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蔣柄補 神父(法博 · 大邱敎區 敎理委員)
편집에 一貫性 不足
草案으로 훌륭하나 再審 必要
敎會觀 表現 未洽 「죽음」 무게있게 다뤄야, 敎理 核心 모호한 곳도
불과 40여일이란 짧은 기간에 이만한 새 교리서의 초안을 내놓은 편찬위원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지면 관꼐로 잘된 점에 대한 칭찬은 생략하고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만을 지적하게 된 것을 심히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①서론 중의 「기쁜소식」 부분은 좀 더 명확하게 고쳐썼으면 좋겠다. 「기쁜소식」의 소재(所在)의 강조에 치중한 감이 있다.
②편집에 일관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ㄱ)교리서의 전체의 구조는 편 · 부 · 과로 나누어졌는제 편 · 부에 따라서는 서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다같이 있는 것이 좋겠다.
(ㄴ)각 단원(과)에는 단원제목에 맞다고 생각되는 성서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나 제2편 이하에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헌장 · 율령들에거 많이 발췌해서 이에 대신했다. 제목에 해당하는 성서구절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그것을 써야할 것이다. 헌장은 설명문에 인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인용된 성서구절이 그 단원 제목에 최적합한 것인지도 겸하여 거토되어야 하겠다.
(ㄷ)설명문의 서술에 있어 성서의 말씀으 인용을 설명문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주장의 뒷받침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같은 성서 구절이 같은 단원에 중용이 된 경우가 있다.
(ㄹ)다시 설명문의 서술에 있어서, 어떤 단원에는 상하의 문장간에 논리적 또는 역사적 전개 내지 관련이 없고 사실의 나열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또 교의적 설명과 전례적 설명이 혼설을 이루기도 하고 교의적 설명과 교훈적 설명을 혼용한 다음 「신앙생활」에 다시 교훈적 설명을 번복한 것이 보인다.
(ㅁ)용어의 혼용 또는 애매한 어휘의 사용이 없지 않는듯 하다. 「기쁜소식」과 복음, 제헌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성총의 생명과 성화의 은총, 유데아의 당국자, 거역과 거절 등등
③각 단원의 제목과 설명문의 내용이 잘 부합되는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각 단원의 교리에는 빼놓을 수 없는 부각시켜야 할 교리의 중섬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뚜렷하지 않는 단원이 있는 듯 하다.
④부 · 과의 제목이 애매한 것이 보인다. 예제 2편이 2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맡기신 권능 제2편 3부 교회가 주는 성사. 제9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다 등등
⑤제3편의 편의 제목과 부 · 과의 설정에 재고가 있었으면 좋겠다.
⑥제4편은 제51과 죽음과 심판, 제52과 세계의 종말과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의 2과를 포함할 뿐이다. 「죽음」이란 인간의 최대문제중의 하나이니 따로 다루어서 3과로 하는 것이 좋겠다.
⑦「교회」에 관한 교리에 있어서 「천주의 백성」의 교의를 과도히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교회」의 교의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과의 관계도 뚜렷하지 못하다. 그리스도의 수난돠 부활의 교의도 「천주의 백성」의 교의에 억압된 감이 없지 않다. 교회의 교의에 사회적 기구(社會的 機構)인 면도 포함되어야 하겠다.
새로 나온 「천주교 교리서」의 초안은 총찬으로서 대단히 훌륭한 것이다. 이것이 교리학이 전문가신부들, 비전문가신부들, 교리교사들, 국문학자들, 문장가들, 등등에게 공개되어 「테스트」되고 비판되고 다듬어져 한국교회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천주교 교리서」가 되기를 기원한다.
■ 李海南(漢陽大 敎授)
護敎서 복음으로 現代化 했으나 成人用으로 內容 빈약
「敎理神學 아닌 신앙생활書」 돼야
첫째로 느낀 점은 우선 잘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뜨리덴띠노」 공의회 이후 제정된 이단 사설 고축을 위한 호교학적 「로마 교리문답」의 틀을 깨뜨리고 4백년만에 비로소 현대화된 문답책이 「바티깐」 공의회의 정신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초안되었다는 점에서이다.
따라서 그 시도가 무엇보바도 종래의 1편 · 2편 · 3편의 순서를 뒤집어 계명을 끝으로 가져가고, 또 복음전달을 위주로 하자는 노력을 엿보여 주고, 해설을 붙인 다음에 문답으로 요약하려는 새 교육학적 방법을 채용하려는데도 눈을 뜬 자국이 두렷하다. 그래서 우선 무엇읗 새로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만이라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왕 고칠바에는 좀더 몇가지 아쉬운 점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 몇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아직도 「로마 교리 문답」적인 구태를 완전히 탈퇴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뜨리덴띠노」 정신은 천하만방에 파견된 사랑의 실천을 위한 교회에 스스로 「철의 장막」을 치고 신학적인 정확성만을 찾는 자기변호(호교) 속에서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도그마」만을 나열해 놓았던 폐단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한마디로 새 교리문답을 「교리신학」 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는 만들 수가 없는가?
따라서 「과성은혜」니 「초성은혜」니 하는 식의 어려운 말을 왜 꼭 써야하는지, 그리고 「천주 지선하시뇨?」 「천주 지선하시니」하는 구문답식 현문현답을 가지고 왜 정리를 하려고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특히 제3과 끝의 「삼위일체」의 계시와 제17과의 관계나 논리는 너무나 어색하고 억지인 것 같다.
②이왕 4편으로 나누면서 왜 「교회와 성사」를 묶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인류구령의 문제가 「하느님의 인유레 대한 사랑」과 「인류의 하느님에 대한 보답」으로 해결되는 일이라면 교회창설까지는 전단에 속하는 문제일 것이고 「성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에 속해야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7성사」 창설의 근원을 강조하자는 신학적 정확성만 생각했는지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서 쓰여지는 점이 전연 강조되지 않은 것 같다.
③제4편은 너무 만들어 붙인 것 같다. 그리고 「종도신경」의 맨 끝도 「종말」은 아니고 「영생」일 것이다. 따라서 38 · 39 · 40과와 합쳐서 그리고 특히 32과를 아름답게 결우시켜서 「부활」과 「영생」을 위한 예전생활의 강조로 그쳤으면 한다. 새 문답이 「교리신학」이 아니라 「신앙지도서」이고 「신앙생활서」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
④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분명히 성인용인 것 같은데 내용이 빈약한 감이 크다. 우리는 다시 손바닥만한 문답책 한권으로 전교를 하고 교우의 일생을 지도하자는 말인가? 물론 전문서적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한국사람 전체의 독서층이나 독서량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에 정말 ABC만 배우고 마는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딘다. 따라서 교리책 하나만이라도 약간 알찬 것이 되어서 일생의 신앙을 지도할 근간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그다음 것은 차례로 줄어드러간 것이 「노인 문답」 「아동 문답」식으로 나와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상의 우견을 빼놓고 보면 결론적으로 교리와 문답과 기도와 생활을 한 단원에서 다루었다는 점만으로 이 새 문답책은 훨씬 진보한 것이며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쓸만한 것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