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고 하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갑자기 죽었다. 방년 20세의 건강한 처녀였다 그女에게는 부프는 理想이 있었고 한줄기 뻗어나아가는 希望이 있었다. 장래를 約束하는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그女는 졸지에 죽고 말았다. 앗차 하는 순간 山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젊디 젊은 나이에 그것도 오래 앓다가가 아니고 뜻하지 않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프고 기막힌 노릇이냐! 사랑하는 딸을 잃은 부모님의 슬픔, 손에 손을 잡고 웃으며 즐기던 숱한 親友들의 슬픔이 어찌 말로 다 이르랴!
정말 죽음은 쓰라린 것, 허망한 것, 야박한 것, 염치없는 것이다. 죽음에는 사정이 없다. 죽음에는 에누리가 없다. 죽음에는 여유가 없다.
죽음은 아무에게나 덤벼든다. 죽음은 시간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죽음은 어떠한 方法으로든 마구 덤벼든다.
죽음은 老人이나 病弱者에게만 덤벼드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貧者나 村夫에게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는 黃金의 萬能도 맥을 못춘다.
죽음 앞에서는 世上을 떨치는 權勢도 입을 열지 못한다. 죽음 앞에는 黃牛를 맨주먹으로 때려놉힐만한 健康과 힘도 일었다 꺼지는 물방울과 같다.
이런 죽음은 또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뺏아간다.
K라고 하는 저 아리따운 아가씨의 죽음을 보라. 죽음은 그女의 전부를 한번에 몽땅 뺏아갔다. 부모 형제 친척을 뺏아갔고, 정다운 親友들을 빼았아갔다. 健康을 앗아갔고, 자랑스럽게 가꾸고 손질하던 어여쁨을 앗아갓다. 이상과 희망을 가져갔고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사랑을 가져갔다.
죽음은 모든 것을 뺏고 쓸쓸한 길을 홀로 떠나게 한다.
참으로 죽음은 외로운 것이다. 죽음의 길에는 同伴者가 없다. 모든 것에서 떠나 홀로 가야하는 길이다. 아무리 사랑해 주고 아껴주던 부모랄지도 무덤까지 밖엔 同行치 못한다.
『북소리 울려 人命을 재촉하고 돌아다 보니 해는 기울도다. 황천길은 움막도 한채 없다는데 이 밤을 어디서 쉰단 말이냐?』 외로이 죽음의 길을 떠나면서 쓸쓸히 옳은 李朝 忠臣 成三問의 詩다.
그렇게도 좋아보이던 世上, 그렇게도 소중하던 財物은 이 죽음 앞에 또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야박스럽게도 한벌의 옷, 한평의 땅, 한조각의 널쪽을 제공할 뿐이다. 그것으로 고만이다.
이런 죽음은 미구에 나에게도 온다. 한번 생명을 타고난 이에게는 다 닥쳐온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罪가 世上에 오고 또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모든 이가 犯罪한 고로 萬民위에 죽음이 미쳤나니라』(로마 5장 12절)
그러나 죽음은 외롭고 쓰라린 것 만은 아니다. 죽음은 現世의 生에 終止符를 찍어 後世의 始發点을 가져다 준다. 죽음은 有限한 肉身生命에서 영원한 靈身生命에로의 轉移이다.
죽음의 문을 통하여 영원한 世上은 시작된다. 죽을때 감간 世上은 끝나고 영원한 세상이 시작된다. 이 永遠한 世上에는 끝없는 행복과 끝없는 불행이 있다. 그러니까 죽음의 길을 지나 永遠한 행복에로 또는 永遠한 불행에로 들어가게 된다. 어느길에 들어가게 될 것이냐?는 살아 생전 각자의 행위에 달려있다.
嚴正 公義하신 審判官 天主님께서 各者의 行爲에 대해 단호한 判決을 내리신다. 이 판결은 또다시 변경할 수가 없다. 한번이자 마지막이다. 永遠한 幸福, 永遠한 不幸, 完全히 決定되고 만다.
그렇다면, 즉 어느때 어디서 죽겠는지? 모르고, 또 죽음은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現世의 온갖 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리고 죽음의 문을 통하여 永遠한 세상이 始作된다고 한다면, 人間은 마땅히 잘 죽도록 미리미리 준비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슬픔을 참 기쁨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지나가 버리고 마는 現世의 모든 것을 잘 이용하여, 變하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方法은 現世의 모든 것은 永遠한 世上을 준비하는데 쓰이도록 天主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永遠한 幸福에로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정성껏 섬길 것이다.
이로써 쓸쓸한 죽음의 길엔 나를 爲해 同伴해 주고 나를 변호해 줄 분이 있게 된다. 무섭고 외로운 죽음의 時間은 기쁘의 時間이 될 것이다. 죽음이 다가온 찰라 福者 안드레아 金 神父님과 같이 『오~ 나의 피지만 아름다운 피로다. 내 앞에 永遠한 生命이 이제 막 展開하려 하는도다』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復活이요 또 生命이니 나를 믿는 者는 죽었을지라도 살아난 것이요,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이는 永遠히 죽지 아니하리라』(요왕 11장 25-26절) 하신 예수님의 말슴을 굳이 믿고 죽음을 생각하며 영생을 준비할 것이다.
김영일 神父(서울 금호동본당 주임)