문에 이 영혼들을 위해 미사라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다만 인간이 죽은다음 그 영혼의 운명이 어떻게 판가름이 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천주교는 인류의 창조자이시고 최고심판관이신 천주님께 그 영혼의 운명을 돌리고 그에게 기원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렇다고 「샤마니즘」이 무신론(無神論)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보는 뚜렷한 신(神)에 대한 관념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의 계시(啓示)와 인류구원의 진리는 믿지않더라도 인간의 영혼 자체가 아닌 어떤 막연한 신(神)의 힘을 받은 무당의 중재로써 죽은이의 혼을 위로하고 그 안식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샤마니즘」의 조상숭배사상과 죽음관(觀)은 가톨릭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공통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정신 속에 면면히 흘러내려온 이 민속신앙은 인간의 영성(靈性)과 내세(來世)의 영원한 화복(禍福)을 믿고있는 점에서 전인류의 보편적인 신앙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형의 죽음으로써 부활(復活)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그리스도교의 죽음과 영생에 관한 진리가 비록 형식과 신앙의식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민족 고유의 「샤마니즘」 신앙에 근본을 이루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었을지라도 영원히 살리라!』
尹炳熙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