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파 겉 핥기 錄(록) (35) 「빠리」의 매력
산 역사의 거리 「빠리」
古典(고전) · 현대 美(미) 조화는 「쇼윈도」에도 담뿍
발행일1966-11-13 [제543호, 3면]
시즈시대때 「세느」강 상류의 「씨떼」는 「빠리」 씨족이 살고 있어 「로마」사람들이 「빠리시오룸」이라고 부르게된 것이 「빠리」란 이름을 갖게된 시초가 됐다던가? 그래 그런지 무척 역사적인 그리고 고풍스러운 냄새가 강력하게 풍기고 있다.
옛것과 현대것이 잘 어울려 있는 「빠리」다. 과연 구라파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다운 면모를 상점의 「쇼윈도」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박물관에서도, 건물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휴지하나 눈에 띄지않는 길거리에 죽 늘어선 「마로니에」 가로수도 「빠리」의 매력의 하나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이 있는 「꽁고르뜨」광장엘 나가봤다. 이곳이 바로 「빠리」의 중앙 대광장이다. 서쪽은 그 유명한 「샹제리제」거리로 통하는 곳이며 「루불」 궁전이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동차 소리만 날뿐 비교적 죠용하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한산할 정도다. 그런데 발밑을 보니 난데없이 차도양녘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아니 여기도 이렇게 상수도 고장이 잘나나요!』
『왜요?』
동행한 신부님이 반문하신다.
『웬물이 저렇게 마구 흘러 하수도로 새들어가는지…』
신부님은 낄낄웃었다.
『저물요? 정말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수도 「파이프」가 터졌을 때 물이 길 양녘을 흘러 하수도로 들어가는 것하고 똑같군요…』
『아니 그럼…』
『저건 일부러 아침마다 물을 흘러보내면서 길가의 가벼운 휴지라든지 먼지를 씻어내고 있는 것이랍니다.』
맑은물이 매일아침 흘러 보도와 인접한 부분은 실개천을 이루고 있는 「빠리」의 도시였다.
『저 광장 한가운데 솟아있는 탑은 뭔가요!』
황홀한 것들이 많았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부터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저것도 유명한 탑이랍니다.』
나는 유명하지 않는게 관광지에 가면 없기에
『그럼 저것도 한 천년전의 무슨 유물인가요?』
하고 물었다.
높이 24「미터」나 되는 「오베리스크」란 이 탑은 정말로 유명한 탑이다. 에집트에서 1833년 기증받은 탑이라고는 하지만 이 탑의 나이가 3천3백년쯤 된 것이라니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 탑을 가운데 두고 두개의 분수연못이 이를 감싸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아름다운 역사의 얘기만 있는 때문에 화려한 것은 아닌상 싶었다.
대혁명 당시 이곳을 혁명광장이라 불었었다니 이곳이 바로 기로틴이 발명해낸 사형교수대를 맨 먼저 활용해가지고 2년반동안에 3천여명의 목을 자른 피비린내 나는 곳인 것을 알았다.
『루이 16세가 1793년 1월 21일 이곳에서 「기로틴」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곳이죠!』
교수형틀을 만들은 기로틴이 마침내 자기가 발명한 형틀에 의해 사형당했다지만 그 사형된 자리가 이곳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깥보다 안을
「꽁고르뜨」 광장 북녘 좌우편에는 18세기식 건축과 「코린트」식 원주가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데 이곳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생활방식이라고나 할까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속담에서 처럼 『겉볼안』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이 말은 겉 생김새만 보더라도 속이 어떤지 짐작이 간다는 말이지만 이곳 건축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새 건물이야 그렇지도 않지만 서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엘 가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겉모양이 고풍스럽고 우중충하다. 「페인트」칠도 별로 안한다. 그러나 일단 집안에 들어가보면 화려하다. 실속있는 살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